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는 호날두, 티켓값 40만원이 아까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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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가 ‘최소한 45분 이상 뛴다’는 소식에 최고 40만원부터 최저 25만원까지 세 종류로 나뉜 프리미엄존이 단 15분 만에 매진됐고, 나머지 좌석도 2시간30분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국내에 12년 만에 이례적인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 큰비를 걱정하는 기상청 예보는 아니다. 한 축구선수가 골을 터뜨리면 양손과 양발을 벌린 채 ‘호우’(Siu)를 외치는 세리머니가 상암벌을 찾을 축구팬들을 설레게 만든다는 말이다.

프로축구 유벤투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지난 4월 20일 피오렌티나전에서 관중을 향해 손키스를 날리고 있다. / AFP연합뉴스

프로축구 유벤투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지난 4월 20일 피오렌티나전에서 관중을 향해 손키스를 날리고 있다. / AFP연합뉴스

포르투갈 출신으로 현역 최고의 테크니션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유벤투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국내에는 ‘우리 형’이라는 애칭으로 친숙한 호날두는 2007년 이후 처음 한국에서의 골 폭죽을 예고했다. 7월 26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팀 K리그와의 친선전이 그가 준비한 무대다.

호날두와 유벤투스의 힘

호날두는 라이벌인 리오넬 메시(32·바르셀로나)와 함께 세계 축구계를 양분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로 이적한 호날두는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만 메시와 함께 역대 최다인 5번 수상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하는 월드 베스트 일레븐에도 세계 최다인 12회 연속 선정됐다. 호날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와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등에서 들어 올린 우승컵만 31개. 유럽 3대리그(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에서 모두 MVP(최우수선수)에 오른 유일한 선수라는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닌다.

그런 호날두도 유벤투스에서는 “나 혼자만의 팀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1897년 창단한 유벤투스는 이탈리아 최고의 명문 프로축구 팀이다. 이탈리아 1부리그인 세리에A에서는 최근 8연속 우승을 포함해 35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선수들의 면면도 쟁쟁하다. 파울로 디발라(26)와 조르지오 키엘리니(35), 잔루이지 부폰(41)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즐비하다. 베스트 일레븐의 몸값만 해도 4억5850만 유로(약 6069억원)에 달한다. 최근 이적시장을 뒤흔든 네덜란드의 젊은 미래 마타이스 데 리흐트(21)도 바르셀로나와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의 관심을 뿌리치고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었다.

호날두와 유벤투스의 명성은 국내에서도 통했다. 유벤투스와 국내 프로축구를 대표하는 K리거들의 맞대결 경기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돼 한국 프로스포츠의 역사가 바뀐 것이 증거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유벤투스와 K리그 선발팀의 입장권 판매수익만 60억원”이라며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단일 경기 최대 수입”이라고 말했다.

종전 최고 기록은 2013년 네이마르(27·파리 생제르맹)를 비롯해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브라질과 한국 축구대표팀의 평가전이었다. 당시 입장권 판매금액은 27억원이었다. 불과 6년 만에 두 배를 뛰어넘는 액수를 기록했다. 화려한 스타들의 면면이 무조건 흥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에 더욱 놀랍다. 이름값에서 크게 차이나지 않는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2010년 K리그 올스타와 맞붙은 경기에선 흥행에 실패하는 참사도 있었다. 그러나 호날두가 ‘최소한 45분 이상 뛴다’는 소식에 최고 40만원부터 최저 25만원까지 세 종류로 나뉜 프리미엄존이 단 15분 만에 매진됐고, 나머지 좌석도 2시간30분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호날두는 매진 소식에 “한국을 다시 방문하게 돼 매우 기쁘다”며 “K리그 선수들과 멋진 경기를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K리거는 들러리?… 선수들도 활짝

빛이 화려할수록 그림자도 짙은 법. 호날두와 유벤투스가 부각되는 것에 환영하는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선 리그가 한창 진행 중인 바쁜 시기에 휴식을 포기하고 나서는 K리거들이 ‘바람잡이’를 자처하는 들러리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2010년 바르셀로나의 ‘조연 역할’에 그치는 아픔 속에 올스타전의 의미가 퇴색된 경험도 있다. 이번 경기는 1부리그인 K리그1 12개팀의 132명 선수를 대상으로 7월 8일부터 14일까지 팬 투표를 진행해 11명(9명은 연맹 경기위원회 추천)을 선발했기에 사실상 올스타전이지만, 굳이 팀 K리그라고 명명해 의미를 한정지은 배경이기도 하다.

다행히 팬 투표로 뽑힌 K리거들은 호날두 그리고 유벤투스와의 맞대결을 앞두고 기대하는 눈치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슈퍼스타는 선수들도 설레게 만든다. 올해 K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불리는 세징야(30·대구)는 팬 투표에서 5만6234표를 받아 미드필더 부문 1위에 오른 뒤 “어릴 때부터 호날두를 동경했다. 내게는 영웅이라 그를 상대한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며 “축구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지만 만나서 골을 넣고 호우 세리머니를 하겠다. 유니폼 교환도 부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 오는 호날두, 티켓값 40만원이 아까우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팬 투표를 독려해 출전 기회를 잡은 선수도 있다. 울산 수비수 박주호(32)는 스위스 출신 아내 안나씨가 SNS에 TV예능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아들 건후의 사진을 올린 덕에 라이벌 홍철(29·수원)을 불과 1021표 차이로 따돌릴 수 있었다. 홍철은 “정말 뛰고 싶었지만, 난 혼자인데 박주호는 4명(본인·아내·딸·아들)이 나서서 싸웠다. 이길 수가 없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K리그 구단의 한 관계자는 “선수들이 일주일에 3경기를 치르는 여름철 쉬지도 못해 힘든 상황에도 호날두 같은 대스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반기고 있다”고 귀띔했다.

팬들의 관심사는 이번 경기가 단순히 이벤트전일지 아니면 진검승부로 흘러갈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승부의 콘셉트에 따라 경기 양상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벤트전이라면 양 팀 모두 자선축구처럼 골 폭죽을 쉴 새 없이 보여주겠지만, 진검승부라면 거친 태클이 난무하는 실전이 될 수 있다.

전년도 우승팀이 K리그 올스타팀 사령탑을 맡는 관례에 따라 ‘팀 K리그’를 이끄는 조제 모라이스 전북 감독(54)은 “즐거운 경기가 될 것 같다”면서 “축제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브라질에서도 이런 자선 축구경기를 해본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모라이스 감독은 일단 승패보다는 팬 서비스에 초점을 두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팬심으로 무장한 선수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팬 투표로 선발된 K리거 11명의 몸값 총액은 유벤투스 11명과 비교하면 48분의 1에 불과한 126억원(독일 이적 전문 사이트 트랜스퍼마크트 기준). 상대적으로 이적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 국내 선수들이 홀대받았기에 나온 결과지만 객관적인 실력에서도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안방에서 열리는 경기에선 일방적으로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화려한 득점쇼? 치열한 진검승부?

국내를 넘어 유럽까지 중계되는 이 경기에서 진가를 발휘할 경우 해외 구단에도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게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 이적을 추진하고 있는 골키퍼 조현우(28·대구)는 “호날두를 상대하는 것이 굉장히 영광스럽지만 K리그를 대표한다는 자부심도 잊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벤투스 역시 친선전이라고 힘을 빼거나 우스운 경기를 보여줄 생각은 없기에 진검승부로 흘러갈 가능성은 더욱 높다. 조르지오 리치 유벤투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유벤투스는 어떤 경기든 좋은 경기력으로 이기는 걸 우선으로 한다”며 “호날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벤투스는 이번 방한을 통해 유벤투스, 나아가 세리에A 브랜드를 아시아에 알린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며 더욱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프로축구연맹도 내심 K리그 활성화와 리그 수준에 대한 혹평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진검승부를 바라는 눈치다. 지난해 러시아월드컵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살아난 한국축구의 봄날은 올해 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우승으로 한껏 달아올랐다. 덕분에 K리그 역시 지난해보다 평균 관중이 8176명으로 크게 늘어나 100만 관중 돌파 기록을 2개월 앞당겨 달성했다. 팀 K리그가 유벤투스를 상대로 선전한다면 2016년 이후 첫 200만 시대도 기대할 수 있다. K리그 올스타는 아니지만 수원 삼성이 2004년 바르셀로나와 친선전에서 예상을 뒤엎고 조란 우르모브(42·은퇴)의 그림 같은 프리킥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한 것이 재현된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연맹의 한 관계자는 “모라이스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들과 선수들이 만나 의견을 조율할 것”이라며 “어떤 방향이건 팬들에게 최고의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황민국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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