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못 품는 발렌시아, 남 주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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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이 완전 이적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발렌시아 수뇌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발렌시아 수뇌부는 급히 싱가포르에서 열린 대주주 회의에서 이 사안을 거론했다. 발렌시아의 선택은 ‘완전 이적은 없다’로 결론났다.

이강인이 지난 6월 30일 오후 인천시 중구 도원동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팬 사인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강인이 지난 6월 30일 오후 인천시 중구 도원동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팬 사인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역대 최초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대회 결승 진출. 그리고 준우승. 한국 축구가 지난 6월 막을 내린 2019 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만들어낸 기적과도 같은 성과다. 여기에 덧붙여 이강인(18·발렌시아)이라는 값진 보물을 얻었다는 것이 또 하나 성과로 꼽힌다. 한국은 결승에서 졌지만 이강인은 대회 최우수선수(MVP)에게 수여하는 골든볼을 수상하며 미래 한국 축구를 이끌 재목임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하지만 대회가 끝난 뒤, 이강인의 거취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난 시즌 이강인을 1군으로 승격시켰으나 기회를 주지 않아 많은 비난을 들었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발렌시아는 이번 시즌에도 이강인의 활용도에 대해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강인을 경기를 많이 뛸 수 있는 팀으로 임대를 보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강인이 발렌시아에 ‘완전 이적’을 요청했다는 사실도 현지 언론을 통해 밝혀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현재 이강인과 발렌시아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강인은 왜 이적을 요청했을까

이강인이 발렌시아에 완전 이적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 7월 18일. 스페인 발렌시아 지역지인 <수페르데포르테>가 “이강인은 발렌시아가 자신에게 들어온 이적 제안을 받아들이기 원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잠잠했던 한국 축구계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이강인이 발렌시아에 완전 이적을 요청한 이유는 간단하다. 현 상황에서 발렌시아에 남아있어 봤자 자신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발렌시아의 사령탑인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감독은 4-4-2 포메이션을 선호한다. 4-4-2 포메이션도 포지션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토랄 감독의 포메이션은 공격형 미드필더를 쓰지 않고 수비에 더 비중을 두는 ‘플랫 4-4-2’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인 이강인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이강인의 이적 가능성 등을 다룬 스페인 언론 보도. / 스페인 지역언론사 Las Provincias 기사화면 캡처

이강인의 이적 가능성 등을 다룬 스페인 언론 보도. / 스페인 지역언론사 Las Provincias 기사화면 캡처

이에 토랄 감독은 지난 시즌 이강인을 경기에 투입할 때 계속해서 본업이 아닌 측면에 배치했다. 측면 자원들에게 요구되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스피드다. 그런데 이강인은 냉정하게 평가할 때 그리 빠른 선수가 아니다. 측면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중앙 미드필더에 두자니 수비 부담은 물론, 체격면에서도 큰 약점을 갖는다. U-20 월드컵에서 정정용 감독이 한 차례 선보였던 최전방 기용에 대해선 토랄 감독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토랄 감독은 지난 시즌 팀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올려놨고 국왕컵 우승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현 시점에서 토랄 감독이 자신의 전술을 바꿀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다시 말해 이강인이 이번 시즌에도 기회를 좀처럼 잡기 어렵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강인은 보다 많은 경기를 뛰기 위해서라도 이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임대를 통해 다른 팀에서 뛰다가 다시 발렌시아로 복귀할 수 있음에도 완전 이적을 요청한 것은 이강인이 그만큼 발렌시아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강인이 완전 이적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발렌시아 수뇌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언론을 통해 사실이 알려지자 발렌시아 수뇌부는 급히 싱가포르에서 열린 대주주 회의에서 이 사안을 거론했다. 현재 스위스에서 발렌시아의 프리 시즌 일정을 지휘하고 있는 토랄 감독도 급하게 싱가포르에 왔다가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발렌시아의 선택은 ‘완전 이적은 없다’로 결론났다. 발렌시아 지역지인 <데포르테 발렌시아노>는 “발렌시아는 이강인의 거취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며 “확정된 것은 이적시키지 않겠다는 방침뿐”이라고 전했다.

사실 이강인을 완전 이적시킬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구단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발렌시아가 이강인에게 걸어놓은 바이아웃(특정 금액 이상의 이적료를 제시할 경우 소속 구단과 협의 없이 바로 선수와 협상 가능한 것) 금액은 무려 8000만 유로(약 1051억원)에 이른다. 그만큼 이강인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강인에게는 오히려 ‘족쇄’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완전 이적을 요청했다는 것은 거액의 이적료를 감수하고서라도 이강인을 영입하겠다는 팀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평행선을 달리는 이강인과 발렌시아

이강인은 일단 팀의 프리 시즌 일정에는 참가하고 있다. 지난 7월 21일 열린 AS모나코(프랑스)와의 프리 시즌 첫 경기에 선발로 나서 45분을 뛰었고, 24일 FC시옹(스위스)과 경기에서는 후반 시작과 함께 교체 투입됐다.

현 상황에서 이강인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는 없다. 결국 발렌시아의 선택에 따라 이강인의 미래는 결정된다. 냉정하게 평가해 이강인에게 책정한 8000만 유로의 바이아웃 금액을 발렌시아가 모두 받아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느 정도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돈을 받으면 이적 가능성이 있는데, 이강인이 아직 1군에서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 없어 이마저도 의문이다.

발렌시아가 이강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음은 확실하다. 발렌시아는 U-20 월드컵 기간 내내 이강인의 활약상을 관심 있게 지켜봐왔으며, 골든볼을 수상하자 구단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축하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전하기도 했다. 발렌시아 팬들도 ‘이강인을 선발로 써야 한다’는 압박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구단 입장에서 선수 장사로 최대한 많은 돈을 벌려는 욕심은 당연하다. 다만, 지금의 발렌시아는 이강인의 이적과 잔류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이득과 손해를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성장 가능성에 주목해 잔류를 시키려면 그만큼의 기회를 보장해줘야 한다. 확실하게 매듭짓지 못하고 애매하게 흘러가는 지금의 상황은 이강인과 발렌시아 둘 모두에게 좋지 않다.

<윤은용 스포츠부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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