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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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빛도 섞이지 않은 절대의 어둠은 지구촌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 속의 싱싱한 야성의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 빛은 열(熱)이다. 빛은 사라져도 자국을 남긴다.

박민규기자

박민규기자

서울을 떠나온 지 3년이 넘었다. 이사 온 마을은 내 바람대로 고요했다. 서울 근교지만 자연의 건강한 소리가 남아있었고, 해가 지면 어둠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소음만 멈춘다고 고요한 것은 아니다. 어둠이 제때 내려와 새소리까지 덮으면 비로소 세상은 고요해진다.

그런데 고요를 깨뜨리는 일이 일어났다. 어느날 갑자기 요상한 빛이 나타났다. 간이 야구장 불빛이었다. 밤에 느닷없이 조명탑에서 불빛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다. 인근의 마을들은 야구장의 맹렬한 불빛에 밤의 평화가 깨져버렸다. “산천초목에 어둠이라는 이불을 돌려주라”는 주민들의 항의도 소용이 없다. 주민들은 지쳐버렸고, 오늘도 야구장 조명탑에서는 거대한 빛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빛이 넘친다. 우리가 이룬 문명도 빛 위에 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도시는 빛이 넘쳐, 웬만한 빛은 빛도 나지 않는다. 간판들은 서로 돋보이려 요란하게 깜박이고, 자동차는 두 눈을 부릅뜨고, 빌딩마다 빛을 토해내고 있다. 24시간 사회에서 흘러나온 잉여의 빛들이 밤을 물들이고, 인간이 무심코 버린 빛들이 밤거리를 핥고 있다. 그래도 밤을 잊어버린 사람들은 불을 끌 줄 모른다. 빛이 귀했던 시절에는 밤마다 별이 쏟아졌다. 별을 보며 별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면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별들이 깜박거렸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렸습니다.’(윤동주 ‘별 헤는 밤’)

별들이 내려와 또렷이 반짝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별 속에서 추억, 사랑, 쓸쓸함, 시, 그리고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인가.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시구도 별이 가슴으로 흘러들어왔기에 탄생했을 것이다. 별이 보이지 않으니 하늘에는 이야기가 흐를 수 없다. 별은 이제 노래나 시 속에서 겨우 깜박거리고 있다.

김택근

김택근

아무 빛도 섞이지 않은 절대의 어둠은 지구촌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 속의 싱싱한 야성의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 빛은 열(熱)이다. 빛은 사라져도 자국을 남긴다. 잠 못 드는 지구 표면에는 빛의 자국인 열꽃이 피어 있다. 열꽃은 자꾸 번져가고 결국 지구는 ‘온난화’라는 중병에 신음하고 있다. 진행형인 온난화로 인류의 공멸이 예고되어 있지만 인간들은 지구에 불을 지피고 있다.

한 가지 반갑고 또 흥미로운 소식이 들려온다. 경기도가 ‘빛 공해’ 방지를 위해 나섰다고 한다. 오는 7월부터 조명등의 밝기를 규제한다고 발표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빛을 공해로 인식해 대책을 마련했다는 소식은 처음 접한다. 경기도에 있는 96만개의 인공조명이 밝기를 낮추면 어둠은 얼마나 짙어질지 궁금하다.

더 나아가 살아있는 나무에 조명기구를 설치하는 행위는 규제할 수 없을까. 나뭇가지에서 피어난 불빛을 보면 흡사 나무의 살갗이 타는 것 같아 속이 화끈거린다. “나무에게서 빛의 올가미를 벗겨라.” 명하는 사회, 상상만 해도 평화롭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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