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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 컨설팅 업체 ‘상술’에 놀아나는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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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예비부부들이 웨딩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받아 결혼식을 치른다. 스튜디오 촬영과 드레스 대여, 그리고 메이크업까지 업체의 알선을 받아서 한다. 이 과정에서 예비부부들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지출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착각이다.

결혼식에서 혼인서약을 하고 있는 부부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Pixabay@Craig Letourneau

결혼식에서 혼인서약을 하고 있는 부부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Pixabay@Craig Letourneau

# 지난해 결혼한 정다정씨(32)는 자신이 어떤 드레스를 입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결혼식 자체가 정신없기도 하고, 드레스라는 걸 태어나 처음 입어봤잖아요. 드레스 업체에서는 ‘이건 무엇을 강조한 것이고, 이건 저것과 어떤 차이가 있다’는 식으로 열심히 설명을 해주세요. 그런데 솔직히 그 순간 예뻐 보이는 걸 골랐을 뿐 제가 드레스에 취향이 있거나 한 건 아니니까요.”

정씨는 서울 청담동의 한 대형 웨딩 컨설팅 업체와 270만원에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 대여+메이크업 및 헤어)’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으로 100만원을 냈다. 정씨 부부는 스튜디오 촬영은 하지 않고, 청첩장에 넣을 간단한 사진만 찍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담당 플래너는 “스튜디오 촬영을 하나 간단한 사진을 찍으나, 어차피 가격은 동일하다. 화장하고 머리하고 드레스 입는 건 똑같은데 몇 컷 더 찍고 덜 찍는 건 가격에 영향이 없다”고 했다. 정씨 부부는 플래너의 말대로 스튜디오 촬영도 하기로 했다.

플래너는 ‘심플’, ‘우아’, ‘화려’, ‘고전’, ‘아기자기’ 중에 평소 원하는 스타일을 골라보라고 했다. 정씨는 “심플하게 가고 싶다. 화장도 진하게 하고 싶지 않고, 드레스도 심플한 라인으로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순식간에 정씨의 눈앞에 ‘스드메’ 업체 리스트가 나열됐다. 플래너는 태블릿PC로 스튜디오 업체 5곳과 드레스 업체 5곳의 샘플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여기서 프리미엄 라인으로 가시려면 70만원을 추가하시면 된다.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

상담 1시간 만에 정씨는 스튜디오 업체를 정하고 드레스 업체 3곳의 예약을 마쳤다. 메이크업은 플래너가 “실장님 라인보다 한 단계 높은 라인으로 괜찮은 곳을 소개해드리겠다”고 제안한 곳으로 정했다.

정씨 부부는 제일 먼저 드레스 투어를 했다. 스튜디오 촬영용 드레스와 본식(예식)용 드레스를 먼저 골라야 한다고 했다. 투어 시간은 드레스숍 한 곳당 1시간으로 잡혀 있었다. 1시간 동안 입어볼 수 있는 드레스는 3벌이 최대였다. ‘헬퍼’가 입혀주고 벗겨줘야 하다보니 입고 벗는 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드레스숍 실장은 “더 입어보시려면 피팅비 3만원을 추가로 내셔야 한다”고 했다. 눈으로 먼저 입어보고 싶은 드레스를 추리고 3벌만 입었다. 사진촬영은 할 수 없었다. 정씨는 “대충 특징만 적어서 기억을 되살리는 식으로 드레스숍을 골랐던 것 같다”고 했다.

두 군데를 돌았지만 그다지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마지막 숍을 돌기 전 플래너에게 연락해 “드레스가 전반적으로 낡은 느낌, 투박한 느낌이다. 별로다”라고 말했다. 플래너는 “죄송하다”며 “지금 그렇지 않아도 프리미엄 라인 가격으로 받아야 할 수입 드레스 숍이 파격가로 들어온 게 있다. 150만원은 추가해야 하는데 70만원만 더 내시면 이쪽으로 연결해드리겠다”고 했다. 이어 “보통은 신상(품) 하나에 한 시즌 지난 것 두 벌을 보여주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신상 라인으로만 보여달라고 부탁도 하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돈이 더 들더라도 원하는 걸 입으라”고 권했다. 정씨는 플래너가 새로 추천한 곳에서 본식용 드레스와 촬영용 드레스를 선택했다. “비싸서 그런 건지, 제가 호갱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더 좋아 보였어요.”

문제는 스튜디오 촬영을 일주일 앞두고 벌어졌다. 정씨 부부가 촬영하기로 한 스튜디오 업체에 문제가 발생해 거래를 중단했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플래너가 ‘스튜디오가 일부 고객에게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는 등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모든 거래를 중단했다’면서 비슷한 콘셉트의 다른 스튜디오를 알아봐줄 테니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고 말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가장 비슷한 콘셉트의 스튜디오를 골랐다. 플래너는 “정말 죄송하다”며 기존 스튜디오보다 새로 택한 스튜디오가 좀 더 가격이 저렴하니 15만원을 빼주겠다고 했다. 다만 기존 예약 고객 사이에 끼어들어야 하는 만큼 촬영을 평일 오전 11시 정도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정씨 부부는 하루 연차를 썼다.

정씨 부부가 최종적으로 ‘스드메’ 비용으로 지출한 돈은 총 355만원(헬퍼비 2회 30만원 포함)이었다. 처음 생각한 예산보다 85만원 초과한 금액이다. 정씨는 “크게 덤터기를 썼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우리 부부가 무난한 편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돈을) 쓰자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면 갈수록 늘어나는 비용

대부분의 예비부부들은 정씨 부부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결혼을 준비한다. 결혼박람회를 찾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접한 웨딩 컨설팅 업체를 찾아 정보를 얻는 식이다. 이들은 제각각 나름대로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오산이다. 아무리 ‘기본만 갖춰서 하겠다’는 결심으로 결혼식을 준비하더라도 모든 고객은 ‘호갱(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손님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호구’와 ‘고객’의 합성어)’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웨딩산업의 구조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이다.

발품을 팔아 준비하는 ‘워킹족’들도 ‘호갱’이기는 마찬가지다. 20년째 웨딩 컨설팅 업계에 종사하는 ㄱ대표는 “워킹족이야말로 ‘스드메’ 업체들이 제일 뜯어먹기 좋은 상대”라고 말했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비교해본들 컨설팅 업체를 통해 계약한 패키지 고객보다는 무조건 비싼 가격에 결혼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객이 정확한 납품원가를 모르는 데다 ‘스드메’ 업체로서는 컨설팅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가격을 매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대여비, 메이크업 및 머리 손질 가격이 각각 얼마인지 알 수 없는 웨딩산업의 구조에 원인이 있다. 마진을 제외한 실제 서비스 공급 가격은 컨설팅 업체와 플래너, ‘스드메’ 업체 외에는 절대 알 수 없고, 고객은 알아서도 안 된다는 그들만의 암묵적인 룰이 있는 것이다. 모든 영업방식이 베일에 싸여 있으니 그 안에서 얼마의 수익을 남기는지 정확하게 공개된 적도 없다. ㄱ씨는 “10년 전 ‘스드메’ 평균 가격이 300만원이었지만 지금은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150만~200만원까지 내려간 상태”라며 “컨설팅 업체로서는 최대한 마진을 남기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는데 돈 나올 데가 어디에 있겠나. 결국 ‘스드메’ 업체가 각종 마케팅·개런티 비용, 박람회 부스 비용 등을 떠안게 하는 식으로 이윤을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웨딩 컨설팅업이 시작된 1990년대 말~2000년대 초까지는 컨설팅 업체가 부부 한 쌍당 180만원까지 마진을 남길 때가 있었다”면서 “지금은 정말 잘해봐야 40만~50만원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표지 이야기]웨딩 컨설팅 업체 ‘상술’에 놀아나는 결혼식

컨설팅 업체, 스드메 업체에 비용 전가

상황이 이렇다보니 컨설팅 업체는 각종 비용을 ‘스드메’ 및 혼수 업체에 전가하고 있다. 한 스튜디오 업체 대표는 “스튜디오로서는 컨설팅 업체가 고객 개인정보를 우리 쪽으로 최대한 넘겨줘야 먹고산다”며 “업체 쪽에서 ‘이번 박람회에서는 너희 스튜디오를 주력으로 밀어주겠다’면서 부스비 100만~300만원을 요구하면 거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점심을 준비하라면 도시락이 됐든, 김밥이 됐든, 햄버거가 됐든 준비해서 가야 한다. 심지어 플래너들끼리 팸투어를 간다고 100만원을 요구해 돈을 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플래너가 영업을 위해 각종 상품권 이벤트를 할 경우 상품권을 마련하는 것도 ‘스드메’ 업체의 몫이라고 했다.

심지어 ‘선인폼(先inform)비’를 받아 수익을 내는 방식도 등장했다. 업계 용어로 ‘선인폼비’란 웨딩홀에 고객 개인정보를 가장 먼저 넘긴 플래너에게 웨딩홀이 지급하는 수수료다. 업계 관계자는 “건당 15만원으로 책정돼 있다”고 말했다. 고객정보는 예비부부들이 가장 흔하게 접하는 각종 웨딩 박람회 ‘무료초대권 받기’를 통해 확보한다. 박람회 참석을 위해 자신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e메일 주소를 남기는 순간 개인정보가 15만원에 업체에 팔려갔다고 보면 된다. 이름은 ‘무료초대권’이지만 실제는 유료초대권인 셈이다.

웨딩업계의 기형적인 수익구조는 여기서도 나타난다. 고객이 식을 올릴 웨딩홀을 정하지 않았는데도 웨딩 박람회 무료초대권 받기에 개인정보를 기입하는 순간 고객정보는 전국의 웨딩홀에 뿌려진다. 또 고객정보를 넘겨받은 웨딩홀 중 한 곳과 해당 고객이 계약을 맺으면 가장 먼저 그 고객의 정보를 웨딩홀에 넘긴 플래너에게 15만원이 넘어가는 이상한 방식이 업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넘긴 플래너가 아닌 완전히 다른 업체와 컨설팅 계약을 맺고 웨딩홀 계약까지 했는데 선인폼비는 개인정보를 넘긴 플래너에게 넘어가면서 개인정보를 넘긴 플래너와 실제 컨설팅 계약을 맺은 업체의 플래너 사이에 선인폼비를 놓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스드메’ 업체 입장에서도 컨설팅 업체에 각종 비용을 상납하고도 최소한의 수익을 남길 방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최약체는 결국 가격정보가 전혀 없는 예비부부들이다. 스튜디오나 메이크업숍, 드레스숍에서 각종 추가 수당을 붙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앨범비’와 ‘피팅비’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모든 사진을 예비부부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기본 장수를 정해놓고, 앨범에 넣은 사진 이외에 받고 싶은 사진을 추가할 경우 한 장당 3만원을 더 받는 식이다. 드레스를 입어보기 위해 지불하는 피팅비 3만원도 ‘스드메’ 패키지에 포함돼 있지 않은 별도 비용이다. 드레스숍 세 군데를 들르면 9만원의 피팅비가 지출된다. 드레스숍 입장에서는 고객이 자신의 드레스를 고르지 않아도 한 번 방문 시 3만원을 벌어들일 수 있다. 드레스를 입어보는 과정에 손상될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고객 입장에서는 계획에 없던 무리한 지출이 이뤄지는 셈이다.

메이크업숍의 경우 헤어피스(신부 머리에 덧대는 부분가발)나 혼주화장(1인당 평균 15만~20만원)에서 수익을 올린다. 2017년 결혼한 직장인 배모씨(36)는 “내가 간 미용실에서는 선명하고 자연스러운 눈을 만들기 위해서는 눈썹을 한 가닥 한 가닥씩 붙이는 게 좋다면서 수입모(毛)를 쓰라고 추천하더니 눈썹 붙이는 비용까지 청구했다”고 말했다. 배씨는 “결혼식 당일에 갑자기 수입 눈썹을 권하니 그냥 ‘네, 네’ 하고 결제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먹이사슬의 최약체는 결국 예비부부

금전적 손해도 문제지만 고객이 질 좋은 상품을 제공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유명 스튜디오 업체 이사 ㄴ씨는 “적어도 한 팀당 80만원은 받아야 마진을 남길 수 있는데 컨설팅 업체에서 주력업체로 밀어준다며 20만원을 할인하라고 하고, 물량을 늘려준다며 또 20만원을 깎아버린다”면서 “그렇게 되면 40만원으로 한 팀을 찍어야 하는데,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ㄴ씨는 “지금은 실력 있는 작가가 촬영을 하고 있지만 계속 단가를 낮추면 사진학과 졸업생을 데려다 촬영을 맡기지 말라는 법도 없게 된다”며 “지금도 스튜디오 샘플 앨범 배경에 신랑·신부만 바꿔 세워놓고 촬영하는 수준이지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을 만들 여유도, 비용도 없다”고 했다.

10년째 웨딩드레스 제작·판매·대여업을 하고 있는 ㄷ원장은 “요즘은 컨설팅 회사에서 퇴사한 플래너가 드레스숍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플래너 일을 했으니 안목은 있고, 제작은 할 수 없으니 중국에서 제작된 값싼 드레스, 미국에서 홀세일을 할 때 들여온 드레스를 ‘베라왕(명품 드레스 브랜드)’이라며 값을 높게 부르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면서 “고객들은 드레스가 낡았는지 변색됐는지 정도나 구분할 수 있지 수입 드레스라고 하면 소재나 디자인이 어떻든 간에 숍을 믿고 대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현명한 소비를 위해서는 투명한 가격공개가 필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드메’ 업체들은 한목소리로 “컨설팅 업체에 투명한 가격공개를 요구하거나, 스드메 업체와 고객이 직접 계약·결제하는 방식을 주장하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그냥 이 바닥을 떠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실제 웨딩 플랫폼 업체인 ‘웨딩북’의 경우 모든 제휴 ‘스드메’ 업체의 개별 가격을 공개해 기존 대형 컨설팅 업체로부터 지속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웨딩북은 고객이 원하는 스튜디오, 드레스 업체, 메이크업 업체를 정하면 최종 결제가가 곧바로 계산돼 나온다. 개별 업체별 단가도 공개된다. 업계의 금기를 건드린 셈이다.

웨딩북 관계자는 “플랫폼 사업을 시작하고 ‘스드메’ 업체가 많이 입점했는데, 기존 대형 컨설팅 업체들이 해당 ‘스드메’ 업체들에게 ‘웨딩북과 거래를 끊지 않으면 우리가 줬던 물량을 모두 끊겠다’고 협박해 실제 많은 업체들이 제휴를 끊은 상태”라고 말했다. 웨딩북은 현재 ‘스드메’ 업체에 거래 중단 압박을 한 컨설팅 업체를 상대로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등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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