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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지 기능은 아직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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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창간 27주년 맞아 전 편집장 등에게 잡지의 미래를 묻다

기자가 언론 밥을 먹기 시작한 지 햇수로 20년쯤 된다. 시작할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언론의 위기’다. 창간 27주년. <주간경향>은 1992년 첫 호가 나왔다. 당시 제호는 <뉴스메이커>였다. 창간기념호를 맞아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시사주간지엔 미래가 있을까. 이제는 경향신문사를 떠난 3명의 언론인을 만났다. 2명의 편집장과 현역기자. 시사주간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들이다.

“1990년대는 사실 주간지의 전성시대였다.” 신동호 현대사 기록연구원 연구위원장(59)의 말이다. 신 위원장은 <주간경향> 편집장, <경향신문> 논설위원을 역임하고 3년 전 정년퇴임했다. “<뉴스메이커>가 창간된 1990년대 초반은 월간지 시대가 기울고 주간지 시대가 열리던 때였습니다. 우리보다 조금 뒤에 창간된 <한겨레21>도 그렇고 여러 가지 실험적인 편집과 차별화된 콘텐츠, 그리고 트렌디한 기사들을 기획하면서 가판 시장에서 대학생들이 많이 봤어요. 그만큼 신문사에서도 주간지에 대한 투자를 많이 했고….” 기자는 정년퇴임 이전부터 신 위원장으로부터 많은 사사를 받았지만 정작 물어보지 않은 질문이 있다. 당시 제작환경이다.

“90년대는 시사주간지 전성시대”

[창간기획]“시사주간지 기능은 아직 유효하다”

“당시는 책이 화요일에 나왔습니다. 그러면 토요일에 기사를 막아야 했어요. 편집이나 교열·미술 작업은 그 이후에 해야 하니 토요일을 넘겨 일요일 새벽까지 일하고 일요일 오전에 집에 가기도 했었죠. 월요일 출근하면 또 새로운 이슈가 터지기도 하고…. 월요일 상황을 반영해 덧붙여 넘기면 11시에 마감하느냐, 12시에 마감하느냐로 피 말리는 시간 싸움을 합니다. 목차나 이런 것은 월요일에 만드니까요. 어떤 때 보면 월요일에 와서 커버스토리가 바뀌는 경우도 있었어요.” 한마디로 쉴 틈 없는 강행군이었다. “당시 토요일 가족·친척 행사나 가야 할 자리, 친구들 모임 자리 다 못가고 인간 노릇을 못했어요. 고작 일요일 하루 쉬는데 레저활동 없이 그냥 가서 곯아떨어지는 것이죠. 나중에 마감 발행 주기가 변하고 주5일제가 되면서 상당히 나아지긴 했지만 또 그만큼 취재할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수많은 특종이 있었다. 신 위원장은 원희복 기자(현 경향신문 선임기자)의 검찰백서 파동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이라고, 김대중 정부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이 역점적으로 추진하던 정책인데, 백서를 만들면서 가출·성매매 아이들 신상정보가 그대로 들어가버린 것입니다. 개인 전화번호, 주민번호까지 다 노출되어 법을 집행해야 하는 검찰이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었죠. 담당검사가 기자에게 찾아가 ‘전부 수거해 소각하겠다’고 싹싹 빌었고, 편집장을 찾았습니다. 사전에 언질을 듣고 집에서 피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검사와 검사보가 집을 찾아왔다는 거예요. 결국 보도된 뒤 나중에 강력부장이 전화해 ‘누를 끼치게 돼서 죄송했다’며 화해를 제안했던 기억이 남습니다.”

신 위원장은 “시사주간지의 미래는 있다”고 단언했다. 전제조건이 있다. ‘원래 잡지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나 기능을 살려낸다면’이라는 조건이다. “주간지 포맷이 잡지인데, 원래 잡지는 전세계적으로 지성을 이끌어오고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내고 선도했던 매체입니다. 잡지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도 개화기 시절에 잡지가 그 역할을 했고, 잡지 내지는 주간지의 기능은 유효하다고 봅니다. 특정 분야를 특화시키고 충성독자를 가지고 있는 전문지는 오히려 더 늘어날 겁니다. 새로운 상황에 맞게 기존에 없던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할 것이고요. 단지 현재의 인쇄매체, 종이로 출판해 지금 방식으로 판매하고 마케팅하는 것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어요. 지금은 온·오프라인 경계가 허물어지고 특히 온라인도 중심축이 PC에서 모바일로 이동해 융합한 시대입니다. 그런 기술 환경 변화를 잘 활용해 잡지가 고유하게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차별화되고 심화된 이슈에 제격인 포맷

[창간기획]“시사주간지 기능은 아직 유효하다”

방송인 유인경씨(59)는 ‘언론사에서 발행하는 시사주간지로서는 최초로’ 여성 편집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경향신문사에 재직하면서 발행하던 모든 매체를 다 경험해본 유일무이한 기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간과 주간, 격주간, 월간지를 모두 경험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주간경향>을 포함한 시사주간지 3개와 영화잡지 <씨네21>까지 본다는 그는 “독자들이 떠났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잡지는 아직도 손에 쥐고 읽는 맛이 있기 때문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사보는 독자가 돌아올 수도 있다”고 말한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때도 좋고, 기차나 비행기를 탈 때 신문에서 읽을 수 없는 차별화되고 심화된 이슈에 제격인 포맷이라는 것. 그는 일본 사례를 들었다. “심도가 깊고 놀라울 만한 탐사보도 기자들이 주간지 출신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간문예춘추> 출신인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죠. 그 잡지엔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사람도 기고를 하죠. 요즘 <초예측>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일본 프리랜서 기자가 주간지 기고를 통해 만들어진 책이에요. 유발 하라리나 제러미 다이아몬드 같은 세계 석학을 집까지 찾아가서 만납니다. 물론 우리 실정으론 궁금하긴 합니다. 비행기표는 누가 대주는지, 출장비라도 나오는지….”

그는 일간지에서 다루지 못하는 시사주간지 고유의 콘텐츠 영역은 얼마든지 존재한다고 말한다. “글맛이 있는 글들이 시사주간지에는 있어요. 글 참 잘 쓰는 기자가 많습니다. 전직 기자 이전에 독자로서 취재한 흔적들이 느껴집니다. 실제 컨트롤 씨(ctrl+c) 컨트롤 브이(ctrl+v)(남의 기사를 복사해 편집해 붙이는) 기자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런 글을 보면 희열을 느낍니다. 물론 진짜로 탐사를 할 수 있는 집요한 취재와 정보력, 믿고 기다려주는 회사, 뒷받침하는 시스템과 전문성은 계속 숙제로 남지만요.” 그는 과거 편집장 경험을 언급하며 주간지의 미래 생존을 위해서는 ‘부대사업’ 고민도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컴퓨터로 글쓰기가 대세가 되었지만 만년필도 사라지지 않지 않습니까. ‘엣지 있는 마니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부대사업을 해야 해요. 과거 전국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탐사보도 공모를 해본 적이 있어요. 대학생들 중에서도 정말 글 잘 쓰고 전문적으로 영상도 찍고 편집하는 친구들 많거든요. 정부나 기업의 펀딩이나 협찬을 받아 그런 공모전을 다시 만들어보는 것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고유한 매력’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본연의 통찰력이 있는 주제를 찾는 것입니다. 전문가 코멘테이터도 중요해요. <글래머리>라는 미국의 패션지가 있는데, 아주 작은 박스기사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원고지 4장짜리예요. 거기에 코멘테이터가 5명인데 그 사람들이 다 ‘뻑적지근한 사람’들이거든요. 사실 그런 디테일도 중요한데 잘 안하는 것 같습니다. 취재원이 너무 빈약한 거예요. 결국 다시 인력과 자원 문제지만….” 그는 “돌이켜보면 편집장을 할 때보다 기자로서 취재하고 글 쓸 때가 제일 즐거웠다”고 덧붙였다.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났어요. 피천득 선생님을 비롯해서 이윤기 선생님 등 고인이 되신 분들 마지막 인터뷰를 한 경우가 참 많았어요. 이윤기 선생님의 경우 ‘선생님 인터뷰해요’라고 하니, 자기가 ‘말을 거의 못한다고, 또 유인경씨 말이 빨라서 못 알아듣고 메일을 쓸 힘조차 없다’고 답하시던 게 기억에 남네요. 결국 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집으로 방문해 인터뷰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더욱 다양한 실험·도전 필요”

[창간기획]“시사주간지 기능은 아직 유효하다”

최성진 <한겨레> 탐사팀 기자는 2003년 7월부터 2006년 6월까지 만 3년 <뉴스메이커>에서 근무했다.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한겨레 기자로 재직하면서 경향신문사 건물에 있는 정수장학회 보도로 대특종을 한다. 최필립 이사장과 당시 이진숙 MBC 기획본부장의 지분매각 관련 대화녹취록 보도다. 인터뷰를 거듭 고사하던 그는 “생각해보니 여러모로 경향신문사, <주간경향>과 인연이 없지 않네요”라며 ‘주간지의 미래’ 인터뷰를 수락했다. 그는 <한겨레21> 기자와 한겨레신문 노조위원장도 역임했다. “현실적으로 미래보다는 생존이 우선이지 않을까요. 여러 가지 조건이 녹록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결국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몸집을 슬림하게 줄여 길게 버텨 생존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제일 우선일 거고요. 그런 의미에서 <시사인>이나 <시사저널>보다는 <주간경향>이나 <한겨레21>이 좋은 조건이죠. 신문사라는 최소한의 생존기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현실적으로 인력을 무분별하게 늘릴 수도 없고, 가급적이면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되, 제한된 조건에서도 여러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최근 <한겨레21>이 시도하는 후원모델 같은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과거 구성원으로서 아쉬운 것’은 <뉴스메이커>라는 제호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뉴스메이커>만큼 시사주간지라는 매체 특성에 맞는 제호가 있을까라는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제호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팔릴 만한 아이템, 다른 관점으로 뉴스를 만들어내는 시도가 가능했다고 생각했거든요. 뉴스를 만드는 사람에게 주목해 인터뷰하고, 그 사람에 대한 인물평전을 써내고,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를테면 <뉴욕타임스>의 오비추어리 기사처럼 부고기사를 전문적으로 특화해내면 어떨까.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진 못하겠지만 ‘<뉴스메이커>는 이런 매체구나’는 독자 정체성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언론사 기반 시사주간지의 장점을 그가 거론한 것은 실제 그와 몇몇 시사주간지 출신들이 모여 다른 형식의 매체 창간을 시도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쿠리에>라고 프랑스 매체인데, 그 매체의 한국판을 만들어볼까 시도를 해본 적이 있어요. 외신을 주제별로 모아 재편집해서 완전히 새로운 별도의 매체를 만들어 서비스를 하면 경쟁력이 있다고 봤거든요.” 결국 포기하게 된 데는 수익구조 모델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나마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는 다른 일간지만큼 잡지에 형식과 내용의 엄밀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에서 하기 힘든 모험적인 시도와 파격을 독자들도 인정하고 수용한다는 측면에서 말하는 것인데, 조금 더 새롭고 참신한 시도나 모험을 담은 실험을 많이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매체 전체를 통틀어 단독 특종을 한다든가, 일반적으로 사실만 드라이하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전달 형식을 동원해서, 예컨대 형식적인 커버스토리보다는 한 가지 이슈만 풀어서 장관을 인터뷰하거나 장관이 기고하고 하는, 그런 실험을 하는 것도 전체 시사주간지의 시장이나 미래를 위해서 해볼 만한 도전이지 않을까요?”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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