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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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노블레스 오블리주

#1.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어느 날. 펑더화이(彭德懷)를 비롯한 중국군 지도부 장교들이 마오쩌둥(毛澤東)을 찾아갔다. 한국전에 자원한 마오쩌둥의 큰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을 말려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내 아들이 참전하지 않으면 누가 전쟁터에 가느냐”며 이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압록강을 건넌 마오안잉은 결국 참전한 지 약 한 달 만에 폭격으로 사망했다. 그때 그의 나이 28살이었다.

#2. 영국 왕실과 귀족의 자녀들은 병역법과 왕실 규범에 따라 장교의 신분으로 군복무를 하게 돼 있다. 1·2차 세계대전에서 귀족이나 왕족의 자제들 가운데 많은 사상자가 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공주 시절인 1945년 2차 대전에 참가해 구호품 관리, 군용트럭 운전 등의 임무를 맡았다. 그의 아들인 앤드루 왕자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1982년 아르헨티나와 벌인 포클랜드 전쟁 때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이처럼 권력자와 부유층, 고위 정치인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이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솔선수범해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리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고 한다.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는 이 표현은 이들에게 사회에 대한 올바른 책임과 의무, 도덕성을 요구하는 뜻으로 쓰인다. 19세기 프랑스 극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가 1836년에 발표한 희곡 <골짜기의 백합>에 처음 등장하지만 사실 이 개념은 고대 로마에서도 불문율처럼 통용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표상들이 적지 않다. 가산을 털어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우당 이회영 선생,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자 없게 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말라’며 나눔을 실천한 경주 최부잣집이 대표적이다.

최근 미국의 흑인 억만장자가 대학 졸업식 축사를 하면서 졸업생 수백 명의 학자금대출을 모두 갚아주겠다고 깜짝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사모펀드 업체 최고경영자인 로버트 F 스미스가 주인공이다. 그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모어하우스대 졸업생 396명이 학자금으로 대출한 약 4000만 달러(약 477억원)를 갚아주겠다고 했다. 대신 자신의 재능을 사회를 위해 쓰라고 애정 어린 당부를 했다. 베푸는 삶의 의미,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제대로 실천해 보인 것이다.

우리는 고위공직자나 기업인, 정치인들의 부동산 투기나 탈세, 자녀 병역비리 등을 목격할 때마다 종종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떠올린다. 이 사회의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인물을 그만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일 터다. 겉으로는 ‘사회에 공헌하겠다’, ‘소수자 권익 보호에 앞장서겠다’고 하지만 뒤에서는 온갖 비리와 파렴치한 행위를 벌이는 사례들을 적지 않게 보아왔다. 우리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높은 분’들이 학자금대출금을 갚아주는 일까지는 언감생심이다. 자신의 행동에 떳떳하고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넘쳐나고, 그런 이들이 존경받는 사회가 ‘일상’이 되길 바랄 뿐이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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