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그리고 느티나무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사람들의 섬김과 보살핌을 받던 느티나무가 우리 시대에 인간에게 외면을 당하고 있다. 주민들이 도시로 떠나고 마을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이제 느티나무는 홀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야위어가고 있다.

추석이면 고향에 간다. 길이 막혀도, 형편이 궁해도 집을 나선다. 나이가 들었어도 고향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고향 생각을 하면 마을을 지키는 당산목 느티나무가 떠오른다. 오래된 마을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었다. ‘느티나무는 귀신을 쫓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마을 입구나 고갯마루에 심었다. 추석날 보름달이 느티나무에 걸려 있는 풍경은 마을이 풍요롭고 평화롭다는 징표처럼 보였다.

김형규 기자

김형규 기자

하지만 설레며 찾아간 고향은 옛 모습이 아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뜨고 어머니들도 하나둘 떠나간다. 빈집이 늘어나고 아기 울음마저 끊긴 곳이 많다. 마을에는 풍문마저 떠돌지 않는다. 그저 고요할 뿐이다. 마을은 쇠락하여 그 이름마저 희미해졌다. 다만 느티나무만이 그대로 서 있다.

느티나무 아래는 쉼터요, 굿판이요, 의견을 모으던 회의장이요, 마을재판이 열렸던 간이법정이었다. 느티나무는 아이 울음소리, 싸우는 소리, 송아지 울음소리, 상여 나가는 소리, 기도 소리, 불효자 울음소리를 들으며 몸집을 불렸다. 마을 주민들의 태어남과 떠남을 지켜봤다. 그렇다보니 느티나무마다 이야기가 서려 있다. 그 이야기는 세월이 흐르면 전설이 되고 달빛을 받으면 설화가 되었을 것이다.

느티나무는 그 자태가 우람하지만 사람을 주눅 들게 하지 않는다.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500∼600년은 족히 살고, 어떤 나무는 천년 넘게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이 땅에 천년을 산 느티나무가 있다면 고려의 햇빛을 받고 태어나 조선의 바람을 맞고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렇듯 온갖 풍상을 이기고 살아남았지만 요즘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생명평화순례단과 함께 고을을 찾아가 빌어먹는 탁발순례에 동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 땅의 많은 느티나무를 볼 수 있었다. 쇠락한 마을에 서 있는 느티나무는 한눈에 봐도 건강하지 못했다. 모습은 우람했지만 왠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급히 주저앉는다. 집은 기둥이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집식구들이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사람 냄새가 지워지면 지붕 위에 풀이 난다. 느티나무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과 교감하며 살아왔다. 울 안의 감나무가 주인이 떠나면 열매를 맺지 않듯이 아마 느티나무도 그럴 것이다. 마을사람들의 기를 받아야 비로소 늠름할 것이다.

김택근

김택근

사람들의 섬김과 보살핌을 받던 느티나무가 우리 시대에 인간에게 외면을 당하고 있다. 주민들이 도시로 떠나고 마을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이제 느티나무는 홀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야위어가고 있다.

느티나무 아래에 펼쳐졌던 공동체의 삶이 스러지고 있다. 그럼에도 고향의 느티나무는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떠나고 홀로 고향이 되어 있다. 느티나무를 향해 안녕과 복을 빌던 사람들은 어느 하늘 아래에서 고향을 그리며 살아갈까. 느티나무가 그 무성한 잎들을 흔들며 사람들에게 그늘을 내어 주고 너털웃음을 터뜨릴 그날이 올까. 고향은 자꾸 말라가는데 떠난 사람들이 돌아올까.

고향에 가거든 느티나무에 기대어 보시라. 느티나무에게 말을 걸어 보시라. 느티나무 아래서 옛 벗들과 막걸리 한잔하시라. 좀 여유가 있다면 느티나무에 걸린 보름달을 보고 오시라. 느티나무에 걸려 있는 간절한 소원들을 담아 오시라.

<김택근 시인·작가>

김택근의 노을 노래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