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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환불 불가, 약관법상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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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중심 ‘OTA 태스크포스’ 곧 출범… 국내 소비자 피해 방지대책 마련

국내 여행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큼에도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해외 온라인 여행예약 사이트(OTA) 업체들을 겨냥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다.

<주간경향> 확인 결과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 한국소비자원 등 정부 부처와 한국관광공사, 한국여행업협회 등 유관기관, 국내외 사업자들이 참여하는 ‘OTA 태스크포스(TF)’가 조만간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부처는 유관기관, 국내외 사업자들과 함께 해외 온라인 여행예약 사이트(OTA)의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고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할 태스크포스를 조만간 출범시킬 계획이다. 사진은 세종시에 있는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 위키피디아

공정거래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부처는 유관기관, 국내외 사업자들과 함께 해외 온라인 여행예약 사이트(OTA)의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고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할 태스크포스를 조만간 출범시킬 계획이다. 사진은 세종시에 있는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 위키피디아

문체부 관계자는 지난 6월 19일 “외국계 OTA 업체들을 국내법으로 규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내 업체와 공정하게 거래하도록 하고, 소비자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자는 차원에서 조만간 TF를 만들려고 한다”고 밝혔다. TF 출범을 위해 정부 부처·기관 등이 모여 두 번에 걸쳐 회의를 했다.

문체부는 한국소비자원 등의 실태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TF를 꾸리고, OTA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올해 말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실행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OTA 사업자들도 TF에 참여시킬 생각이다. 공정위 관계자도 “여러 부처가 모여 해외 여행예약 사이트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책임 범위 등을 정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상설적인 논의기구를 만들어 사업주를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OTA 대응반’ 출범시킨다

정부는 아고다와 부킹닷컴, 에어비앤비 등 세 업체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아고다와 부킹닷컴은 공정위의 ‘환불 불가 약관’ 시정명령에 불복해 지난 3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정부 부처의 OTA 태스크포스 논의는 그 직후 시작됐다. 정부 관계자는 “아고다와 부킹닷컴, 에어비앤비가 우리가 마련한 회의석상에 앉을 때까지 계속 접촉을 시도 할 생각”이라며 “이들은 국내 숙박업계에 고율의 수수료를 강요하고, 소비자들에게 불리한 환불 취소 규정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숙박업체들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홍보할 수단이 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익스피디아와 아고다, 호텔스닷컴 같은 외국 OTA 업체들이 최대 30% 정도가 되는 고율의 수수료를 협상 없이 일방적으로 책정하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해당 숙소를 노출시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TF에서 만든 가이드라인은 해외 업체들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그 준수 여부를 조사해 발표하면 소비자들에게 최소한 ‘나쁜 기업’이 어디인지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여행업체들은 총액요금 표시제 등 준수할 사항이 많은데도 해외 업체들은 이런 의무를 지고 있지 않다. 규제를 준수하는 일은 사업자 입장에선 모두 비용이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출발선이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가 태스크포스를 꾸리는 배경에는 이런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킹닷컴(위)과 아고다에서 7월 27~28일 묵을 숙소를 환불 불가 조건으로 검색한 결과, 두 업체는 남아있는 기간과 관계없이 예약을 취소할 경우 전액을 위약금으로 물도록 하고 있다. 남아있는 기간에 따라 위약금을 달리하도록 고치라는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불복해 두 업체는 지난 3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부킹닷컴(위)과 아고다에서 7월 27~28일 묵을 숙소를 환불 불가 조건으로 검색한 결과, 두 업체는 남아있는 기간과 관계없이 예약을 취소할 경우 전액을 위약금으로 물도록 하고 있다. 남아있는 기간에 따라 위약금을 달리하도록 고치라는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불복해 두 업체는 지난 3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공정위의 경우 이들의 ‘환불 불가 약관’이 주된 관심사다. 숙박 예정일까지 아직 ‘상당한 기간’이 남아있는 경우에는 고객이 예약을 취소해도 해당 객실을 재판매할 수 있다. 그럼에도 숙박 예정일까지 남아있는 기간에 상관없이 숙박대금 전액을 위약금으로 부과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과도한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하게 해 약관법상 무효라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아고다와 부킹닷컴은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조항을 적용하고 있고, 소비자들이 환불 불가 상품인 줄 알면서도 구매했기 때문에 불공정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공정위는 “외국 사업자라고 해도 국내 소비자들과 계약해 영업하기 때문에 당연히 약관법이 적용된다”는 입장이다.

약관법을 갖고 있는 나라가 한국과 독일 정도인데 국내 당국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두 업체의 주장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수연 한국소비자연맹 팀장은 “영국의 경우도 소비자 보호 강화 규제라는 조항이 있어서 최저가라고 해놓고 세금 등 추가 비용을 빼놓는 행태나 불필요한 광고문구로 소비자를 압박해 구입하게 했는지 등을 조사해 경고나 시정조치를 내린다”며 “글로벌 OTA 사업자들의 이런 행동은 우리나라에서만 제기되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사안으로 문제가 된 에어비앤비의 경우 억울함을 호소했다.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일부 따라 숙박예정일이 30일 이상 남은 시점에 취소할 경우 숙박대금을 전액 환불하고 30일 미만 남은 경우에는 50%를 환불하는 것으로 약관을 수정했다. 문제는 한국인 게스트가 수정된 약관에 따라 예약을 해도 호스트가 동의할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가능하도록 단서를 둔 것이었다. 에어비앤비 관계자는 “한국인이 외국에 갈 때 외국인 호스트의 입장에서는 한국인 게스트에게만 완화된 환불조건을 적용해야 한다”며 “공정위는 한국인 예약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단서를 없애라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고다·부킹닷컴과의 행정소송에 촉각

아고다는 싱가포르에, 부킹닷컴은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어 당국이 규제하기 쉽지 않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들이 한국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고 해도 정부조차 연락이 잘 안 된다”며 “실질적인 권한도 없어서 소비자들은 권리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외국업체들과 접촉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는 데도 관심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정보통신망법상 ‘국내 대리인 지정제도’를 십분 활용할 계획이다. 지난 3월 19일 시행된 이 제도에 따라 구글과 페이스북 등 국내에서 정보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국외 사업자들은 국내에 사무실을 두지 않아도 대리인은 필수적으로 둬야 한다. OTA 사업자들도 본질적으로는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여행상품과 서비스를 중개하는 사업자라는 점에서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

아고다와 부킹닷컴과의 행정소송은 아직 첫 재판기일도 잡히지 않았다. 정부는 장기전을 예상하고 있다. 소송의 쟁점은 환불이 가능한 ‘상당한 기간’을 어느 정도로 보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가 환불 불가 조건에 동의하고 구매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법원이 귀책사유를 누구에게 물을지도 관건이다. 외국 사업자에게 한국 약관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 OTA를 단순 중개업자로 볼 것인지 그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판매업자로 볼 것인지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단순 중개업자일 경우 환불 조건을 제시한 곳이 현지 호텔이라 책임소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아고다 등과의 행정소송 결과에 따라 정부의 대응수위는 달라질 수 있다. 이태휘 공정위 약관심사과장은 “시정명령 취소소송에서 공정위가 패소하면 외국 사업자에 대한 규제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반드시 승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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