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이여, 가을엔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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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그들만의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그대로 드러냈다. 새삼 이웃나라 복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한반도의 가을하늘은 청명할 것이다. 그리고 평화는 풀벌레 소리를 타고 내려올 것이다.

이상훈기자

이상훈기자

비에 더위가 씻겨 내려갔다. 처서(處暑)가 지나자 대번에 바람결이 달라졌다. 새벽녘에는 이불깃을 당긴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의 입은 비뚤어지고 매미 울음이 멀어진다. 햇살에는 따가운 침이 없어졌고 풀들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사람들은 비로소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깎는다.

옛사람들은 처서 이후 15일 동안에 일어나는 징후로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벼가 익는다고 했다. 밤에 귀 열면 온갖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벌레 소리는 온갖 상념을 끼얹는다. 이오덕 선생은 벌레 소리에 별빛 희망이 여물고 짓밟힌 풀들의 상처가 아문다고 노래했다.

‘너희들의 노래로/ 허물어진 흙담 앞에 서 있는/ 해바라기의 씨앗 속에/ 별빛 희망이 여물고// 너희들의 노래로/ 달개비꽃의 가난한/ 행복이 피어나고// 짓밟힌 풀들의/ 상처가 아물고// 냇물과 돌들이/ 살아서 숨쉰다.// 너희들은/ 지구의 숨소리// 가난한 목숨들의/ 평화의 기도// 이 밤에 빛을 뿌려 주는/ 저 별들을 위해/ 이 어두운 지구에서 보내 줄 것은/ 다만 너희들의 노래뿐이구나.’ (이오덕 동시 ‘벌레 소리’ 중에서)

가을 문턱에서 듣는 풀벌레 소리는 그대로 평화다. 그럼에도 풀벌레 소리 높으면 하늘과 땅에는 쓸쓸한 기운이 감돈다. 계절이 갈수록 사나워지고 있지만 올여름은 무던한 편이었다. 태풍이 왔어도 사납지 않았고, 뙤약볕도 견딜 만했다. 여름나기가 갈수록 힘든 것은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철저히 대비를 해도 자연의 노여움을 막을 수 없다. 그렇기에 비교적 순했던 이번 여름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얼마 전 쌍무지개가 떠 있는 사진이 소셜미디어(SNS)에 동시다발로 올라왔다. 자연의 선물처럼 보였다.

철 지난 바닷가 백사장에는 아직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남아있다. 사람들은 저 발자국을 남기고 어디로 갔을까. 문득 사람이 그립다. 어디에 있든 그들은 해변의 추억을 끌어안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외딴섬보다 깊은 산 계곡보다 사람들이 붐비다 홀연 떠나간 곳이 더 쓸쓸하다. 사람에 부딪히고 차여도 돌아서면 사람이 보고 싶다.

김택근

김택근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소나기가 잦다. 그때마다 여름은 조금씩 지워질 것이다.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고 나면 하늘은 마냥 푸르다. 그러면 하늘가에 어김없이 뭉게구름이 나타난다.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면 한 번쯤 풀밭에 누워볼 일이다. 눈 감으면 대지의 숨, 눈 뜨면 하늘의 결. 땅 위 모든 형상이 하늘에 떠 있다. 보고 있으면 나를 위해 단 하나의 표정을 만들어준다. 문득 들녘을 보면 허수아비가 서 있다. 허수아비들이 새떼를 부르고, 새들은 가을을 물어올 것이다.

지난여름에는 유독 험한 소식들이 많이 들려왔다. 3·1혁명 100주년을 맞아 지축이 흔들리도록 만세를 불렀는데도 일본은 보란 듯이 도발했다. 또 예상은 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그들만의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그대로 드러냈다. 새삼 이웃나라 복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한반도의 가을하늘은 청명할 것이다. 그리고 평화는 풀벌레 소리를 타고 내려올 것이다.

여름을 건너왔다. 우리 한국인들, 가을로 들어섰다.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면 그대의 가을이 왔음이니 문을 열라.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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