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감독들에게 ‘해피 엔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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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자리는 흔히 ‘독이 든 성배’에 비유되곤 한다. 그러나 특히 롯데 감독의 자리는 더 쓰디쓴 독이 든 성배다. 최근 10년 동안 6명의 인물이 롯데 감독의 자리에 앉았다가 물러났다.

7월 28일 부산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 대 롯데 경기. 후반 3경기 모두 패한 롯데 선수들이 관중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연합뉴스

7월 28일 부산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 대 롯데 경기. 후반 3경기 모두 패한 롯데 선수들이 관중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연합뉴스

롯데는 전반기 종료와 함께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올 시즌 지휘봉을 잡았던 양상문 롯데 감독이 전격 사퇴했기 때문이다. 이윤원 단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시즌 중 감독과 단장이 동시에 팀을 떠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사유는 성적 부진이었다. 롯데는 올 시즌 유례없는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5월 중순부터 최하위로 곤두박질치더니 전반기를 10위로 마쳤다. 모든 지표가 바닥이었다. 타율 9위(0.257), 평균자책점 10위(5.18), 실책 1위(75개), 도루 10위(50개) 등을 기록했다. 양상문 감독은 “큰 포부를 가지고 롯데 야구와 부산 야구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부임했으나 전반기의 부진한 성적이 죄송스럽고 참담하다. 팀을 제대로 운영하려 발버둥쳐 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책임을 지는 게 팀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다”고 한 뒤 팀을 떠났다. 이로써 양상문 감독은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함께 떠안았다. 94경기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구단 역사상 가장 적은 경기 만에 물러난 감독이 됐다.

앞서 2004~2005년 두 시즌 동안 롯데 11대 감독으로 재임했던 양 감독은 2004년에는 꼴찌였던 팀을 5위까지 올려놓는 성과까지 냈다. 그러나 14년 만에 다시 돌아온 양 감독은 씁쓸함만 남긴 채 퇴장하게 됐다.

감독의 자리는 흔히 ‘독이 든 성배’에 비유되곤 한다. 그러나 특히 롯데 감독의 자리는 더 쓰디쓴 독이 든 성배다. 최근 10년 동안 6명의 인물이 롯데 감독의 자리에 앉았다가 물러났다. 이 중에서는 성적을 낸 이들도 있었으나 재계약은 쉽지 않았다. 후임 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벌써부터 오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누가 롯데 감독으로 가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양 감독을 포함해 그동안 롯데를 스쳐간 6명의 감독들을 보면 이 말의 뜻을 더 잘 알 수 있다.

롯데 감독들에게 ‘해피 엔딩’은 없다

재임 3년 모두 가을야구로 이끈 제리 로이스터(2008~2010년)

2008시즌을 앞두고 롯데는 파격적인 감독 선임을 했다. 2002년 밀워키의 감독대행을 했던 외국인 제리 로이스터를 감독으로 앉힌 것이다. 롯데 고위 관계자가 직접 움직여서 찾아낸 인물이었다. 학맥과 인맥으로 인사가 이루어지던 당시 롯데의 선택은 화제를 모았다. 로이스터는 그동안 한국야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지도력을 보였다. 더그아웃 칠판에 ‘노 피어(No Fear)’라는 말을 써놓고 선수들에게 ‘두려움 없는 야구’를 강조했다. 처음에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던 선수들에게도 이 같은 메시지가 퍼져나갔다. 로이스터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첫해 롯데는 정규시즌 3위를 기록했다. 직전 해 7위에서 무려 4계단이나 상승한 것이다. 로이스터는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았다. 롯데 감독 중 임기 3년 동안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건 로이스터가 처음이다.

자연스레 흥행도 따라왔다. ‘로이스터표 야구’는 화끈한 공격 야구였다. 이대호는 물론 카림 가르시아, 홍성흔, 강민호 등이 타구를 펑펑 쏘아올렸고 사직구장은 관중의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세 시즌 모두 롯데는 130만 관중을 유치했다. 2009년에는 138만18명으로 역대 한 시즌 최다 관중 신기록도 달성했다. 그러나 이런 영광을 안긴 로이스터도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롯데는 세 시즌 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다음 시리즈로 더 이상 올라가지는 못했다. 로이스터 계약의 마지막해였던 2010년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준플레이오프에서 2승을 먼저 올리고도 다음 세 경기를 내리 져 리버스 스윕을 허용했다. 롯데 팬들은 ‘로이스터 감독님의 연임을 지지합니다. We want jerry’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롯데 구단은 ‘단기전에 약하다’는 이유로 로이스터와 결별했다.

롯데 감독들에게 ‘해피 엔딩’은 없다

통산 최고 승률 양승호 감독(2011~2012년)

로이스터를 떠나보낸 롯데의 선택은 양승호 감독이었다. 이 역시 예상치 못한 선택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양 감독은 프로에서 코치는 해보았으나 감독 경험이 없었기에 질타의 시선도 있었다. 양 감독은 자신의 임무를 잘 알았다. 부임 당시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감독을 내치고 새 감독을 앉힐 때는 이유가 분명한 것이 아닌가. 구단이 원하는 건 우승일 것이다. 당장 내년 시즌에 우승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양 감독은 구단이 원했던 ‘우승’은 이뤄내지 못했다. 그러나 구단 역사상 팀을 가장 높은 곳까지 이끌었다. 2011년 롯데를 정규시즌 2위까지 올려놓고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다음해에는 정규시즌을 4위로 마쳤으나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쉽게도 두 시즌 모두 SK에 져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됐다. 양 감독이 두 시즌 동안 달성한 승률은 0.537로 역대 감독 중 최고다. 그러나 양 감독은 계약기간을 1년 남겨두고 팀을 떠났다. 두 시즌 모두 한국시리즈 진출 문턱까지 가고도 고배를 마셨다는 게 공식적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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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많은 감독도 피할 수 없는 고배, 김시진 감독(2013~2014년)

롯데의 다음 선택은 김시진 감독이었다. 직전 시즌 롯데의 고민 중 하나는 투수진이었다. 5선발 자리의 주인을 끝내 찾지 못했고, 포스트시즌에서 이에 대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 부분에 대한 부족함을 충족하기 위해 넥센에서 물러난 김시진 감독을 발탁했다. 그와 함께 정민태 투수코치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롯데는 그 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정규시즌 5위로 4위권에 들지 못했다. 그 다음 해는 더 최악이었다. 야구가 아닌 다른 일로 구설수에 시달렸다. 구단이 선수단 숙소를 감시한 이른바 ‘CCTV 사건’으로 야구계 전체가 들썩였다. 당시 여파로 롯데는 사장과 단장 등 프론트 수뇌부가 함께 사임했다. 팀 성적도 더 떨어졌다. 그 해 롯데는 정규시즌 7위로 떨어졌다. 김시진 감독은 최종전을 앞두고 사표를 냈다. 계약기간이 1년이나 남았지만 그 역시 채우지 못했다.

롯데 감독들에게 ‘해피 엔딩’은 없다

또다시 파격 선임 그러나…, 이종운 감독(2015년)

매번 예상치 못한 감독 선임을 했던 롯데가 이번에도 파격 카드를 꺼내들었다. 경남고 감독이었던 이종운 감독을 데리고 왔다. 프로 감독 경험이 전무한 감독을 다시 한 번 선택한 것이다. 사실 이종운 감독에 대해서는 팀 자체에서 엄청난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들이 활약하면서 예상 밖으로 팀이 선전했다. 그 해 조쉬 린드블럼과 브룩스 레일리가 KBO리그 무대를 처음으로 밟았다. 린드블럼은 13승(11패) 평균자책점 3.56으로 활약했고, 레일리도 11승(9패) 3.91을 올렸다. 외국인 타자 짐 아두치도 타율 0.314 28홈런 106타점을 기록했고 도루도 24개나 달성해 20-20클럽에도 가입했다. 게다가 시즌 중 장성우, 박세웅을 맞바꾸는 5대 4 대형 트레이드까지 단행하는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전력을 갖추고도 롯데는 8위에 그쳤다. 10구단 체제에 처음으로 접어든 해였기에 더욱 뼈아팠다. 이 감독의 팀 운영방식이 도마에 올랐다. 결국 이 감독은 1년 만에 팀을 떠나게 됐다.

롯데 감독들에게 ‘해피 엔딩’은 없다

5년 만의 PS, 역대 세 번째 재계약 조원우 감독(2016~2018년)

우승은커녕 포스트시즌과도 멀어진 롯데는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감독 선임으로 관심을 모았다. SK에서 수석코치를 지낸 조원우를 감독으로 앉힌 것이다. 조 감독의 첫해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직전 해와 같은 8위에 머무르며 하위권에서 시즌을 마쳤다.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2017년 반전이 일어났다. 전반기까지만 해도 기복이 있었던 롯데는 후반기 들어 반등하기 시작했다. 린드블럼을 다시 데려왔고 불펜에 조정훈까지 합류하면서 필승조를 구축했다. 전반기 7위에 그쳤던 롯데는 후반기에만 39승1무18패 승률 0.684를 올리며 정규시즌을 3위로 마쳐 준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NC와 만나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좌절했지만 5년 만의 포스트시즌이라는 성과를 안았다. 덕분에 조 감독은 2017시즌을 마치고 재계약에 성공했다. 김용희, 김명성 전 감독에 이어 롯데 구단 역사상 세 번째로 재계약에 성공한 감독이 됐다.

그러나 조 감독 역시 두 번째 계약기간은 채우지 못했다. 롯데는 2018시즌 전반기에는 롤러코스터를 탔고 시즌 막판에 무서운 기세로 5강 싸움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5강 문턱을 넘지 못했고 정규시즌을 7위로 마감했다. 조 감독도 다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롯데 팬들은 롯데를 부진의 늪에서 건져올릴 차기 감독을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 감독들은 썩 좋은 결말을 맺지 못했다. 누가 또다시 ‘독이 든 성배’를 쥐고 롯데를 끌고 나갈까. 롯데의 선택을 기다려본다.

<김하진 스포츠부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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