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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발품 파는 스몰웨딩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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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결혼식 치른 박희정씨 분투기 “다시 돌아간다면 안할 것 같다”

‘스몰웨딩’ ‘셀프웨딩’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결혼식 문화가 과하다는 생각에서다. 2016년 스스로 작은 결혼식을 준비한 박희정씨(33) 부부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가족과 친한 친구들만 초대했고 결혼식은 3시간 가량 진행됐다. 바라던 대로였다. 하지만 희정씨는 “다시 돌아간다면 스몰웨딩은 안할 것 같다”고 했다. 보통 스몰웨딩, 셀프웨딩이라고 하면 비용이 적게 들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jtbc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셀프웨딩 촬영을 하는 예비부부. / <효리네 민박> 화면 캡처

jtbc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셀프웨딩 촬영을 하는 예비부부. / <효리네 민박> 화면 캡처

일반적인 결혼식에서 식사비는 1인당 평균 3만~5만원 선에서 책정된다. 스몰웨딩은 하객수는 적지만 1인당 6만~8만원 정도는 잡아야 한다.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을 줄인 말)도 업체를 통해 ‘패키지’로 진행하는 편이 싸다. 스몰웨딩을 위해 파는 당사자의 발품은 무임금 노동이다. 희정씨의 ‘스몰웨딩 수난기’를 들었다.

희정씨 부부는 결혼식 준비기간을 10개월로 잡았다. 양가의 어른들을 설득하는 게 1차 관문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당사자보다는 가족 행사로 여겨진다. 부부가 “가족과 친구 몇 명만 초대해 작은 결혼식을 하고 싶다. 요즘은 그렇게 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을 때, 집안 어른들은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스몰웨딩, 셀프웨딩이라는 단어에 익숙지 않았다. 쉽게 설득했다고 생각했지만 잘못된 판단이었다. 집안 어른들과 부부가 생각하는 ‘가족’의 범위 자체가 달랐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가족에는 사촌은 물론이고 6촌까지 포함돼 있었다. 부부가 생각하는 가족은 조부모와 부모, 형제 등 직계가족이었다. 사촌까지만 초대한다고 해도 두 집안의 친가 외가를 합치면 100명이 넘었다. 스스로 준비하기에는 벅찬 규모다.

“친척들이 서운해한다”, “축의금은 어떻게 하느냐” 등 예상했던 질문부터 “재혼으로 오해하면 어떻게 하느냐”, “숨어서 결혼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희정씨는 이 설득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 결국 양가 친척들을 위한 피로연을 각각 따로 여는 것으로 합의했다.

D-200 아무것도 몰랐던 부부는 웨딩박람회부터 찾았다. 박람회는 웨딩홀, 스드메, 신혼여행 등 복잡한 과정을 한곳에서 알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컨설팅 업체들은 50% 할인, 100만원 할인 등을 내걸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참여하는 사진작가, 드레스 종류 등을 알 수 없어 적절한 가격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첫 번째 실전은 웨딩홀 예약이었다. 스몰웨딩이라고 하면 대부분 야외 결혼식을 떠올리지만 야외 결혼식은 스스로 준비하는 결혼식 중 최고 난이도로 꼽힌다. 몇몇 야외 웨딩 공간에 문의한 결과 가격이 비쌀뿐더러 예약이 꽉 차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주차공간과 날씨에 대비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였다.

50명 규모도 가능한 웨딩홀을 검색했다. 소규모 웨딩을 할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었다. 적어도 최소인원이 150명 가량이었다. 50명도 가능하나 150명의 식사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시청이나 구청에서 제공하는 공간은 저렴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예쁘지 않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실내장식까지 할 생각을 하니 품이 너무 많이 들어갈 것 같았다.”

발품을 팔아 50명 규모에 정갈한 식사가 가능한 웨딩홀을 정했다. 규모가 작다고 해서 비용이 저렴한 건 아니었다. 식사비가 일반 웨딩홀의 1.5~2배 정도였다. 하지만 주변으로부터 “스몰웨딩이 ‘궁상웨딩’이 되지 않게 하라”는 조언을 들었던 터라 그냥 결제했다. 스몰웨딩에 하객으로 참석했는데 음식이 부족하고 맛이 없었다는 후기가 온라인에 한창 올라올 때였다.

D-90 스드메 중 ‘스’에 해당하는 스튜디오 촬영에 나섰다. 청첩장에 쓸 사진이었다. 촬영은 사진작가 친구를 섭외했다. 문제는 의상이었다. 결혼식도 아닌데 비싼 돈을 들여 드레스를 빌리고 싶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후기가 좋은 하얀색 드레스를 시험 삼아 구매했지만 어울리지 않았다. 보통 야외촬영, 실내촬영 때 입을 두 벌의 드레스를 준비한다.

온라인 검색 끝에 셀프웨딩 대여숍을 찾았다. 하지만 드레스 종류가 적을뿐더러 모든 드레스의 사이즈가 ‘평균’이라 여겨지는 55사이즈였다. 희정씨는 “드레스를 입는다고 다 이쁜 게 아니었다. 사이즈가 안 맞아 등살이 튀어나오고 허리는 통짜처럼 보였다”며 “사람들이 왜 숍을 가는지 알겠더라”고 말했다. 숍에서는 가봉 작업을 해주기 때문이다.

촬영이 끝나자 숨 돌릴 새도 없이 청첩장을 만들었다. 초대가 아닌 ‘공지’에 가까워 문구 고민을 오래 했다. ‘5년 전 만난 두 사람이 평생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모두 초대하는 게 도리이나 가족들만 모여 식을 치르기로 했습니다. 따뜻한 마음과 축하, 고맙게 받겠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장소는 기재하지 않았다.

D-30 결혼식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됐다. 희정씨는 주말마다 드레스숍을 찾았다. 그 많은 드레스숍 중에 어디를 갈지 고르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웨딩플래너를 끼고 하면 신부 취향에 맞는 숍을 추천해준다고 들었는데 혼자 하다보니 정보가 부족했다.”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강남구 청담동에 드레스숍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드레스숍에서도 난감한 상황은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웨딩플래너와 함께 준비하다보니, 숍 직원은 혼자 온 희정씨보다 플래너와 함께 온 예비신부에게 더 친절했다. 결혼 당사자는 한 번 보면 끝이지만 플래너와는 계속 거래를 하기 때문이다. 드레스 대여 비용도 천차만별이었지만 역시 브랜드나 시세를 알지 못해 적절한 가격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결혼식 당일 동생이 피아노를 연주했고 친구가 기타를 치며 축가를 불렀다. 실내장식은 결혼식 전문이 아닌 돌잔치 전문업체에 맡겼다. 돌잔치를 치른 친구가 “분위기는 비슷한데 가격은 반값”이라고 알려줬다. 실제 희정씨 부부는 결혼식 꽃 장식의 절반 가격만 지불했다. 희정씨는 “결혼시장이 얼마나 부풀려져 있는지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결혼식은 큰 탈 없이 치렀다. 부부가 발품을 팔고 주변의 도움을 받은 덕이다. 희정씨는 “웨딩플래너나 컨설팅 업체가 중간에 가져가는 돈이 없어서 조금 적은 돈으로 결혼식을 치를 수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결혼식 관련 비용은 모두 쉬쉬하고 있어 사실 얼마나 절약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냥 절약했다고 믿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부는 종종 주변에서 스몰웨딩, 셀프웨딩 문의를 받는다. 희정씨는 “플래너를 믿지 못하는 고통과 내 몸과 마음이 힘든 고통 중에서 고르는 것”이라며 “웬만하면 남들 하는대로 플래너 끼고 하라”고 답한다. 자칫 스몰웨딩을 추천했다가 무슨 원망을 들을지 몰라서다. 희정씨는 “이효리 말처럼 스몰웨딩이 그 ‘스몰’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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