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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모빌리티 갈등, ‘합승’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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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시장에 ‘타다’ 진입은 불공정” 반발… 택시면허 매입 또는 임대 방식 제안

지난 5월 29일 서울역 택시정류장 앞에 모범택시 예닐곱 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30분 동안 손님을 태우고 정류장을 빠져나간 택시는 한 대에 불과했다. 대기열의 맨 끝에서 맨 앞까지 오는데 4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기사들은 정류소에서 간단히 배를 채우거나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모두 택시운전 경력 30~40년을 채운 60~70대의 ‘노장’들이었다.

지난 5월 2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열린 ‘타다’ 퇴출 집회에서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관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5월 2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열린 ‘타다’ 퇴출 집회에서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관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대형차들이다 보니 기름값이 만만치 않아 무작정 도심을 배회할 수도 없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보통 서울역이나 호텔 등 목 좋은 곳에서 대기하다 손님을 태우는데, 갈수록 신통치 않다. 김용호씨(71)는 “어제 하루 11시간 동안 일했는데 저녁 먹고 담배 한 갑 사니 남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전날 점심 이후부터 일을 시작해 다음날 새벽까지 일한다. 이날 오후 6시 무렵 본 김씨의 미터기엔 주행거리가 ‘0’으로 표시되어 있다. 김씨는 “지금 택시로 버는 돈은 최저임금 수준도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택시업계의 공격 대상이 된 ‘타다’에 대해 묻자 김씨를 비롯한 주변의 기사들이 한 목소리로 성토했다. 한마디로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김덕수씨(71)는 “개인택시 운전자는 법인택시를 3년 무사고로 운행해야 자격을 받고, 수천만 원의 면허비용도 낸다”며 “신호위반만 해도 몇 시간 교육을 받는데 타다의 운전자는 이런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갈등의 핵심, 택시면허가격 폭락

특히 갈등을 키운 것은 폭락한 면허 가격이다. 서울시의 경우 택시면허 가격이 2017년 9월 9100만원에서 2019년 5월 28일 기준 6700만원으로 떨어졌다. 특히 지난해 10월 이후 낙폭이 컸다. 개인택시 기사들은 ‘퇴직금’이나 마찬가지인 면허 가격이 폭락해 노후마저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폭락의 가장 큰 요인을 모빌리티 업계의 진출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택시운전으로는 생계가 어렵다는 전망 때문에 면허를 사려는 사람이 줄고, 자연히 면허 가격이 떨어졌다는 생각이다. 법인택시도 사정은 비슷하다. 운전할 기사가 없어 택시회사의 가동률은 60% 정도에 머물고 있다. 심야버스 도입 등 대중교통이 발달해 택시 수요가 줄어든 데다 모빌리티 업계까지 진출해 벌이가 더 나빠졌다고 본다.

김용호씨는 “타다가 도입된 이후 그렇지 않아도 줄어들던 손님이 반토막 났다”며 “감차한 대수가 타다가 늘어나는 속도에 못미쳐 과잉공급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17년 이후 서울시의 감차 실적은 전무한 반면, 타다의 수도권 운행대수는 1000대로 늘었다. 택시 과잉공급 규모는 국토교통부의 2014년 추산에 따르면 전국 택시 75만대 중 약 20만대 정도다.

택시면허가 갈등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최근 택시면허를 모빌리티 업계가 사거나 임대해 그 면허대수만큼 운행을 하는 방안이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글과컴퓨터 창업주인 이찬진 포티스 대표, 네이버 공동창업자인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 등이 이런 방식의 해법을 제안했다.

택시업계는 이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빌리티 기업이 택시 시장에 들어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규제를 하거나, 똑같이 규제를 풀어야 공정하다는 맥락에서다.

[포커스]택시·모빌리티 갈등, ‘합승’ 해법은

이용복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총무팀장은 “개인택시나 법인택시의 면허는 충분히 양도·양수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택시시장에 들어와 공정한 경쟁을 할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라며 “본인들이 어렵다는 건 택시시장이 그만큼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 중림동 인근에서 만난 한 50대 택시기사는 “합법적으로 면허를 사거나 임대해 사업을 한다면 괜찮지 않겠느냐”며 “다만 자금력 있는 기업만 면허를 살 수 있을테니 추후에 독점이 될 가능성은 우려된다”고 말했다.

타다를 운영하는 VCNC의 모회사 쏘카의 이재웅 대표는 그러나 이 방안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는 5월 26일 자신의 SNS에 “면허 매각 후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논의 없이 개인택시 기사 면허만 돈 주고 사주면 갈등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한쪽 면만 보시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적었다. 면허를 사는 방식은 비용부담이 크다는 현실론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3월 대타협 이행이 우선”

정부가 택시면허를 사들여 통신업계의 주파수 할당처럼 모빌리티 업계에 경매로 나눠주는 방식도 비슷한 맥락에서 고민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택시면허를 정부가 사서 전환하는 방식은 열악한 상황이긴 하나 현재의 정규직 형태의 일자리 하나를 서너 명의 플랫폼 노동 일자리로 바꾸는 것과 같다”며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국민들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더 나은 방안인지는 논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택시업계 현장에선 앱 미터기와 선결제 등 플랫폼 기업들의 기술을 활용하는 협업에는 긍정적이다. 택시기사 김덕수씨는 “밀리든 안 밀리든 상관없이 미리 결제해야 부당요금이니 ‘돌아갔느니, 말았느니’ 싸울 필요가 없다”며 “이런 기술적 지원을 플랫폼이 해주면 좋고, 그런 협업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3월 ‘대타협’ 이후 모빌리티 업계와 택시업계는 ‘플랫폼 택시’를 속속 출시하고 있다. 플랫폼 택시는 앱 미터기 등 정보통신기술에 기반한 택시호출·결제 서비스와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신개념 택시를 말한다.

첫 번째 모델은 3월 20일 출시된 ‘웨이고 블루’와 ‘웨이고 레이디’다. 앱으로 호출하면 승차 거부 없이 즉시 배차되는 택시로 택시회사 50곳이 함께 만든 택시운송가맹사업체 타고솔류션즈와 카카오모빌리티가 협업했다. ‘웨이고 블루’와 ‘웨이고 레이디’라는 동일 브랜드로 영업하는 일종의 프랜차이즈 사업이다. 이 사업은 택시기사들의 숙원이었던 월급제도 도입했다. 최저임금 이상의 기본급에 운행실적에 따른 성과급을 지급하는 형태다. 이용복 팀장은 “플랫폼 택시가 택시시장을 활성화하고 승차 거부와 같은 문제도 해결해 승객 편의가 많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대타협 논의과정에서 배제된 카풀(승차공유) 관련 스타트업들은 모빌리티 전반을 다루는 새로운 논의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승차공유 차량 호출시 이용자에게 5년간 1달러의 부담금을 지불하도록 해 여기서 조성한 기금을 택시업계에 쓰도록 한 호주의 사례처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관련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모빌리티 업계 수익의 일부를 세금 등의 방식으로 거둬 분배하는 안은 현재 모빌리티 업계 대부분이 흑자를 내지 못하고 투자로 기업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현실성이 있을지 의문이다”라며 “승차공유는 우선 3월의 합의 내용을 이행한 후에 논의할 만하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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