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보다 ‘평생수입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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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여러 소득활동하는 ‘n잡러’ 은퇴 후에도 지속적 소득 가능

하나의 직장에서 평생을 일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 소득의 전부인 세상은 이제 저물고 있다. 평생직장보다는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두는 이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동시에 여러 소득활동을 한다는 의미에서 ‘n잡러’라고도 불리는 이들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감을 얻을 수 있는 디지털 인력 중개 플랫폼이 여기에 날개를 달았다.

글로벌 공유 오피스 업체 위워크의 공용 사무공간에서 사람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장소와 시간에 구애없이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족들에게 현지의 공유 오피스는 훌륭한 일터이자 사교의 장이 된다. / 위워크 제공

글로벌 공유 오피스 업체 위워크의 공용 사무공간에서 사람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장소와 시간에 구애없이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족들에게 현지의 공유 오피스는 훌륭한 일터이자 사교의 장이 된다. / 위워크 제공

회사를 그만두고서도, 은퇴하고서도 걱정이 없으려면 안정적인 소득원을 확보해야 한다. 일에 관계없이 들어오는 ‘지속적 소득’의 대표적인 예는 은행에 넣어둔 예금의 이자나 부동산 임대소득이다. 종종 ‘불로소득’으로도 불리는 이런 소득을 일반인이 갖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지속적 소득을 얻을 수 있는 활동들이 다양해지고 진입도 쉬워지고 있다. 에어비앤비의 호스트 활동이나 앱 개발과 앱 디자인, 유튜브 영상 제작, 출판 등이 그것이다.

서울 광진구에 거주하는 김귀녀씨(63)가 선택한 방법은 에어비앤비의 호스트 활동이다. 8년 전 은퇴할 시점에는 연금을 비롯한 노후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취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우연히 살고 있는 집의 일부를 내주는 숙박 공유를 알게 됐다. 딸이 결혼하면서 빈 방을 이용해 외국인 관광객들을 받았다.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아도 가능했다. 수입은 한 달에 평균 200만원 정도로 들어왔다. 연금 같은 돈이다. 여유시간은 많아졌고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로 노후 걱정 덜어

그뿐이 아니다. 김씨는 “일석몇조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유가 생기니 친구들과의 모임에 가서도 커피나 밥을 살 수 있고, 사람들을 만날 때의 자신감도 높아졌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그는 전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었다. 서툰 영어는 제법 능숙해졌다. 번역 앱이 생겨 일본인 관광객과도 소통이 가능해졌다. 김씨는 “손님들은 거의 젊은 사람들이라 엄마라는 생각으로 맞이하고 있다”며 “K팝이 인기가 있으니 젊은 사람이라면 더 통하는 게 많고 할 말도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포항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우현씨(27)는 회사 일과 병행할 수 있는 해외 선물투자로 부수입을 얻고 있다. 취업 전에는 코딩을 독학해 기초적인 스마트폰 앱을 출시했다. 그 후에는 아마존 제휴 마케팅 등에도 손을 댔다. 지난해 <지속적 소득>(새로운제안)이라는 책을 내 인세수익도 있다.

김우현씨는 “사실 앱 개발이나 제휴 마케팅으로 큰 돈을 벌진 않았다”면서 “하지만 충분히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 아이폰 앱 개발자와의 방콕에서의 만남을 인상깊게 여겼다. 비싼 집세와 고통스런 출퇴근길을 감내하며 사는 한국 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그에게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면서 앱 개발로 생활하는 그에게서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김우현씨는 “보수적인 국내 분위기 상 디지털 노마드 형태의 원격근무를 허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영토가 넓고 부동산 비용과 생활비가 높은 나라는 원격근무를 적극적으로 허용하는 흐름을 보인다”며 “특히 미국의 기업들은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붙잡는 투자 개념으로도 이런 근무형태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초 일본의 메가뱅크 중 하나인 미즈호 파이낸셜그룹이 직원 6만여명을 대상으로 올 하반기 중에 겸업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월화수는 회사에서 일하고 나머지 이틀은 다른 회사나 창업한 곳에서 일해도 된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직장 외의 일터에서 얻은 경험과 통찰이 회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하지만 비슷한 사례를 국내에서 찾긴 어렵다. 잡코리아 관계자는 “많은 회사들이 취업규칙이나 사규로 제한적으로 겸업을 허용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런 외부 활동으로 자칫 사회적 물의가 생기면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고, 회사의 기존 질서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개는 좋게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메가뱅크 그룹 겸업 허용키로

실제 지속적 소득활동을 직장생활과 병행하기 어렵다는 게 n잡러들의 견해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배효선씨도 그랬다. 배씨는 주업은 공간 디자인, 시공, 현장 감리이고 부업은 에어비앤비 호스트다. 원래 주업으로 회사에 다니다 청년창업 공모전에 숙박 공유가 당선돼 에어비앤비를 시작했는데 눈치가 보여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했다. 퇴사를 하고 나서야 강원도 강릉에 구옥을 마련해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지속적인 소득을 꿈꾼다면 일단 처음에는 작게 시작해야 한다. 김귀녀씨는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하면 실망하기 십상이다”라며 “용돈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해야 재미가 있고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씨도 초기 에어비앤비 수익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작지만 안정적인 수익이 있었기에 퇴사의 용기를 내고, 본질은 비정규직이라 할 프리랜서 일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있었다.

배씨는 “프리랜서는 혼자 일하는 거라 소속감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며 “사람은 소속감에서 얻는 안정감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허탈해하거나 상실감을 크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퇴사라는 결정을 하고, 프리랜서 활동을 하기에 앞서 자신이 심리적 불안감과 상실감을 잘 견딜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씨는 현재 주업과 본업에 7대 3의 비율로 시간을 쏟는다고 했다. 간혹 여행지에서 디자인 설계도 하지만 시공과 현장 감리를 하려면 한국에 돌아와야 해 완전한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장소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무작정 자유롭고 편한 건 아니다. 오히려 직장생활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때도 있다. 다만 회사라는 조직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뿐이다.

김우현씨는 “아무 지식이나 기술 없이 지속적인 소득활동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코딩을 배우든 투자기법을 배우든 꾸준한 노력과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공무원시험의 인기를 나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지만 이는 자신의 삶이 일에 지배당하고 싶지 않은 소망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며 “돈을 적게 벌어도 일과 삶의 균형 있는 삶을 바라는 사람들은 지속적 소득활동을 꾸준히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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