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은 원팀임을 보여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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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 6자회담 미국 측 특사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 국가비확산센터 소장

지난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비핵화 논의에 대량살상무기 동결 문제를 포함시켰다. 예상치 못한 ‘빅딜’을 제시한 셈이지만 결국 합의는 불발됐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이 서로 원하는 점을 명확히 알리고, 관계 정상화를 위한 선결과제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6자회담 미국 측 특사로 활동하며 북한 비핵화 공동성명을 도출한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 국가비확산센터 소장이 5월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6자회담 미국 측 특사로 활동하며 북한 비핵화 공동성명을 도출한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 국가비확산센터 소장이 5월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2003년부터 2005년까지 6자회담 미국 측 특사로 활동하며 북한 비핵화 공동성명을 도출한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 국가비확산센터 소장은 5월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갖고 지난 2차 정상회담을 이렇게 평가했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향후 북·미 정상회담이 철저한 실무준비 과정을 거쳐 재차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북한이 남한의 독자 행보를 유도하고 있지만 “한국과 미국이 한 치의 빈틈이 없는 ‘원팀(one team)’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트라니 전 소장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민간기구인 천주평화연합이 5월 15~17일 개최한 ‘국제지도자회의’ 참석차 방한했다. 그는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를 “유엔 결의를 위반한 불행한 사태”로 규정하면서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갈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중앙정보국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동북아 정보통이자, 국무부에서 외교관으로도 활약한 그는 현재 미주리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최근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은 대북제재 유지를 전제로 비핵화를 유도할 국제적인 북한경제개발펀드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6자회담 당사국들은 2005년 9월 19일 비핵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 안에 완전한 비핵화와 경제개발 지원, 지역 안전보장 등 모든 이슈가 담겨 있었다. 북한과의 신뢰 개선을 위한 모든 조치들이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지금은 핵심적인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완벽하게 검증 가능한 비핵화라는 원칙에 합의하지 못한 상황에서 독립된 협의체를 가동할 이유을 찾기 어렵다. 경제개발 지원과 체제 보장은 비핵화 합의틀 안에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일각에서 트럼프 정부가 문재인 정부를 신뢰하지 못해 핵심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미 공조의 신뢰수준과 한국의 대북정책을 평가한다면.

“최상이라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든 절차를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월 28일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대화로 이끌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처럼 문 정부도 북한과의 대화를 진전시켰다. 누가 (신뢰 문제를)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들어본 적도 없고 완전히 잘못된 견해라고 생각한다. 한·미 정부 간, 양국 정상 간에 갭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차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영변+α’ 즉 비핵화 정의에 핵·미사일 외에 생화학무기도 포함했다. 지나치게 빠른 접근 아니었나.

“핵은 물론 화학·생물학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나 인권 문제들이 모두 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 올라올 수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진실로 원한다면 이런 의제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걸 (북한에) 밝힌 것이다. 분명 지금은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보지만 이런 의제들이 거론된 것이 놀랍지는 않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언젠가는 논의할 수밖에 없는 주제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판을 뒤집는 승부수에 불안감도 느낀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한다면.

“북한 정상과 마주한 첫 미국 대통령이었다. 굉장히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고 본다. 모든 보좌관들이 말렸던 일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열린 자세였다고 본다. 하지만 북·미 간 현안은 복잡하고 2~3시간의 정상 간 만남으로 협의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세밀한 사항을 들여다보고 합의를 이루려면 많은 시간의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2005년 6자회담 공동성명이 나오기까지 2년 반의 시간이 걸렸다. 며칠 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맞상대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만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트럼프의 대담한 행보를 지지하지만 협상의 진전을 원한다면 협상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직 그런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문재인·트럼트 대통령 모두 대담하고 용기 있는 결정으로 한반도 평화 가능성을 높였다. 이전 양국 정부에서는 한반도의 충돌 가능성이 매우 컸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북한이 미사일을 계속 발사하면서 협상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통제불능 상황으로 치달아 (협상이) 좌초할 수 있다. 한 발 앞으로 가고, 두 발 뒤로 물러난다고 할 수 있다. 모두 원치 않는 일이다. 계속 앞으로 가길 바란다.”

-미국은 이란과의 핵협상은 파기했지만, 북한과의 핵협상은 이어가고 있다. 이란과 북한의 차이는 무엇인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은 북한과 연락사무소 개설과 관계 정상화, 경제개발을 이야기하고 있다. 모든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국제사회에 편입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란의 경우 헤즈볼라와 같은 테러리스트를 지원하고, 시리아·이라크·예멘 등 중동 문제에 공격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유럽까지 닿을 수 있는 미사일 개발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란은 지난 10~15년간 핵개발을 하면서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모든 물질을 갖추고 있다. 북한과 이란은 완전히 다른 상황에 있다.”

-북핵 문제는 미·중 간 여러 전선 중에서 유일하게 상호협력 가능성이 높은 이슈로 보인다. 최근 미·중 갈등이 북핵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까.

“미국과 중국은 6자회담 때부터 북한 문제를 놓고 적극 협력했다. 중국은 6자회담 공동성명 도출에 큰 기여를 했고, 유엔 안보리가 부과한 대북제재도 이행했다. 중국은 책임있는 행위자였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실제 중국은 북한이 핵을 갖는 걸 원치 않는다. 우리 모두 평화롭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원한다. 물론 미·중 간에 무역분쟁, 지적재산권, 남중국해 문제 등 다른 이슈도 있지만 이는 양자 간에 해결할 문제다. 북한 문제를 놓고선 공동의 이익을 갖고 협력할 수 있다.”

-하노이 협상에서 톱다운 접근법, 개인 간의 담판에 의한 외교의 한계가 명확해졌다. 3차 정상회담을 전망하면.

“비건 특별대표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만나 로드맵을 짜야 한다. 정상회담 전에 많은 준비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은 체제 보장과 경제개발, 경제제재 해제를 원할 것이다. 미국은 완전히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원할 것이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명확하게 이야기하길 바란다. 만약 다음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매우 직접적이고 의미있는 실무 그룹 차원의 논의가 선행될 것이다.”

-오랜 시간 대북 협상가로 활동해온 경험에 비춰 한국 정부에 해줄 조언이 있다면.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한국이 좀 더 독립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논평했지만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원팀’이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핵을 포기하면 체제 안정과 경제 측면에서 북한의 미래가 훨씬 밝아질 수 있다는 점을 최대한 설득해야 한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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