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멜로드라마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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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신선한 충격이다. 우선 캐스팅부터 깬다. 개성 강한 배우 천우희와 안재홍이 주인공이다. TV 속 연애질은 꽃미남 배우들이나 예쁜 여배우들만이 가능한 줄 알았는데 안재홍의 기타 연주에 반할 줄이야. 드라마는 일상이라는 재료에 코믹 소스 한 방울을 곁들이고 멜로 드레싱으로 버무린 상큼한 샐러드를 지향한다. 그러나 마냥 가볍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특유의 ‘병맛’ 유머코드로 잽을 날리다가도 ‘사랑과 우정’이 인생에서 얼마나 큰 축을 차지하는지 묵직한 카운터 펀치로 한 방에 보내버린다.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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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임진주(천우희 분)는 “난 사랑 타령하는 드라마가 좋아. 실제로 할 일이 없으니까”라고 주장하는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다. 그녀에게 입봉의 기회를 안기는 스타 드라마 PD 손범수(안재홍 분)는 ‘택배 받는 것과 식당에서 메뉴판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일을 좋아하는’ 괴짜다. 그는 자칫 흙속에 묻힐 뻔한 진주의 대본을 발견한 뒤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다. 우연히 하룻밤을 보낸 진주와 범수는 서로에게 질척이지 않으면서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멜로가 체질>의 미덕은 단순히 주인공의 사랑놀음에서 그치지 않고 2030 세대가 겪는 현실과 현장의 목소리를 ‘웃프게’ 표현하는 데 있다. 스타 작가 정혜정(백지원 분)의 문하생 생활을 거친 진주는 노동이 아닌 ‘노~오~력’을 요구하는 업계의 현실을 깨닫는다. 진주의 친구 은정(전여빈 분)은 다큐멘터리 감독의 꿈을 키우며 입사한 회사에서 온갖 갑질과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회사를 뛰쳐나와 스스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또 다른 친구 한주(한지은 분)는 드라마 PPL 현장에서 스타와 제작진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갑질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늘 고개를 숙인다. 이들의 이야기는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셰익스피어의 명제를 고스란히 따른다.

짠내 나는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건 사랑과 우정이다. 단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벼락부자’가 됐지만 물심양면 후원해주던 연인을 잃은 은정은 “사는 건 좋았던 시간 약간의 기억을 가지고 힘들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티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살을 기도한 뒤 조현병을 앓는 은정을 진주와 한주는 말없이 보듬는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대학시절 결혼과 출산, 이혼까지 홀로 감내해야 했던 한주의 육아를 도운 것도 진주와 은정이다.

드라마 속 세 여자는 여느 사랑에 목숨 걸지 않는다. 한없이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지만 오늘도 충실히 자신의 삶을 꾸려나간다. 마치 현실의 우리가 그러하듯.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랑은 없다지만 이병헌 감독은 세심하게 완급을 조절하는 디테일로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핑퐁게임처럼 주고받는 대사는 감독의 히트작 <스물>이나 <극한직업>처럼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다가도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새로운 사랑을 완성할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채 재방송만 무한반복 보게 된다.

<조은별 브릿지경제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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