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세 남매, 분할경영 구축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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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칼호텔’ ‘조원태-대한항공’ ‘조현민-진에어’로 분할경영 관측 현실화

2020년 3월 ‘왕좌의 게임’ 격인 ‘한진칼 주총 대전’을 앞두고 한진 오너 일가와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사진 왼쪽부터) /한진제공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사진 왼쪽부터) /한진제공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별세 이후 상속 문제를 놓고 뒤숭숭하던 한진 오너 일가는 경영권 상실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모친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을 정점으로 세 남매가 그룹을 분할경영하는 체제 구축에 돌입했다. 각종 ‘갑질’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으나 비판여론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에 한진칼의 2대 주주인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는 ‘족벌 경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등에 업고 한진칼 지분율을 20%까지 높일 것으로 관측된다.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경영권 교체를 목표로 내년 3월 주총에서 조원태 사내이사의 연임을 저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오너 일가 한진칼 지분 30%도 안 돼

업계에서는 사실 ‘땅콩 회항’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물컵 갑질’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이 경영 일선에 쉽사리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적잖았다. 기업 평판 및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탓이다. 하지만 지난 6월 10일 조현민이 한진칼의 전무이자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첫 출근한 데 이어 13일 조현아 전 부사장이 명품 밀수 관련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아 구속을 면함에 따라 ‘조현아-칼호텔’ ‘조원태-대한항공’ ‘조현민-진에어’로 한진그룹을 분할경영할 것이라는 관측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는 상속 문제를 놓고 세 남매의 권력 갈등을 봉합해야 하는 오너 일가의 관점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한진그룹은 조 전 회장 사후 공정거래위원회에 ‘동일인(총수)’을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으로 지정하는 서류 접수를 내려다 내부 이견으로 마감기한을 넘긴 바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진그룹 내부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업계 관계자는 “조현아·현민 자매 모두 경영 참여에 대한 의지가 강해 권력이 조원태에게 집중되는 것을 경계했을 것”이라며 “결국 한진그룹은 아버지 조양호 때 형제들이 분리경영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나뉘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이 2002년 타계하자 장남인 조 전 회장이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을 물려받았고, 차남 조남호 회장은 한진중공업, 3남 조수호 회장은 한진해운, 그리고 4남 조정호 회장은 메리츠금융을 나눠 받은 바 있다.

문제는 한진그룹이 오너 일가‘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너 일가의 한진칼 지분은 특수관계인을 다 합쳐도 30%가 채 되지 않는 28.7%다. 이 중 고 조양호 회장의 지분 17.7%를 제외하고 현재 그룹 동일인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지분은 2.32%, 조현아 2.29%, 조현민 2.27% 선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오너 일가가 기업을 사유화하는 전근대적인 ‘족벌경영’이다. 전문경영인이라면 복귀를 꿈도 못꿀 ‘사고’를 치고도 창업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주주들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사모펀드 KCGI는 경영권 교체 박차

조현민 전무의 경우 미국 국적 보유자이면서 2010~16년 불법으로 진에어의 등기임원에 오른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지난해 진에어는 면허취소 위기로까지 몰린 바 있다. 이에 직원들이 정부에 생존권 문제를 호소하면서 간신히 항공사가 문을 닫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으나, 신규 운수권 및 항공기 도입 제한 등 경영 확대 금지조치를 받으면서 막대한 피해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저비용항공사(LCC)의 시장 경쟁이 날로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알짜노선으로 꼽히는 몽골과 중국 노선의 올해 운수권 배분에서도 철저히 배제됐다.

하지만 17억원이라는 막대한 퇴직금을 받은 ‘문제의 당사자’는 1년 남짓한 ‘자숙’을 거쳐 다시 경영진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한진칼은 진에어의 지분 60%를 갖고 있어 사실상 ‘우회경영’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진에어 노조는 성명을 통해 “전대미문의 국토부 제재가 1년 가까이 이어지는 이유는 바로 조 전 부사장의 등기이사 재직과 총수 일가의 갑질 때문”이라며 경영복귀 철회를 요구했다.

이 같은 결정의 배후에는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행 및 갑질 논란으로 지난해 일선에서 물러난 그가 사실상 현재 그룹의 구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설이 파다하다.

과연 이 같은 한진그룹이 내년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이목이 쏠리는 것은 KCGI가 과연 판을 뒤집는 데 성공할지 여부다. 한진그룹 회장에 오른 조원태 한진칼 사내이사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연임에 대한 표 대결이 예고돼 있다.

지난 3월 ‘친 오너’로 분류되는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의 연임 저지에 실패했던 KCGI는 내년 ‘전투’를 앞두고 한진칼 지분을 계속 늘리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약 16%까지 확보했고 점차 20% 수준으로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유안타증권은 지난 6월 11일자 보고서에서 “KCGI는 고 조양호 전 회장의 지분에 육박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사내·외 이사 선임이 일반 결의로 규정된 한진칼의 내년 주총에서 승리를 낙관하기 어렵다”며 “이는 역설적으로 KCGI의 지분 확보 공세를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41%의 투자 수익률과 1250억원의 투자 차익을 거둘 수 있는 상황에서도 지분 매입을 지속하는 것은 KCGI의 경영권 확보 목표가 매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싸움은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다. 주도권을 둘러싼 샅바싸움이 치열하다. 한 예로 한진그룹의 경영권 승계 컨설팅을 맡은 미래에셋대우는 최근 KCGI에 대해 한진칼 지분을 담보로 내준 대출 200억원을 연장 없이 전액 상환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KCGI의 돈줄을 죄며 한진그룹의 백기사를 자처한 것이다.

<최민영 산업부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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