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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폭주’를 밀어주는 4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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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코 경제산업상, 이마이 정무비서관, 스가 관방장관, 하기우다 자민당 간사장 대행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왜 폭주하는 것일까. 속내를 알 수 없다. 설혹 안다고 하더라도 대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로서는 관찰자 시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정교한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을 배제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은 이미 오래됐다고 지적한다. 정보당국 수준에서는 적어도 1년 전에는 흐름을 포착했어야 했다고 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말한다. 아베의 경제전략을 움직이는 최측근, 그리고 배후에 이들을 추동하는 우파단체와의 역학관계나 논리에 대한 정보와 분석은 아직 충분치 못하다.

8월 2일,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대상에서 제외하는 각의 의결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AFP·연합

8월 2일,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대상에서 제외하는 각의 의결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AFP·연합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 의제와 무관하게 무역 관리를 무리하게 화두로 삼은 한국과 마지못해 반론을 한 일본을 제외하고 본건을 화두로 삼은 나라는 전혀 없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반드시 바로잡기 바란다.”

8월 3일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교도통신 공식 트윗 계정에 멘션을 걸며 남긴 메시지다. 교도통신은 세코 경제산업상의 기자회견을 다룬 이 날짜 기사에서 중국의 후춘화(胡春華) 부총리가 “연내 타결을 위해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사실을 보도했다. 다른 언론 보도들을 체크해보면 후 부총리가 최근의 한·일 갈등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에둘러 언급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세코 경제산업상은 직접 언급이 없다는 점을 무기 삼아 자국 통신사 보도를 오보라며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제재 총대 멘 세코 경제산업상

1기 아베 내각에서 내각총리대신 보좌관을 시작으로 아베와 인연을 이어온 세코 경제산업상은 현재 일본의 경제보복을 총괄하고 있다. 7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과거사 문제 등은 이번 수출 규제조치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8월 2일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각의 의결도 그가 발표했다. 세코는 이번 대한 경제제재 조치의 기획과 실행, 정당화 조치 등과 관련해 거론되는 핵심 인물 중 하나다. 함께 거론되는 인사는 이마이 다카야(今井尙哉) 정무비서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 등이다.

이번 경제보복의 기획과 관련, 거론되는 인사가 이마이 비서관과 스가 관방장관이다. 두 사람은 부장관 3인과 함께 매일 아침 관저에서 열리는 ‘6인회의’의 핵심 멤버다.

도쿄대 법대 출신의 이마이 비서관은 경제산업성 관료 출신으로, 1차 내각 때 부처 파견 총리비서관이었다. 정치인 출신인 세코는 이때 홍보담당 총리보좌관을 했다. 2차 내각 때 세코는 관방부장관으로 1317일 동안 아베 총리를 보좌하다 경제산업상이 됐다. 이마이와 바통 체인지를 한 셈이다. 역시 관방부장관으로 아베를 보좌했던 하기우다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본의 수출규제 배경과 관련해 “화학물질의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사안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번 조치는 당연한 것”이라고 발언했다. 난데없이 북한을 끌어들인 것이다.

아베의 최측근 그룹 중 최연장자가 스가 관방장관이다. 1948년생으로 아베보다 6살 많다. 1975년 중의원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스가는 요코시마 시의원을 거쳐 1996년 중의원에 당선됐다. 그 후 1차 아베 내각에서 총무대신으로 입각한 뒤 줄곧 아베와 행보를 같이해 오고 있다.

“TV 시사프로그램을 보면 거의 80~90%가 한국을 비난하는 프로그램이다. 한·일관계를 다루는 패널들의 발언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8월 7일 기자와 통화한 이명찬 게이오대 방문연구원의 말이다. 그는 현재 일본에 체류하고 있다. 동북아재단 한·일관계연구소 연구위원을 맡고 있는 그는 <일본회의와 아베 정권의 우경화>라는 연구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에게 이번 수출규제와 ‘일본회의’ 등 일본 우익세력의 관련 여부를 물었다.

“내각 구성원 대부분이 일본회의 관련 인사라고 보면 된다. 정확하게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80% 가까이가 일본회의 소속이라고 보면 되고, 내각 말고 옆에서 보좌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일본회의에 경도된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그에 따르면 현재 일본회의 멤버의 면면은 전통적으로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해왔던 보수세력과도 또 다르다. “2012년 자민당 총재에 도전했다가 아베에게 석패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만 하더라도 다르다. 이런 사람들이 ‘보수 본류’다. 아시아와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아베와는 다르다. 당장 아베의 선친 아베 신타로만 하더라도 합리적 보수주의 전통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조부 아베 간은 일제 말 도조 히데키 내각에 저항했던 정치인이었다. 아베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뜻을 따라 개헌을 추진한다고 말하지만 그 역시 신중한 면은 있었다.”

‘보수 본류’와 다른 아베와 측근인사들

일본이 지금과 같은 정치체제로 변하게 된 중요한 전환점은 1996년의 소선구제 도입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 정치·경제 전문가인 이향철 광운대 동북아통상학부 교수는 “일본 정치의 특징은 오랫동안 자민당 독주체제였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당내 파벌이 있었고, 파벌의 보스를 중심으로 계파투쟁이 벌어지는 체제였다. 이것이 바뀌게 된 것은 1996년 소선구제 도입이다. 이전 중선거구제도 때는 한 선거구에서도 2~3명의 자민당 의원이 나올 수 있었고 그것이 파벌의 존립근거였다. 소선구제 실시로 그것이 불가능해지니 당 총재에게 권력이 집중된다. 그러면서 모든 압력단체들이 일렬종대로 줄을 서게 되는 것이다. 당 총재, 총리에게 잘못 보이면 모두가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 7월 <아사히> <요미우리> 등 일본 주요 언론사 논설위원들과 만나 깊은 속내를 들었다는 이명찬 연구위원은 “대놓고 비난하지는 못해도 아베 개인에 대해 (논설위원들이) 못마땅해 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한국 수출규제는 대부분 일본 국민들이 지지하고 있고, 문재인 정부가 잘못된 대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일본 언론인들은 전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양국의 역사문제가 한국에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고 보는 데 비해 일본의 입장에서는 계속 우려먹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건 일본이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인식이 없어서다.” 여기에 결정적인 패착이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다. 그 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양국 간의 합의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은 나라 간 합의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금의 수출규제는 오래갈 수 있을까. 일본 정치·경제 전문가들은 아베의 시도가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이향철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일본 국내에서는 통할지 모르지만 세계적 보편주의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행동이다. 제재가 계속되는 동안 한국은 고초를 겪을 것이다. 견제할 세력도 없기 때문에 아베의 독주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아베가 제시하는 논리는 결국 일본을 망가뜨리는 논리다. 지금의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기 어렵다. 여론이라고 하는 것도 동원된 여론이고 조작하기도 쉽다. 오히려 한국이 더 건강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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