프로야구 성적은 외국인 선수 하기 나름?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1위 SK가 선두 자리를 지키는 원동력 중 하나는 외국인 선수 덕분이다. KBO리그 2년차를 맞이한 앙헬 산체스가 적응기를 끝내면서 에이스 투수의 면모를 갖췄다. 거기에 빠른 교체로 시즌 초반 소사를 영입하면서 강력한 원투펀치를 형성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16년 만인 1998년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됐다. 첫 시즌에는 구단별 2명으로 시작했다. 그 해 총 12명의 외국인 선수가 한국 무대를 밟았다. 이후에는 규정의 변화가 조금씩은 있었으나 매 시즌 팀당 2~3명의 외국인 선수들이 KBO리그에서 뛰었다.

프로야구 두산 린드블럼이 8월 25일 한화전에서 글러브를 열어 포수 볼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야구 두산 린드블럼이 8월 25일 한화전에서 글러브를 열어 포수 볼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처음에는 연봉 상한선 12만 달러에서 시작했던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은 해가 갈수록 치솟았다. 그만큼 외국인 선수의 비중도 커졌다. 외국인 투수들이 이른바 ‘원투펀치’를 맡게 됐고, 타자들은 팀의 중심타선에 자리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외국인 농사’라는 말도 생겼다. 이 농사가 잘 되어야 한 시즌이 풍년인지, 흉작인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에도 마찬가지다. 올해부터는 새로 KBO리그에서 뛰게 되는 외국인 몸값 상한선이 100만 달러로 정해졌다는 게 예년과는 조금 다른 점이다. 올해에도 외국인 선수의 성적에 따라 팀들의 희비가 갈렸다. 외국인 선수 덕분에 선두권을 지키는 팀이 있는가 하면 그들의 부진 탓에 하위권에 맴돌고 있는 구단이 있다.

외인 농사 흉작, 웃지 못한 삼성 롯데

삼성은 스프링캠프 때 ‘외국인 선수 악몽’이라는 말 자체가 금기시된 팀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외국인 투수로 울상을 지었다. 2016 시즌부터 10승을 거둔 투수는 한 명도 없었다. 높은 몸값에도 불구하고 한 시즌 선발진을 책임질 에이스 외인 투수 한 명이 없었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올 시즌에는 투구 궤적, 회전수 등이 측정가능한 ‘트랙맨’ 자료를 토대로 선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삼성은 덱 맥과이어, 저스틴 헤일리를 새 외국인으로 뽑았다. 두 명 모두 상한선에 가까운 몸값을 주고서 데려왔다.

스프링캠프에서 삼성은 외국인 투수가 좋은 팀 중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올해도 ‘흉작’이었다. 먼저 교체된 선수는 헤일리였다. 맥과이어보다 더 기대를 모았던 헤일리는 시즌 초반까지도 리그를 압도할 것 같았다. 지난 4월까지 6경기에서 1승 2패 평균자책 2.59를 기록했다. 그러나 두 차례 조기 강판 이후에 무너졌다. 4월 24일 SK전에서는 딱 원아웃만 잡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5월 17일 KT전에서도 1이닝 1실점 만에 강판됐다. 헤일리는 맥과이어보다 먼저 교체됐다. 전반기를 끝내고 방출 통보를 받았다. 삼성은 헤일리 대신 타자 맥 윌리엄슨을 영입하며 외국인 타자 2명 체제를 시작했다.

맥과이어는 시즌 첫 경기인 3월 23일 NC전에서 홈런 3방을 얻어맞는 등 3.2이닝 7실점으로 뭇매를 맞았다. 이후에도 4경기 연속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그러다 4월 21일 한화전에서 노히트노런을 작성하며 시즌 첫 승을 챙겼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맥과이어는 노히트노런의 제물이었던 한화를 상대로만 잘했을 뿐 삼성의 전력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8월 1일 롯데전에서 2이닝 7실점으로 와르르 무너졌고 삼성의 인내심도 끝이 났다. 21경기 4승 8패 평균자책점 5.05의 성적을 내고 KBO리그에서의 생활을 마쳤다.

맥과이어 대신 벤 라이블리가 삼성 유니폼을 입었지만 여전히 물음표를 달고 있다. 첫 경기인 8월 13일 SK전에서는 5이닝 4실점으로 뭇매를 맞았지만 다음 경기인 20일 한화전에서는 9이닝 완봉승을 따내며 반전의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다음 경기인 키움전에서는 불과 2이닝 만에 9실점하는 난조를 보이며 조기 강판됐다. 한화전 호투 뒤 부진한 모습이 맥과이어를 떠올리게 했다. 아직까지 팀을 웃게 할지는 미지수다. 이렇듯 삼성은 외국인 선수의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올 시즌에도 가을야구와 멀어지고 있다.

롯데는 외국인 선수의 교체 실패가 감독의 자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애당초 제이크 톰슨과 브룩스 레일리로 외국인 투수 구성을 마쳤던 롯데는 시즌 초반 외국인 투수들이 부진하자 교체를 꾀했다. 대만에서 뛰고 있던 헨리 소사를 영입하려다가 이 과정에서 지지부진해 SK에 빼앗기고 말았다. 일주일 만에 SK가 방출한 브록 다익손을 울며 겨자먹기로 데려왔다. 소사는 SK에서 승승장구한 반면 다익손은 이적 후 호투를 펼쳤음에도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게다가 타자 카를로스 아수아헤까지 부진해 가장 먼저 외국인 선수 교체 카드 2장을 써버렸다. 뒤늦은 극약처방이었다. 5월부터 최하위에 머무른 롯데는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고 전반기를 마치고 양상문 감독과 이윤원 단장이 동반 사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올 시즌에도 탈꼴찌를 목표로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프로야구 삼성의 저스틴 헤일리(왼쪽)와 덱 맥과이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삼성라이온스 제공

프로야구 삼성의 저스틴 헤일리(왼쪽)와 덱 맥과이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삼성라이온스 제공

타자로 웃은 두산, 눈치작전 성공 SK

반면 올 시즌 외국인 선수 덕분에 웃는 팀은 두산이다. 투수 조쉬 린드블럼이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린드블럼은 지난 8월 25일 대전 한화전에서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20승 고지를 밟았다. 더스틴 니퍼트(전 두산)의 2016년 최소 경기(25경기) 20승 달성과 타이 기록을 냈다.

5월 28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시즌 8승째를 따낸 이래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거침없는 연승을 질주해 20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2017년 KIA 양현종과 헥터 노에시 이래 2년 만에 KBO리그 20승 투수 계보를 이었다. 또 두산(전신인 OB 포함) 투수로는 박철순(1982년·24승), 다니엘 리오스(2007년·22승), 니퍼트(2016년·22승)에 이어 네 번째로 20승을 달성했다. KBO리그에서 역대 한 시즌 20승은 모두 20차례로 선발승으로만 20승 이상은 린드블럼이 11번째다. 외국인 투수 중에선 리오스, 앤디 밴헤켄(전 히어로즈·2014년 20승), 니퍼트, 헥터에 이어 린드블럼이 5번째로 20승 투수의 영광을 안았다.

2015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한국 땅을 밟은 린드블럼은 그해 13승, 이듬해 10승을 올리고 롯데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 잠시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2017년 롯데로 복귀해 5승을 거둬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어낸 린드블럼은 2018년 두산으로 이적해 명실상부한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올 시즌에는 다승은 물론 평균자책점, 승률, 탈삼진 부문 등에서 4관왕에 도전한다. 시즌을 마쳤을 때 1점대 평균자책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두산은 또 외국인 타자에서도 모처럼 재미를 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외국인 타자의 부진으로 아예 없이 시즌을 치르기도 했던 두산은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의 활약으로 웃고 있다. 올 시즌 처음으로 KBO리그를 밟은 페르난데스지만 3할 중반에 가까운 타율을 유지하면서 팀 타선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두산이 올해 2위에 자리하고 있지만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은 위안을 삼을 만하다.

1위 SK가 선두 자리를 지키는 원동력 중 하나는 외국인 선수 덕분이다. KBO리그 2년차를 맞이한 앙헬 산체스가 적응기를 끝내면서 에이스 투수의 면모를 갖췄다. 거기에 빠른 교체로 시즌 초반 소사를 영입하면서 강력한 원투펀치를 형성했다. 여기에 토종 투수 김광현, 문승원, 박종훈까지 갖춘 SK는 10개 구단 중 최고의 선발진으로 탄탄한 전력을 만들었다.

LG도 2년차를 맞이한 타일러 윌슨과 새로 영입한 투수 케이시 켈리가 선발진을 버텨줬다. 교체 외인 타자 카를로스 페게로도 KBO리그에 적응해나가고 있다. 덕분에 LG는 3년 만에 포스트시즌을 꿈꾼다.

외인 활약은 팀 전력에 상관없다?

외국인 선수의 활약은 팀 전력을 크게 좌우한다지만 이에 관계 없이 팀 성적이 잘 나온 팀들도 있었다. 2013년 삼성은 외국인 투수 두 명이 모두 부진했다. 릭 밴덴헐크가 시즌 7승9패 평균자책점 3.95를 기록했다. 나머지 한 명인 아네우리 로드리게스는 11경기에서 3승5패 평균자책점 4.40으로 부진했다. 급기야 팔꿈치 통증을 호소해 교체 대상이 됐다.

삼성은 로드리게스를 대신해 그해 7월 말 대체 용병으로 에스마일린 카리대를 영입했다. 그러나 카리대는 두 차례 중간 등판 뒤 첫 선발 경기인 한화전에서 1.1이닝 만에 6실점하고 강판됐다. 이후에 팔꿈치가 아프다며 엔트리에서 말소된 카리대는 결국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 그런 와중에 삼성은 통합 우승이라는 저력을 일궈냈다. 하지만 카리대는 이후에 아시아 프로야구 리그 각 우승 팀이 참여하는 아시아시리즈 출전까지 거부했다. 그해 삼성은 좋은 성적을 내고도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겼다. 때문에 카리대는 아직도 역대 최악의 용병 투수로 꼽힌다.

두산은 2018 시즌 외국인 타자가 부진했음에도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지미 파레디스가 21경기 타율 0.138을 기록한 뒤 퇴출됐고 대체 용병인 스캇 반 슬라이크는 12경기에서 타율 0.128을 기록한 뒤 한국을 떠났다. 기존 토종 타자들이 잘 쳤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두산은 결국 외국인 타자 없이 한국시리즈를 치렀다.

반면 좋은 용병을 두고도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 팀도 있었다. 롯데는 2015년 이종운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이 감독이 첫 해에 뽑은 외국인 선수들은 모두 합격점을 받았다. 이때 롯데 유니폼을 입은 외인 투수들이 린드블럼과 레일리였다. 린드블럼은 32경기에서 13승11패 평균자책점 3.56의 성적을 냈다. 210이닝을 소화하며 롯데 선수로는 1996년 주형광 이후 19년 만에 시즌 200이닝을 돌파했다. 최동원의 이름을 따 ‘린동원’이라는 애칭도 붙었다.

이종운 감독이 직접 보고 데려온 레일리는 31경기 11승9패 평균자책점 3.91을 기록했다. 타자 짐 아두치도 132경기에서 타율 0.314, 28홈런, 106타점을 올리며 맹활약했다. 그는 24개의 도루도 성공해 롯데 최초 20홈런-20도루를 달성한 선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롯데는 그 해 8위에 머물렀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외국인 선수의 활약도 토종 전력의 기량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결국 ‘야구는 팀 스포츠’라는 기본적인 핵심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