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군수, 또 비리 낙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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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당선자 6명 중 다섯 번째 위기… 관급공사 리베이트 혐의 받아

“또 잡혀가려나?”

역대 전남 화순군수들의 최대 목표는 ‘임기 달성’이다. 주민들도 ‘공약 실천’은 아예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제발 제자리에 있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뽑아만 놓으면 중도하차하는 군수를 바라봐야만 하는 주민들은 늘 맘이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공공개혁시민연합 등 화순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7월 3일 화순군청 광장에서 화순군 비리 척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공공개혁시민연합 제공

공공개혁시민연합 등 화순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7월 3일 화순군청 광장에서 화순군 비리 척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공공개혁시민연합 제공

화순군은 2000년 이후 당선한 군수 6명 가운데 4명이 각종 비리 등으로 구속돼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화순군은 민선 자치를 시작한 후 ‘임기 중 자치단체장 4명 낙마’라는 불명예 기록을 갖고 있다. 그래서 화순군은 ‘군수의 무덤’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재선에 성공해 5년째 자리를 지키는 구충곤 군수마저 낙마 위기를 맞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주민들이 술렁이고 있다. 관급공사 비리가 잇따라 터지면서 그 한가운데에 구 군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광주지검이 지난 6월 20일 뇌물수수 혐의로 군청 내 실세인 군수 비서실장과 총무과장을 전격 구속한 것이 신호탄이 됐다. 이들은 2016년 3월 13억원대 생태숲 공사를 화순군산림조합이 받도록 알선해주고 5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3년여 만에 들통이 났다. 뇌물은 산림조합이 3500만원, 공사 재하청을 받은 조경업자가 1500만원을 모아 총무과장(당시 경리팀장)에게 건넸고, 총무과장은 이를 다시 군수 비서실에서 비서실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연스럽게 수사의 칼날이 구 군수를 향해 가자 비서실장은 “군수에게 돈을 전달한 적이 없고, 개인적으로 모두 썼다”고 버티고 있다. 일단 구 군수와의 연관성은 차단된 상태다.

비서실장 구속으로 수사망 좁혀져

그러나 검찰은 산림조합의 또 다른 공사 수주에 비서실장이 개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아울러 그에게 화순군 ‘관급 비리의 연출자’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주시하고 있다. 여기에 전·현직 인터넷 언론인 2명이 산림조합에 관급공사를 받도록 해준 대가로 각각 4000만원, 7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후 지난 7월 18일 징역형을 선고받고 항소 중이다. 이들의 변호사는 이들이 비서실장과 호형호제로 지내는 사이라고 했다. 검찰은 법원에 엄벌을 요구하면서 “이들 2명도 비서실장에게 청탁해 목적을 이뤘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감춰진 ‘비리의 곳간’을 찾을 수 있는 열쇠를 발견했음을 시사한 것이다. 3개 사건에서 오고간 뇌물액수는 1억6000만원에 달한다.

화순군 안팎에서는 군수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이런 상습적인 리베이트(소개료) 비리가 이뤄지고, 군수 측도 각종 공사 수주를 미끼로 상당량 ‘비자금’을 챙겼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나돈다. 그 규모도 ‘장마철 저수지’처럼 넘칠 것이라는 예상까지 더해진다. 이를 뒷받침하는 튼실한 이유가 있다.

구 군수가 첫 당선한 2014년부터 재선 후 첫해인 2018년까지 화순군이 산림조합에 맡긴 공사규모는 115억원가량 된다. 그러나 검찰이 지금껏 확인한 뇌물비리는 겨우 20억원 안팎의 수주량을 둘러싼 리베이트 수수뿐이다. 검찰이 나머지 수주과정도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산림조합 측의 항변은 더 많은 뇌물비리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산림조합 한 관계자는 “관급공사 수의계약 혜택이 주어지는 산림조합을 통해 쉽게 공사를 수주토록 하고, 그 공사를 군수 측과 친분이 있는 무자격 업자들이 맡는 비리구도가 짜여 있어서 조합은 늘 적자를 면치 못했다”면서 “그 업자들도 군수 측에 공사를 얻은 대가를 상납해야 한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광주 시내에서 화순읍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선 ‘화순상징탑’도 교묘한 ‘혈세 빼돌리기’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화순읍에는 이미 전임 군수들이 세운 상징탑이 2개나 있다. 각각 예산 2억원, 5억원을 들여 세운 탑이다. 이 때문에 2016년 12월 ‘세 번째 상징탑’을 세우려 하자 불필요한 시설이라는 여론이 일었다. 하지만 군화(郡花)인 국화와 포도송이 이미지를 소재로 11m 높이로 탑을 건립했다. 예산도 9억7600여만원이나 들었다. 최근 한 시민운동가가 정보청구를 통해 작가에게 건네진 돈이 1억3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설치비·재료비를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수억 원의 불필요한 예산이 집행됐을 거라는 수군거림이 확산되고 있다.

‘군수 취임 기념석’ 모두 철거 목소리

정보청구자 ㄱ씨는 “작품성도 찾기 어려운 둥근 철골 조형물 몇 개 붙여놓고 10억원 가까운 세금을 썼다는 것은 틀림없는 공직비리”라고 했다. 그는 “군청 안에서 작가에게 더 적은 액수를 줬다는 말이 돌고 있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영수증을 공개해달라고 해도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는 답변만 돌아온다”며 사법기관의 개입을 촉구했다.

구 군수가 회장인 화순군체육회에서도 2015년부터 4년간 지자체 보조금 1억800만원을 불법하게 지급한 비리가 드러났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를 확인해 경찰에 넘겨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식당·게임방 등을 하다 구 군수 선거운동을 도운 인사들이 상임부회장·사무국장·차장 등 간부직을 독차지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감사원도 이례적으로 7월 26일까지 2개월여 동안 화순군 살림 전반에 대해 특별감사를 벌여 곧 결과를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시민단체들은 최근 ‘화순군의 부패 혐의’가 우후죽순격으로 불거지면서 국가기관들의 비리 캐기가 본격화하자 화순 읍내에 ‘비리 천국 화순군, 검찰은 수사를 철저히 하라’는 플래카드를 붙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꼬리’를 확인한 국가기관들이 조만간 ‘몸통’을 밝혀내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면서 색다른 화순군 비리 뽑기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군청 광장에 세워놓은 ‘군수 취임 기념석’을 모두 치워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군청 건물 왼쪽 잔디밭에는 구 군수 기념석에 이어 전국 첫 ‘부부 군수’ 기록을 세운 임호경(2002) 이영남(2004), ‘형제 군수’인 전형준(2006) 전완준(2011), 홍이식(2014) 등 전 군수들의 이름을 새긴 기념석이 차례로 박혀 있다. ‘부인 군수’인 이 군수를 제외하고 4명 모두가 비리 등으로 사퇴하면서 재선거·보궐선거를 치르느라 지자체 예산 20억원 이상을 낭비하는 피해를 냈다.

공공개혁시민연합 정리리 화순지회장은 “공직을 악용해 돈과 권력, 명예를 모두 독차지하려는 퇴행적인 지자체장들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6만3000여 주민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나 있다”면서 “새로 발령받아 오신 광주지검 수사진에게 화순군 비리에 적극 대응해줄 것을 호소하는 주민운동을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구 군수가 사정기관이 사실상 총동원돼 펼쳐놓은 감시망을 넘어 안착할 수 있을 것인지, ‘5번째 낙마 군수’의 불명예를 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남 화순·배명재 전국사회부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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