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쌍화탕, 엄연히 성인용 보약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쌍화탕은 ‘자양강장제’다. 허약체질, 피로회복, 과로, 자한(自汗·저절로 땀이 나는 증상), 병중병후에 복용하라고 기재되어 있다.

작약은 중국을 기원으로 중앙아시아와 남유럽을 원산으로 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꽃 모양이 넉넉해 함박꽃이라고 불리며 예로부터 관상 및 약용으로 재배됐다./위키피디아

작약은 중국을 기원으로 중앙아시아와 남유럽을 원산으로 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꽃 모양이 넉넉해 함박꽃이라고 불리며 예로부터 관상 및 약용으로 재배됐다./위키피디아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한약 처방은 뭘까. 어쩌면 당신은 십전대보탕을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혹시 한의학에 조금 관심이 있다면 보중익기탕이 어디에 좋은지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의학에 전혀 관심이 없을지라도, 이 처방은 적어도 한 번쯤 복용해 봤을 것이다. 바로 쌍화탕이다.

쌍화탕은 대표적인 한방 감기약이다. 어릴 적 내가 코를 훌쩍이고 기침을 하면, 어머니는 약국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그때마다 약사님은 유리병에 든 쌍화탕을 처방하셨다. 그걸 마시면 감기가 이내 잦아들었다. 쌍화탕이 감기에 좋다는 것을 약사님도 알고 어머니도 알고 어린 나도 알았다. 심지어 양의사도 안다. 2010년 대한의사협회에서 회원들에게 어떤 약을 선호하는지 조사한 결과, 감기약 중에서는 ‘광동쌍화탕’이 21.6%로 1등을 차지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쌍화탕은 감기약이 아니다. 광동제약에서 만든 쌍화탕은 ‘자양강장제’다. 허약체질, 피로회복, 과로, 자한(自汗·저절로 땀이 나는 증상), 병중병후에 복용하라고 기재되어 있다. 한의사가 보기에도 그렇다. 쌍화탕은 두 쌍(雙) 자에 화할 화(和) 자를 쓴다. 기(氣)와 혈(血)을 조화롭게 한다는 뜻이다. <동의보감>에는 쌍화탕에 대해 ‘정신과 기운이 다 피곤한 것, 기와 혈이 다 상한 것, 성생활을 한 뒤에 과로한 것, 과로한 후에 성생활한 것, 큰 병을 앓고 기가 부족해져 저절로 땀이 나는 등의 증상을 치료한다’고 나온다. 효능이 이러한지라, 쌍화탕을 ‘남녀를 조화롭게 하는 탕약’이라고도 한다. 한마디로 쌍화탕은 보약이다. 그것도 어른들이 먹는 보약.

쌍화탕의 군약(君藥)은 작약이다. 군약은 처방에서 가장 주가 되는 약을 이르는 말이다. 쌍화탕에는 작약이 다른 약재의 2.5배만큼 들어간다. 작약은 꽃이 아름다워 유명하다. 꽃 중의 왕이 모란이라면, 꽃 중의 재상은 작약이다. 작약과 모란은 식물학적으로도 아주 가까운 사이다. 그래서일까? 둘은 유난히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점, 그러나 꽃이 아닌 뿌리를 약으로 쓴다는 점, 성질이 차고 혈(血)과 관련된 효능을 가졌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허브에세이]감기약(?) 쌍화탕, 엄연히 성인용 보약

작약은 적작약과 백작약으로 나뉜다. <대한약전>에서는 둘을 구분하지 않고 있지만, 본초학적으로는 분명히 다른 약재다. 적작약은 열을 끄고 피를 식혀주는 청열양혈약(淸熱凉血藥)에 속한다. 백작약은 피를 보태주는 보혈약(補血藥)에 속한다. 쌍화탕에 들어가는 작약은 후자다. 혈을 기르고 간을 부드럽게 하며, 속을 완화시키고 통증을 멎게 하며, 진액을 수렴하고 땀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다. 피와 진액이 부족하여 생기는 증상과 여성의 월경이 조화롭지 못한 것과 복통 설사를 치료한다. 좋은 약재지만, 아무래도 감기약이라 보긴 어렵다.

쌍화탕에 들어가는 다른 약재는 숙지황, 당귀, 천궁, 황기, 계피, 감초, 생강, 대추다. 이 중 감기와 유관한 약재는 기껏해야 생강 정도다. 쌍화탕은 엄연히 성인용 보약이다. 그런데도 감기를 치료한다. 그렇다 보니 어떤 질환을 더 치료할 수 있을지 이루 예상할 수 없다. 한의학이 그래서 어렵다.

<이상진 한의사, 전 보령한의원 원장>

허브에세이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