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대응 친환경차 로드맵을 짜자

(2) 내연기관차 퇴출 ‘선언’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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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분명한 방향 제시해야… 친환경차 미래에 대한 확신 커져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경유차가 많이 판매되는 나라는 없다. 경유와 휘발유 가격의 차이가 많이 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소비자들이 경유차를 선호하게 된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강조했다. 왜곡된 경유차 우대 및 가격 정책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경윳값 인상이 시급한데도 오히려 정부가 소비자 눈치만 보고 있다고도 했다.

독일 뤼셀스하임에 있는 한 전기차 충전소의 모습. 독일은 지난 5월까지 전기차 판매대수가 3만8000대로 전년 대비 39% 증가했다. 이 추세라면 독일은 올해부터 유럽 최대의 전기차 시장으로 부상하게 된다./로이터연합뉴스

독일 뤼셀스하임에 있는 한 전기차 충전소의 모습. 독일은 지난 5월까지 전기차 판매대수가 3만8000대로 전년 대비 39% 증가했다. 이 추세라면 독일은 올해부터 유럽 최대의 전기차 시장으로 부상하게 된다./로이터연합뉴스

경유차는 수도권 미세먼지 오염의 주범으로 꼽힌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 가운데 경유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11% 정도다. 사업장, 건설기계·선박, 발전소에 이어 4위다.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에서는 23%로 1위다.

미국과 일본에서 경유차 판매량이 전체 차량의 각각 2%, 1% 이내인 것과 비교하면 국내의 경유차 ‘사랑’은 각별하다. 연비가 좋다는 이유로 세제혜택, 주차장 할인혜택 등으로 경유차 소비를 권장했던 정부의 탓이 크다. 경유 가격은 2000년 휘발유 가격의 49%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면 그 격차가 줄었지만 여전히 7~10% 가량 더 싸다. 소비자들은 연비와 가격을 비교하면 경유차가 조금 비싸도 몇 년 안에 회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미세먼지·대기오염 해결, 경유차 줄여야

실제 전체 차량 등록대수에서 경유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했다. 2012년 700만대로 전체의 37.1%를 차지한 경유차의 비율은 지난해 말 993만대로 늘어 42.8%까지 뛰었다. 휘발유차는 같은 기간 49.2%(927만대)에서 45.8%(1063만대)로 줄었다.

홍종호 교수는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대도시의 경유차 판매를 줄이고 전기차 판매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윳값을 인상하는 순간 최소한 경유 승용차 판매량은 줄일 수 있다고 봤다. 강광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명예연구위원도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미세먼지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주요 발생 원인인 경유차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며 “휘발유 등 경쟁 연료에 대한 경유 상대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종호 교수는 매년 2조원 이상 나가는 유가보조금을 점진적으로 줄이는 대신 소형트럭을 이미 개발된 전기 트럭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화물연대도 유가보조금을 받는 것보다는 운임을 현실화시켜 달라는 요구를 한다”며 “운임이 너무 낮아 보조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물류업계의 구조적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기 폐차 지원금을 받아 노후 경유차를 폐기하도록 하면서 경유차 신차를 사도록 허용한 것도 문제라고 봤다. 홍 교수는 “유럽에서는 미세먼지가 우리처럼 심각하지 않아도 경유차가 대기오염의 주요 원천이라고 보고 퇴출을 이야기한다”며 “우리는 도시에서 경유차 미세먼지 기여율이 가장 높은데도 판매 증가세가 지난 10년간 꾸준히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럽에서 디젤차의 판매량은 급격히 줄고 있다. 프랑스의 자동차시장 조사기관 AAA에 따르면 유럽의 신규 등록 승용차 중 디젤차의 비율은 2015년 52.1%에서 2018년 36.5%로 떨어졌다.

[기후변화 대응 친환경차 로드맵을 짜자](2) 내연기관차 퇴출 ‘선언’부터 하자

폭스바겐은 유럽에서 배터리 전기차를 20만대 이상 판매하겠다고 밝히는 등 공격적으로 탈(脫)내연차 행보를 보이고 있다. ‘디젤게이트(배출가스량 조작)’에 따른 신뢰 저하와 규제 강화 때문에 전기차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유럽연합(EU)은 2020년까지 ㎞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대당 평균 95g으로 2017년 대비 약 20% 낮췄는데 배출량이 기준을 초과할 경우 1g당 95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PA컨설팅은 폭스바겐의 경우 2021년 14억 유로(약 1조8474억원)를, 현대·기아차는 3억 유로(약 3958억원)의 벌금을 낼 것으로 예상했다. (도요타와 르노닛산, 미쓰비시, 볼보, 혼다 등은 목표치보다 더 낮은 수준을 달성해 벌금을 내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에서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는 국가는 노르웨이다. 노르웨이의 전기차 판매비중은 2017년 39.2%, 2018년 49.1%에서 올해 3월 77%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노르웨이의 경우 자동차 부가가치세로 판매가의 25%를 적용한다. 반면 전기차에 대해서는 부가세를 면제해준다. 공해 차량의 자동차 등록세도 저공해 차량에 비해 훨씬 높다. 이인성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전기차에 대한 등록세, 부가가치세, 보유세, 유료도로 통행비 면제 등 각종 혜택이 워낙 파격적이다보니 내연기관에 대한 역인센티브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친환경차 협력금 제도도 시행 유예

영국은 주요 7개국(G7) 중 처음으로 지난 6월 27일(현지시간) 탄소배출 순제로를 확정했다. 2050년까지 모든 분야에서 온실가스 순배출을 제로로 하고, 내연기관차 신규 판매 금지 시점을 종전보다 5년 앞당겨 2035년으로 한다는 방안이 포함됐다. 40도를 넘는 때이른 폭염이 유럽을 달구는 시점이었다. 프랑스도 의회에서 탄소배출 제로를 논의하고 있고, 독일은 EU 차원에서 이를 도입하길 희망하고 있다.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네덜란드나 노르웨이는 경유차나 내연차 산업을 갖고 있지 않아 손해를 보는 그룹이 적고 전기차로 이익을 보는 산업은 많아 내연차 퇴출에 대한 정치·사회적 합의가 쉬웠고, 영국도 자동차 경쟁력이 옛날 같지 않아 탈탄소 선언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독일은 디젤게이트로 EU 내의 리더십 문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차로의 대전환이 가시화됐지만 한국은 경유차 감축 로드맵 발표도 계속 미루고 있다. 친환경차 협력금 제도(정식 명칭은 저탄소차 협력금제)는 2021년까지 시행이 유예되면서 사실상 관심사에서 멀어진 듯 보인다. 친환경차 협력금 제도는 내연차 구매자에게 부담금을 걷어 전기차 등 친환경차를 사는 소비자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김영민 환경부 교통환경과장은 “저탄소 협력금 대신 지금 의무판매제에 논의를 집중하고 있다”며 “경유차 감축 로드맵은 부처 협의 중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저탄소차 협력금제’를 친환경차 의무판매제(정식 명칭은 저공해차 보급목표제)로 병합·대체하려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탈내연기관 로드맵을 선언해 분명한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인성 캠페이너는 “자동차가 환경에 치명적인 이유는 미세먼지뿐 아니라 온실효과를 낳는 이산화탄소 때문”이라며 “경유차만 논의하면서 미세먼지로만 엮으니 내연차 전체가 야기하는 기후변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정 시점에는 한국에서도 무공해차만 신규 판매할 수 있다고 정해놓아야 제조사와 소비자가 이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준희 교수도 “실행은 어려워도 선언이라도 있어야 그 분야로 나가려는 혁신세력이 용기를 얻는다”며 “선언조차 없으면 뭘 하겠느냐. 아예 시작도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래가 전기차에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등대를 켜지 않은 것이 지난 10년간 정부의 가장 큰 문제였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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