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랜드 입점에 ‘NO’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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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직영점 논란 일자 가맹사업 시작… ‘을과 을’의 싸움으로 번져

이마트의 자체 브랜드(PB)인 ‘노브랜드’ 매장 입점을 둘러싼 갈등이 ‘을과 을’의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이마트가 노브랜드 가맹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대기업 직영점에 적용하던 규제는 가맹사업으로 바뀌면서 느슨해졌고, 동일업종 근접출점 금지와 같은 소상공인 보호장치는 허물어졌다. 유통재벌의 골목상권 침해를 호소하던 소상공인들은 또 다른 소상공인 ‘가맹점주’와 싸워야 할 처지가 됐다.

이마트 PB 노브랜드 매장 / 이마트 제공

이마트 PB 노브랜드 매장 / 이마트 제공

캐나다 유통업체 ‘로블로’의 PB인 ‘노 네임(No Name)’을 벤치마킹한 노브랜드 전략은 한국에서도 통했다. 2015년 저렴한 ‘감자칩’으로 시작한 노브랜드 제품은 식품과 생활·가전 등 전 영역으로 확대됐다.

가성비를 내세운 노브랜드 전략은 적중했다. 2016년부터는 오프라인 매장이 들어섰다. 7개에 불과했던 노브랜드 매장은 3년 만에 210개로 늘어났다. 2015년 270억원을 기록한 노브랜드의 연간 매출은 2000억원을 넘어섰다. 유튜브에는 노브랜드 제품 사용 후기를 담은 콘텐츠들이 인기를 끈다. ‘브랜드가 아니다’를 내세운 노브랜드가 충성 고객을 거느린 대형 브랜드로 거듭난 것이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장(동덕여대 교수)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택한 PB 전략이 성공한 것”이라며 “PB상품 품질도 높아진 데다 국내 경기 상황에 맞물려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시장이 확대됐다”고 말했다.

변종 기업형 슈퍼마켓, 골목상권 위협

소비시장의 변화와 별개로 ‘유통 공룡’이 된 노브랜드의 거침없는 행보는 기존 골목상권에는 위협이 됐다. 동네슈퍼의 주력 상품들은 노브랜드 이름을 달고 ‘낱개 포장’돼 판매된다. 이 때문에 소상공인들은 노브랜드 매장을 ‘변종’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 본다. 홍춘호 한국마트협회 정책이사는 “노브랜드는 사실상 동네 마트와 다를 것이 없다”며 “노브랜드가 들어오면 주변 슈퍼와 마트 매출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브랜드 취급 품목이 늘어나면서 노브랜드 매장 입점을 둘러싼 갈등도 커졌다. 입점을 앞둔 예정지마다 이마트와 지역 상인·시민단체 간 분쟁이 이어졌다. 지역 상인들이 이마트에 맞서기 위해 택한 방법은 사업조정제도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상생협력법)은 대기업이 중소기업 경영에 나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때 중소기업자 단체가 사업 조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노브랜드 충북 청주 복대점은 사업조정을 통해 ▲개점 후 5년 동안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 운영 ▲PB 제품만 판매 ▲무료 배달 금지 ▲청주 복대점 개점 이후 출점 제한 등을 조건으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청주 복대점과 같이 사업조정이 타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결렬된다. 실제로 이마트는 전주와 울산 등 지역에서 노브랜드 직영점 출점을 준비하다 모두 철회한 바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사업조정에 들어가면 상대방이 회사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많다”며 “손해보면서 운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직영점 출점이 가로막힌 이마트가 택한 우회로는 가맹사업이다. 가맹점은 전체 개점비용 공개의무가 없다. 대기업에서 개점비용의 51% 이하를 부담하면 사업조정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지난 5월 지역 소상공인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브랜드 제주 아라점이 문을 열 수 있었던 것도 가맹점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제주 아라점 개점에 대한 이마트 비용부담 비율은 3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전북 전주에서 개점한 노브랜드 두 곳(전주 삼천·송천점)과 노브랜드 군산 수송점 역시 가맹점이다. 이마트는 전주·군산 출점에 앞서 2017년 전주지역 3곳에서 노브랜드 직영점 출점을 준비했지만 사업조정 과정에서 협상이 결렬됐다.

편의점 이마트24에 마련된 노브랜드 제품 판매 진열대. / 이마트24 울산 성남점

편의점 이마트24에 마련된 노브랜드 제품 판매 진열대. / 이마트24 울산 성남점

가맹사업 추진 이후 노브랜드 출점은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4월 경기 군포에 출점한 첫 가맹점을 시작으로 2개월 만에 가맹점 7곳이 들어섰고 3곳(대구 2·울산 1)이 개점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상 출점규제에서 자유로워진 것이다.

가맹사업을 계기로 이마트는 그동안 노브랜드 확장에 발목을 잡았던 인근 소상공인과의 도의적인 상생협약에서도 공식적으로 손을 뗄 수 있게 됐다. 가맹점 출점 이후 벌어지는 각종 분쟁과 갈등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가맹점주 몫이 된다. 대기업과 소상공인 간 상생문제가 처지가 비슷한 자영업자 간 다툼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노브랜드 가맹점은 이마트가 아니라 개인이 하는 것”이라며 “주변에 슈퍼나 편의점이 있다고 해서 개인 자영업자에게 장사하라 마라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갈등과 분쟁 책임 가맹점주 몫으로

노브랜드 입점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소상공인 가운데는 편의점 이마트24의 점주들도 있다. 이마트24 울산 성남·현대점을 포함한 5곳은 이마트 노브랜드의 근접출점으로 피해를 봤다며 영업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가맹점사업자의 영업지역 안에서 동일 업종의 계열회사 직영점이나 가맹점을 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가맹사업법)을 위반했다는 취지다. 이마트24는 노브랜드 오프라인 매장 출점 전까지 노브랜드 제품을 판매했고 실제 취급 품목도 상당수 겹친다. 소송을 제기한 5곳 가운데 3곳(평택 중앙점·인천 마전점·청라봄점)은 이마트 측과 비공개 합의 후에 소를 취하했다. 이마트 측에서 노브랜드로 인한 피해를 인정하고 배상을 해준 셈이다.

하지만 정작 법원으로 간 편의점주들은 잇따라 패소했다. 법원은 가맹본부인 이마트24와 계열회사인 이마트는 별도의 독립적인 법인사업체이기 때문에 이마트는 가맹사업법을 지킬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울산 현대점은 1심 패소 후 폐업했고, 성남점은 2심까지 패소한 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법조계와 학계, 국회에서는 법원이 입법취지를 고려하지 않고 대기업 편의를 봐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마트24 가맹점주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임현철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노브랜드가 ‘법적으로 문제 없다’고 결론이 나면 다른 기업에서도 노브랜드와 유사한 방식으로 동일 업종 근접출점 방식으로 사업을 할 수 있다”며 “나쁜 선례로 남게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2012년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실 관계자도 “가맹점주 보호라는 입법취지를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은 같은 사안에 대해 법원과 다른 판단을 내렸다. 이마트24 영업지역 내 노브랜드 출점은 가맹사업법 위반이라며 이마트 측이 가맹점주에게 손배배상금을 지급하고 폐점비용을 청구하지 않을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해당 조정 결과를 놓고 가맹점주와 이마트 측의 뜻이 달라 조정은 끝내 결렬됐다. 조정원의 판결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조정사례로 남는 데 그친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대기업이 변종과 꼼수 출점으로 자영업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며 “골목상권 보호라는 법의 취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상생협력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사업조정 대상 기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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