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분양가상한제’ 칼 뽑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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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상황 고려해 적용 시기와 지역 결정키로… 반쪽 대책 가능성

“분양가상한제는 부동산 과열기에 도입된 것이다. 지금 부동산시장은 한겨울인데 한여름 옷을 입고 있는, 시대 상황과 맞지 않는 낡은 규제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투기가 일어날 우려는 없고 오히려 가라앉는 걸 걱정해야 한다.”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기준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낮추고, 재건축·재개발 단지에도 ‘최초 입주자모집공고 신청분’부터 상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8월 12일 오후 잠실주공 5단지의 모습. / 우철훈 선임기자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기준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낮추고, 재건축·재개발 단지에도 ‘최초 입주자모집공고 신청분’부터 상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8월 12일 오후 잠실주공 5단지의 모습. / 우철훈 선임기자

2014년 12월 당시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동산 3법이 정기국회 내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같이 언급했다. 부동산 3법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법, 분양가상한제 탄력 적용, 재개발조합원 1인 1가구 공급 폐지를 말한다. 최 전 부총리는 취임 초부터 부동산 3법 등을 통해 부동산 규제를 풀어 시장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최 전 부총리가 낡은 규제라고 비판했던 분양가상한제가 부활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12일 서울 전역과 경기 과천·분당 등 전국 31개 투기과열지구 중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곳에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는 내용의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기준 개선안’을 발표했다.

경제위기 때마다 완화된 ‘분양가상한제’

정부의 분양가상한제 확대방안은 발표로 이어지기까지 논란이 많았다. 경기침체 우려가 높은 시기에 부동산 규제를 발표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여당 내에서도 제기됐다. 실제 현 경제상황은 녹록지 않다. 1분기에 역성장을 기록한 한국 경제는 2분기에 반등에 성공했지만 수출 주력품목인 반도체 단가 하락 등으로 8개월 연속 수출이 뒷걸음질쳤다. 잠시 소강국면이었던 미·중 무역분쟁도 통화전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일본과의 갈등이 장기화하는 등 악화되는 대외적 경제여건도 이 같은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그동안 부동산은 가장 강력한 경기부양 카드였다. 1977년부터 시행된 분양가상한제가 경제위기 때마다 완화된 것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택지비에 정부가 고시하는 표준건축비를 더한 액수로 제한하는 ‘원가연동제’였던 분양가상한제가 1999년 전면 자율화된 것도 외환위기의 영향이 컸다. 2007년 민간택지 내 모든 공동주택까지 확대된 분양가상한제가 점차 완화된 시점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최 전 부총리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사실상 폐지한 당시에는 수출이 빠르게 하락하는 상황이었다. 2011년 17.1%를 기록했던 수출증가율은 2012년 4.4%를 기록한 뒤, 2015년과 2016년에는 각각 0.5%, 0.9%까지 곤두박질쳤다.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이 한계에 부딪히자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당시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정책과 기준금리 인하 등을 통해 부동산·건설경기 부양에 나섰다. 정부가 추진한 정책을 보면, 주택취득세 인하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한도 상향, 재건축 가능연한 축소, 그리고 민간택지의 분양가상한제 완화였다. 여기에 기준금리를 2.0%에서 1.25%까지 점차 낮췄다. 이를 통해 2011~12년 마이너스 13%였던 건설투자의 성장 기여율이 2013~15년에는 18%, 2016년에는 38%까지 상승했다. 2016년 2.7%였던 경제성장률의 2.2%가 정부 소비와 부동산 부양책 등에 따른 건설투자 영향이었다고 국회 예산정책처는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왜 경기하강 국면에 분양가상한제 카드를 꺼냈을까?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에는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기조로 인해 2015년과 2016년 2년에 걸쳐 가계부채 증가율은 10%를 웃돌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2013년 160.2%에서 2017년에는 185.9%까지 상승했다. OECD 국가 중에 2017년 기준 우리나라보다 부채 비율이 높은 나라는 6개국뿐이다. 미국(108.8%), 일본(105.6%), 독일(93.3%)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서는 두 배가량 높다. 가계부채 증가는 주택담보대출이 주도했다. 2014년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67.3%였던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2017년에는 79.3%까지 높아졌다.

부동산 활성화로 집을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자산 빈부격차도 소득 빈부격차보다 벌어졌다. 가계소득 증가율은 한 자리에 그쳤지만 아파트 가격은 20%, 전셋값은 50% 이상 급등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평균소득(경상 기준)은 2012년 4722만원에서 지난해 5124만원으로 8.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억677만원에서 3억1801만원으로 22%, 전세가격은 1억5526만원에서 2억3592만원으로 52% 급등했다. 이로 인해 2016년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304였지만 순자산 기준 지니계수는 0.585에 달했다. 지니계수가 ‘0’이면 완전평등, ‘1’이면 완전불평등을 의미한다. 이에 비춰보면 소득보다 자산의 불평등이 더 심각한 셈이다.

분양가상한제 부활을 이끈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야당 의원이던 2016년 당시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부동산시장을 부양해 내수경기를 견인한다는 이유로 정부는 기준금리를 거듭 인하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췄지만 그 결과는 서민 주거비 폭탄과 가계부채 급증이었다”고 혹평했다.

‘분양가상한제’, 아직은 칼집에 있다

특히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금리 인하로 시중 유동자금이 부동산시장에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부의 부동산 추가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세는 투자수요가 집중된 서울 강남권 재건축시장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서울의 분양가 상승률은 집값 상승률보다 약 3.7배 높다. 저금리 기조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1000조원에 가까운 단기 유동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추가 유입될 수 있는 대목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정부가 분양가상한제 카드를 빼들었지만 한편에서는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실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관문이 많기 때문이다. 민간택지에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려면 투기과열지구 지정뿐 아니라 분양가 상승률 요건, 또는 주택거래량 요건 등의 선택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들 요건을 만족하더라도 분양가상한제를 어느 지역에, 언제부터 적용할지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주재하는 주거정책심의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분양가상한제를 전면 도입했던 2007년과 달리, 시장 상황을 고려해 적용 시기와 지역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의 실제 시행 여부와 관련해 “정부가 실제 민영주택에 적용할지는 부동산이나 경제상황 등을 감안해 관계부처의 별도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집값이 오르더라도 실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대책을 두고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를 아직 확실히 표현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전면적인 분양가상한제 실시가 아니라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적용지역을 강화, 또는 완화할 수 있는 핀셋 적용으로는 고분양가와 아파트값 급등을 막을 수 없다”며 “상한제 적용지역 및 시기에 대한 결정을 10월 주거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시장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진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상한제를 하지 않기 위한 또 다른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영 경제부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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