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신인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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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에 이어 올해에도 ‘베이징 키즈’들이 대거 프로무대에 데뷔했다. 지난 3월 23일 열린 시즌 개막전에서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신인선수들은 두산 김대한, 한화 노시환, 키움 박주성, KIA 김기훈, 삼성 원태인, LG 정우영, KT 손동현 등 7명이다. 모두 고졸 신인이다. 2018년에는 4명의 신인(KT 강백호, 롯데 한동희, 두산 곽빈, 한화 박주홍)이 이름을 올렸다. 1년 사이 2배 가까이 신인들의 기회가 더 많아졌다. 그만큼 기량이 좋은 신인들이 많이 나온 것이다. 개막 후 10개 구단이 40경기 넘게 소화를 했다.

LG 트윈스 정우영이 3월 28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6회 등판, 역투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LG 트윈스 정우영이 3월 28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6회 등판, 역투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두 달 가까이 지나는 동안 신인들의 위치에도 변화가 생겼다. 1군에 아직 버티고 있는 선수도 있지만 2군행의 쓴맛을 본 이들도 있다. 또한 새롭게 기회를 받은 신인들도 있다. 본격적으로 시즌 중반에 돌입하는 시점에서 신인왕 레이스에도 변동이 생기고 있다.

고졸 신인 첫 선발승, 투수 부문 요동

1군에 등록된 고졸 투수들 중 김기훈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펜투수의 역할을 맡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갓 프로의 무대를 밟은 신인 투수에게 선발진의 한 축을 내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KIA는 토종 선발진의 한 자리를 김기훈에게 맡겼다. 김기훈은 스프링캠프에서부터 가능성을 보이며 5선발 경쟁에 뛰어들었고 한승혁이 빠지게 되면서 이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나머지 신인 투수들은 중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장 관심을 모은 투수는 LG 정우영이었다. 지난 3월 24일 KIA전에서 1이닝 2안타 2삼진 무실점으로 강렬한 데뷔전을 치른 정우영은 데뷔전 포함 7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며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삼성 원태인은 처음에는 중간계투로 시작했다가 팀 사정상 마무리투수의 역할도 겸했다. 3월 26일 롯데전에서 0.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데뷔전을 치른 그는 다음 경기인 3월 28일 롯데전에서는 2이닝 무실점으로 첫 홀드도 따냈다. 세 번째 등판인 3월 30일 두산전에서는 1이닝 3실점으로 패배의 아픔을 떠안았지만 다음날 두산전에서는 똑같은 상황에 나서 설욕했다.

개막 엔트리에 승선하지 못했지만 뒤늦게 합류한 롯데 서준원도 있었다. 서준원은 3월 29일 등록돼 다음날 LG전에서 처음으로 프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2이닝 무실점으로 강렬한 데뷔전을 치렀다. 상대 더그아웃에서는 정우영이 지켜보고 있었다. 서준원은 4월 20일 말소되기 전까지 또래 선수들에게 자극제가 됐다.

KBO리그 최연소인 KT 손동현도 이강철 감독이 주는 기회를 받았다. 엄상백 등 기존 필승조들이 시즌 초반 흔들리자 이 감독은 처음부터 손동현에게 중책을 맡겼다. KT의 미래를 짊어질 선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즌 초반은 젊은 불펜들의 활약이 돋보인 기간이었다. 다만 불펜투수는 팀의 기여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불펜투수가 가장 많이 쌓을 수 있는 기록은 홀드뿐이다. 중간계투로만 뛰어 KBO리그 신인왕을 차지한 투수는 2009년 이용찬(두산) 이후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고졸 신인 중 처음으로 선발승을 거둔 투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삼성 원태인이 지난 5월 4일 키움전에서 7이닝 3안타 1사구 4삼진 1실점으로 데뷔 첫 선발승을 거뒀다. 당초 선발로 시즌을 시작했던 건 KIA 김기훈이었지만 불펜으로 시작한 원태인이 더 빨리 선발승을 따냈다. 정우영, 손동현 등도 시즌 첫 승리를 달성했다. 그러나 2명 모두 거둔 승리는 구원승이었다. 원태인은 선발승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제2의 강백호는 어디에?

2013년 신인왕 여부를 결정한 건 선발승이었다. 당시 NC 이재학과 두산 유희관이 신인왕 유력 후보로 다투던 중이었다. 2명 모두 중고신인이었고 선발 자원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선발승으로 10승 고지에 오른 이재학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유희관도 10승을 달성했으나 이 중 1승은 구원승이었다.

KIA 김기훈은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2018년 입단한 ‘중고신인’인 NC 김영규는 4승을 쌓으며 좋은 흐름을 이어가는 듯했으나 그 역시 지난 10일 2군행 통보를 받았다.

이렇게 요동치는 판도 속에서 원태인이 선발 로테이션을 계속 소화할 수 있을지 여부가 관건이다. 삼성으로서는 원태인이 맞으면서 계속 성장하게끔 하려고 한다. 만약 원태인이 승리를 쌓게 되면 신인왕 레이스에서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수도 있다.

지난해 신인왕은 KT 강백호의 차지였다. 강백호는 2018년 3월 24일 1군 데뷔전에서부터 홈런을 치더니 138경기 타율 0.290 29홈런 84타점 등의 기록을 세우며 당당하게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시즌 초반부터 강백호가 신인왕을 받을 것이라는 의견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야수에서 제2의 강백호만큼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휘문고 시절 투타에서 모두 재능을 보였던 두산 김대한은 아직 1군에서 첫 안타도 신고하지 못했다.

그나마 야수 중에서는 한화 선수들이 눈에 띈다. 노시환, 변우혁 등은 1군에 입성한 ‘순수 신인’ 가운데 홈런을 친 타자들이다. 이들은 한용덕 한화 감독의 지원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이 강백호만큼은 아니더라도 두 자릿수 홈런이라도 기록한다면 시즌 후반 신인왕 판도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여기에 첫 신인 포수까지 1군에 입성했다. 삼성 김도환은 지난 5월 7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주전 강민호의 뒤를 받칠 백업포수가 필요했던 삼성은 신인 김도환에게도 기회를 줬다. 김도환은 5월 9일 NC전에서 처음으로 선발로 마스크를 쓰고 팀의 6-4 승리를 이끌었다. 김도환은 포수라는 포지션의 희소성이 강점이다. 역대 신인왕 중 포수가 신인왕을 받은 건 총 5차례밖에 없다. 그 중 2010년 양의지가 받은 게 가장 최근 기록이다.

2019시즌은 아직도 100경기 가까이 더 치러야 한다. 신인들의 공통적인 일차 목표는 “1군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다. 신인왕 레이스도 끝까지 살아남는 선수가 차지할 수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김하진 스포츠부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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