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판·검사가 대학으로 간 까닭은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교수 월급은 판·검사 시절보다도 적지만 연구한 이론이 판결에 활용될 때 보람

판사·검사가 퇴임 후 곧바로 학계로 가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등 고위법관이 퇴임한 후 학계로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한창 일할 나이의 판·검사가 변호사 개업 대신 학계로 가는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다. 로스쿨 1기가 출범한 2009년을 전후로 판사·검사·변호사가 대거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실무교수로 이동했지만 그 수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로스쿨에 갔다가 몇 년 만에 사표를 내고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바로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아무리 로스쿨에서 많은 연봉을 준들 판·검사 출신 변호사가 1년에 벌어들이는 수익에는 크게 못미친다.

변호사 한 달 수입도 안되는 교수 연봉

일러스트 김상민

일러스트 김상민

“통상 전관 ‘빨’이라고 해서 로펌에 들어가면 3년 정도는 바짝 벌어들일 수 있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로펌은 이제는 현직 판·검사들도 입사 가능 인원이 제한돼 있어 원하는대로 갈 수 없다. 연봉이야 각자 알아서 받겠지만 그래도 판사로 일할 때와 금액을 비교할 수는 없다.”(판사 출신 ㄱ변호사)

실제 일부 전관 출신 변호사들은 판사 연봉을 한 달 월급으로 받는 경우도 있다. 업계에서는 “정말 잘 나가는 일부의 사례”라고 하지만 과거 사법연수원을 갓 졸업한 변호사가 대형 로펌에 입사했을 때 받는 연봉이 억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그리 과장된 금액도 아니다.

금전적으로만 따지면 현직에서 학계로 간 로스쿨 교수들의 사정은 열악하다. 판·검사 월급도 박봉이라는 말이 나오는 형편에 교수 월급은 그것보다도 적기 때문이다. 실무교수들의 경우 사법시험을 치지 않은 일반 법학교수에 비해 높은 연봉을 받지만, 변호사로 개업했을 때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하면 ‘형편없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지방의 한 국립대 로스쿨 교수의 2018년 기준 연봉은 6000만원대였다.

대학으로 가려다 포기하고 국내 대형 로펌에 들어간 판사 출신 ㄴ변호사는 “몇 년 전부터 실무강의를 나갔던 대학에서 ‘우리 학교로 오실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했었다”며 “20년 가까이 재판업무를 하면서 피로도 쌓였고,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혹했던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거의 절반쯤 결심을 한 상태에서 가족과 상의를 하는데 아내가 ‘우리집에 지금 빚이 얼마인 줄은 알고 있느냐’고 하더라. 집 전세대출금이 있었다. 아이들도 아직 독립을 못한 상태인데 내가 교수로 가면 내 욕심만 채우는 것 같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실무교수 연봉이 얼마 정도 되느냐’는 질문에 ㄴ변호사는 “내가 판사일 때 받던 월급보다 훨씬 적었다”고 말했다. 기본급에 각종 수당을 합한 ㄴ변호사의 판사 시절 연봉은 7000만~8000만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만 없다면 각종 연구를 하기에는 교수가 좋다는 전관들도 많다.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판사 출신)는 “변호사 일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지도 않았고, 재판업무를 하면서도 새로운 법 이론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변호사 업무에 매력을 느끼지도 못했다. 교수로 일한 지 10년이 다 돼 가지만 지금 일에 만족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말이다.

유학파 이론교수들과의 갈등 고충도

가장 큰 보람은 자신이 연구한 법 이론이 실제 수사나 재판 현장에 반영될 때다. 판사 출신의 로스쿨 교수 ㄷ씨는 “내가 발표한 박사논문이 민사재판에 활용되고, 판례로 확립돼 가는 과정을 보면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에 최대한 부합하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라면 검사와 판사는 기존에 적용해온 판례 등을 중심으로 기소하고 판결을 내린다. 반면 교수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내고, 기존 판례의 문제점을 지적해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ㄷ교수의 설명이다.

특히 최근 들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확립된 판례에서 벗어나 새로운 법 해석을 시도하려는 일선 재판부가 늘어나면서 교수들의 역할도 커졌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특정 쟁점사항이 있을 때 법원·검찰·변호사 단체가 학계 교수들을 초청해 다양한 토론을 벌이고, 자료 교류를 하는 것 역시 이론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법 실무 현장에 뛰어들게 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이어 사법농단이 불거지면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연구하는 토론회가 열리고, 다양한 법 해석이 나오는 것도 법 이론이 실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례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친일재산 환수를 하려는데 저 후손이 극악무도한 친일파의 자손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저 친일파놈 나쁜 놈이니까 무조건 재산을 다 몰수해야 한다’며 검찰이 재산을 다 뺏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장의 정의에는 부합해 보이지만 토지등기부상 등록된 자를 소유권자로 한다는 민법의 대명제에는 어긋나는 일이란 말이에요. 그러면 원칙에는 어긋나지 않되 친일재산 환수를 가능하게 할 법 이론은 무엇이 있을까를 연구하는 것이 교수들의 역할인 거죠. 연구를 통해 얻은 법 이론이 설득력이 있다면 실무현장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겁니다.”(판사 출신 ㄹ교수)

그러나 막상 와보니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만 하는 것에 외로움을 호소하는 전관들도 있다. 판사 출신 ㅁ교수는 “이렇게 외로운 직업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ㅁ교수는 “일찌감치 학계로 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가 미루고 미뤄 학교로 왔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부에 있을 때는 매일 배석들이랑 토론하고, 연구회에도 참석하고, 세미나도 하고, 밥먹다가도 토론하고 고민하고 했는데 교수로 오니 그냥 매일 사무실에 덩그러니 앉아 혼자 뭔가를 하라고 한다”면서 “그냥 사무실에 처박혀 혼자 연구하는 직업인 줄은 (대학으로) 오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동료 교수와의 갈등을 토로하는 실무교수도 있었다. 사법고시 출신 교수와 유학파 출신 교수 간의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것이다. 검사 출신 ㅂ교수는 “이런 이야기는 몇 십 년 전부터 들어왔던 것이지만 사법고시 출신들은 유학파 출신 교수들을 향해 ‘고시에 실패하고 할 게 없으니 유학가서 교수된 사람들’이라고 비하하고, 유학파 출신들은 ‘법의 근본도 모르는 잡상인 같은 고시 출신들’이라고 비하한다고 하더라”면서 “그런데 내가 학교로 와보니 가장 큰 차이는 서로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실무에 있던 교수들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떤 법을 어떤 방식으로 적용해 해결할지를 고민하는 반면, 이론교수들은 법의 근원을 짚어 올라가면서 학설을 만들어 낸다는 설명이다.

ㅂ교수는 “아무래도 대학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이론 중심 교수들이다보니 실무교수는 상대적으로 소수에 해당한다. 그런데다 (이론교수들) 모임에 끼워주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소외당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긴 하다”고 말했다. ㄹ교수는 “지방으로 갈수록 실무교수와 이론교수 간의 갈등이 두드러진 경향이 있다”고 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