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

20대 국회는 ‘식물국회’, 발의도 자동폐기도 신기록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내년 5월 29일 20대 국회는 임기만료된다. 지금까지 법안 발의는 1만9990건이고 폐회까지는 2만5000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재 미처리 법안도 1만4012건에 달해, 자동폐기되는 법안 숫자도 신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5월 30일 현재, 20대 국회 회기가 4분의 3을 지나 이제 1년만 남게 됐다. 2016년 5월 30일 개원한 20대 국회는 벌써부터 ‘파장’ 분위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힘겨루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4월 말 선거법안과 공수처 설치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의 법안이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가운데 패스트트랙에 지정되면서 한국당은 장외로 나갔다. 국회의 기능이 모두 정지된 것이다. 한 의원 측은 “의원들의 관심이 내년 총선에 가 있기 때문에 20대 국회가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여야가 합의해 제대로 국회 본회의를 연 것은 3월 임시국회(3월 7일~4월 5일)뿐이었다. 19대 국회에 이어 ‘식물국회’의 오명을 뒤집어쓸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주간경향>은 ‘20대 국회’ 관련 여러 가지 통계를 바탕으로 20대 국회를 진단했다.

4월 임시국회가 본회의 한 번 못 열고 5월 7일 종료됐다. 이날 국회에 견학온 방문객들이 본회의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 연합뉴스

4월 임시국회가 본회의 한 번 못 열고 5월 7일 종료됐다. 이날 국회에 견학온 방문객들이 본회의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 연합뉴스

내년 5월 29일 20대 국회는 임기만료된다. 이날 20대 국회의 임기만료로 자동폐기하는 법안이 무더기로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 어림잡아 임기만료 자동폐기 법안이 1만건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인터넷 홈페이지 의안정보시스템에 의하면, 5월 28일 오후 2시 현재 1만9990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2만건에 육박하는 수치다. 이 중 지금까지 처리된 법안은 5978건으로, 미처리 법안이 모두 1만4012건이다.

하지만 4월 말 패스트트랙 지정 이후 한국당이 장외로 나가면서 국회는 계속 공전 상태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5월 29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한국당을 비판하며 “먼지만 쌓이고 있는 계류법안이 무려 1만4000건”이라면서 “일하고 싶은 국회의원들이 일하고, 추경과 민생입법 처리 등 국회가 해야 할 밀린 숙제를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안은 계속 발의돼, 이 숫자는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임기만료 자동폐기 법안 숫자도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20대 국회는 2만5000건 발의와 1만건 임기만료 자동폐기 기록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대 국회에서 3년 동안 6000건의 법안을 처리한 만큼 남은 1년 동안에 법안을 처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20대 국회가 문을 닫는 날에는 1만건의 법안이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회사무처의 통계에 의하면, 19대 국회에서는 임기만료 자동폐기 법안이 모두 9811건으로, 1만건에 조금 못미쳤다. 19대 국회에서 1만7822건이 발의돼 임기만료로 폐기된 법안의 비율은 55.1%에 달했다. 18대 국회에서는 1만3913건이 발의돼 6301건(45.29%)이 자동폐기됐고, 17대 국회에서는 7489건이 발의돼 3155건이 자동폐기됐다.

법안 발의 증가, 실속은 없어

수많은 법안이 발의되지만, 논의 한 번 되지 않고 폐기되는 경우도 있다. 논의할 만한 가치도 없는 법안도 있다. 한 의원 측은 “관련 이익단체의 요구로 의원이 발의하기는 했지만 정작 발의 의원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익단체의 눈치를 보기 때문인지 임기만료 자동폐기되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예도 있다”고 말했다.

국회가 개원되자마자 발의가 쏟아지기도 한다. 지난 국회에서 자동폐기된 법안과 유사한 법안이 많다. 한 의원 관계자는 “야당일 경우 바로 자동폐기된 법안을 재발의하는데, 여당일 경우에는 정부 측과 입장 조율을 거치게 되면서 조금 늦게 재발의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재발의 법안이 모두 비판을 받을 만한 것은 아니다. 여야 쟁점 법안이나 재벌개혁 같은 법안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 법안은 19대 국회에서 여당 또는 야당의 강력한 반대로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재벌개혁법안의 경우 이종걸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일명 삼성생명법), 박영선 의원이 발의한 ‘특정재산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일명 이학수법) 등이 19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된 후 20대 국회에서 재발의됐다.

전문가들은 법안 관련 숫자가 20대 국회의 성과를 전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정성호 의원(민주당)은 “시민단체 등이 국회의원 평가에서 법안 발의 등 정량 평가를 하면서 법안 발의가 많이 늘어났다”면서 “일부 자구 수정으로 통과된 법안을 숫자로 계산해 평가할 것이 아니라 법안 전체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한 건이라도 제대로 된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국민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역시 “15대 국회 이후 법률안 발의와 법률안 처리가 늘고 있지만,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면서 “법안 통과를 보면 대안 반영이 많은데, 대안으로 10∼20개씩 묶어서 처리하는 데도 아직 1만4000여건의 법안이 미처리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소장은 “이제는 입법의 양보다 질을 고민할 때다”라고 말했다.

국회 상임위에 쌓여 있는 법안들. / 연합뉴스

국회 상임위에 쌓여 있는 법안들. / 연합뉴스

미처리 법안 1000개 이상 상임위는 7개

실제로 20대 국회에서 발의돼 처리된 5978건의 법안을 분류해보면 법안처리의 속사정을 알 수 있다. 원안 반영이 1444건(24.15%), 수정 반영이 716건(11.97%)에 불과하다. 대안 반영은 3514건(58.78%)으로 절반을 넘어선다. 폐기도 129건, 철회도 174건에 이르러, 법안이 처리되기는 했지만 법률에 반영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법안처리율을 보면 정부 제출 법안이 의원 발의 법안보다 월등히 높음을 알 수 있다. 전체 발의 법안 1만9990건 중 의원 발의가 1만9068건이고, 정부 제출 법안이 992건인데, 정부 제출 법안은 548건이 처리돼 처리율이 55.24%에 이른다. 반면 의원 발의 법안은 5430건이 처리돼, 처리율은 28.47%에 불과하다.

미처리법안이 1000개를 상회하는 상임위는 모두 7개 상임위다. 행안위는 법안 접수 건수가 2359건이었지만 처리법안이 493건, 미처리법안이 1866건에 이른다. 법사위는 미처리법안이 1364건(접수 1593건), 환경노동위는 1305건(접수 1795건), 보건복지위 1298건(접수 2190건), 국토교통위 1125건(접수 1858건), 기획재정위 1089건(접수 1667건), 정무위원회 1070건(접수 1461건)이다.

법안처리에 있어서는 국회 각 상임위의 법안소위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한 의원 측은 “법안 통과 숫자는 해당 상임위의 법안소위에서 해당 회기에 몇 개 법안을 다루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안소위가 열리기 전 여야 간사 의원실에서는 정부에서 요청한 법과 각 의원실에서 취합한 법안 중 뽑아 소위에서 다룰 법안을 결정하는데, 많은 법안 중 수십 개의 법안만이 심의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1970년대생 의원 모임(강병원·강훈식·김병관·김해영·박용진·박주민·이재정·전재수·제윤경)은 지난 1월 29일 “일하는 국회를 만들자”면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의 일성은 “법안소위 상시화부터”였다. 상임위의 법안소위를 상시화하는 것이 ‘일하는 국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국회사무처 통계에 의하면 20대 국회에서 각 상임위의 법안소위는 2016년에는 모두 80회(개원한 5월 30일부터 12월 31일까지)였고, 2017년에는 모두 210회, 2018년에는 모두 185회였다. 올해에는 모두 50회가 열렸다.

20대 국회, 화제의 법안들

미처리법안이 1000건이 넘는 7개 상임위의 법안소위 개회 횟수를 계산해 보았다. 미처리법안이 가장 많은 행안위는 2016년 7회, 2017년 20회, 2018년 15회, 올해 5회였다. 모두 47회가 열렸다. 법사위는 20대 국회에서 법안1소위(법사위 고유법안 심사)는 모두 23회, 법안2소위(법사위 이외의 다른 상임위 법안 심사)는 모두 20회 열렸다. 환경노동위는 환경법안소위가 모두 21회 열렸고, 고용노동법안소위가 모두 42회 열렸다. 보건복지위는 모두 38회 열렸다. 국토교통위는 국토법안소위가 모두 18회, 교통법안소위가 모두 15회 열렸다. 기획재정위는 경제재정법안소위가 모두 27회, 조세법안소위가 모두 35회 열렸다.

법안 숫자로는 ‘한 건’에 불과하지만 20대 국회에서는 의미가 깊은 법안이 돋보였다. ‘김용균법’이 대표적이다. 고 김용균씨의 사망사고로 인해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민주당 한정애 의원 등이 발의한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를 겨우 통과했다. 음주운전사고로 숨진 윤창호씨 사건을 계기로 ‘윤창호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법이다. 관련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은 고 임세원 교수(의사) 사건 이후 의료인 폭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임세원법’(의료법 개정안)도 올해 3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사회적 참사법’(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도 20대 국회에서는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패스트트랙 지정 1호 법안이었기 때문이다. 이 법은 2017년 11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지난해 12월 말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도 관심을 모았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유치원3법’은 바른미래당 임재훈 의원의 수정안으로 패스트트랙에 지정됐다. 지정된 지 최대 330일이 지나는 11월 말 이후에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 여부가 가려진다.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은 “20대 국회가 많은 법안을 발의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입법은 되지 않고 있다”면서 “쟁점 법안은 여야 갈등이 있어서 처리 못한다고 하더라도,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 대다수가 통과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난 ‘소방직 공무원 국가직 전환법’(소방재정지원특별회계 및 시·도 소방특별회계 설치법안 등)이나 ‘유치원3법’은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할 법”이라고 말했다.

‘유치원 3법’을 발의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 “법안 통과 쉽게 ‘국회 선진화법’ 고쳐야”

우철훈 선임기자

우철훈 선임기자


지난해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 비리 유치원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학부모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박 의원은 ‘유치원3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우여곡절 끝에 바른미래당 임재훈 의원의 수정안으로 12월 27일 패스트트랙에 지정됐다. ‘유치원3법’은 20대 국회에서 화제가 된 법 중의 하나다.

-‘유치원 3법’은 국회 교육위에서 최대 180일 심사하도록 돼 있는데, 180일이 다 되어간다.

“6월 말이면 끝난다. 교육위에서 (법안 논의) 시도조차 없었다. 한국당의 보이콧으로 국회 파행기간이 더 많았다. 상임위에서 빨리 처리하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물거품이 됐다. 올해 국회 파행을 보면 지난해에 패스트트랙에 지정하지 못했으면 ‘유치원3법’을 논의하지도 못하고 묶여버릴 뻔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점을 우려했기 때문에 타협하고 양보해서 패스트트랙에 올린 거다. 전략적 선택을 잘한 셈이다.”

-앞으로 법사위 90일과 본회의 60일 해서 150일이 남았다. 이전에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법사위는 한국당이 위원장직을 맡고 있어서 시간을 다 끌 것으로 본다. 본회의 60일은 9월 정기국회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처리될 수 있다. 아무리 늦어도 11월 말에는 통과돼야 한다. 내년 총선이 가까워올수록 여야 의원들이 지역구 내 유치원 원장들의 반대에 흔들리게 된다. 바른미래당의 표가 어떻게 될지도 불투명하다. 행여나 (본회의 표결에서) 잘못되면 어떻게 되나 예의주시하고 있다. 보수적으로 표를 계산해보면 바른미래당의 표가 중요하다.”

-국회 본회의에 개정안을 내겠다고 했다.

“수정안에는 형사처벌 유예기간이 2년으로 돼 있다. 유예기간이 너무 길다.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내용은 이미 바른미래당의 당시 원내대표 김관영 의원과 임재훈 간사가 동의한 바 있다. 본회의에서는 수정안을 낼 생각이다. 하지만 본회의 때의 상황도 봐야 한다.”

-‘유치원3법’ 발의가 구체적으로 국민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나.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유치원이 돈벌이 대상이 아니라 교육기관이라는 점이 각인됐다. 법에도 그렇게 명시돼 있는데 방치한 것이다. 아이들은 교육의 대상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걸맞은 의무와 법 준수를 법안에 담았다. 에듀파인 회계시스템도 도입돼 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높였다. 유치원 원장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학부모들은 안심하고 아이들을 유치원에 맡길 수 있게 됐고, 아이들도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됐다. 무엇보다 유치원 교육의 공공성이 확보됐다. 에듀파인이 도입되면서 어떤 지역 유치원에서는 잘못 사용한 돈을 반납했다고 한다. 유치원3법은 처벌이 아니라 예방이 그 목적이다. 이미 그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유아교육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유치원3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반드시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

-20대 국회가 올해 4월 말 패스트트랙 지정 이후 공전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기 쉽게 ‘국회 선진화법’을 많이 고쳐야 한다. 처벌조항은 그대로 둬야 한다. 물론 민주당도 야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 폭력은 법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에게 용납되지 않는다. 20대 국회를 보면 개헌의 필요성을 느낀다. 수명을 다한 엔진은 동력이 아니라 공해만 뿜어낸다. 정치체제를 바꿔야 한다. 정치적 조건과 상황 때문에 한 치도 앞으로 못나가고 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