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티인가, 감시도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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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형 관제시스템’으로 범죄·재난 예방… 각종 정보로 정교한 사회통제 우려

도시의 인프라가 똑똑해지고 있다. 폐쇄회로TV(CCTV)는 아날로그 방식에서 ‘지능형’으로 변했다.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 행동을 인지하고 불이 나면 자동으로 그 부분을 비춰 모니터링 요원이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나거나 비명, 폭발음이 들리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도 있다. 카메라가 촬영한 수많은 이미지 중에서 사용자가 요청한 장면, 혹은 볼 필요가 있는 부분만 끄집어내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13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스마트시티 혁신전략보고회를 찾아 발로 밟은 운동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하는 기기를 한 어린이와 함께 시연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13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스마트시티 혁신전략보고회를 찾아 발로 밟은 운동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하는 기기를 한 어린이와 함께 시연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런 ‘지능형 관제시스템’은 실제 범죄를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줬다. 지난 2월 10일 경찰은 경기 오산에서 골목을 배회하며 주차된 차의 문을 잡아당기고 차량을 탈취하려는 차량털이범을 지능형 관제시스템을 이용해 30분 만에 검거할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지능형 관제시스템의 얼굴인식 기능을 활용해 방화 용의자를 사흘 만에 검거하기도 했다.

대구시는 도로의 통행량과 교차로의 대기 차량 수, 차량 행렬의 길이 등을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하는 시스템을 올해 안에 구축할 계획이다. 실시간 도로정보를 반영한 교통신호 최적화로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서울교통공사는 미세먼지 데이터를 분석해 지하철 역사의 공기 질을 개선하는 사업을 강남역에서 수행 중이다.

‘감시자본주의’ 우려 높아져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도시의 경쟁력과 삶의 질을 높이는 ‘스마트시티’ 사업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핵심 자원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다. 감각기관이라 할 CCTV와 센서가 도시 곳곳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면 인공지능이 이를 분석해 상황을 파악하고 예측한다. 도시는 빅데이터와 자율주행,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을 실험하고 적용하는 플랫폼으로 변하고 있다.

도시 인프라의 지능화는 범죄를 예방하고, 에너지 등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도와준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술을 보유한 민간기업에 치안과 교통, 환경 등 도시 운영의 주도권을 넘겨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4월 16일 캐나다 시민자유협회는 토론토의 ‘스마트시티’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온타리오 호수 기슭에 위치한 퀘이사이드와 포틀랜드 지역을 북미 최대의 스마트시티로 재개발한다는 계획인데,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의 자회사 ‘사이드워크 랩스’가 주도한다. 이 회사가 지난해 8월 공개한 청사진에 따르면 도시 안에서는 자가용 대신 자율주행 셔틀이 다닌다. 신호등과 차선은 교통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바뀐다. 도시 지하터널에는 로봇이 다니면서 쓰레기와 화물을 수송한다. 탄소 배출 없는 친환경 미래 도시의 모델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시민자유협회는 이런 계획이 성급하고 불투명하게 추진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센서와 탐지장비를 이용한 광범위한 데이터 수집을 우려했다. 감시카메라에 찍히는 것에 실질적인 동의를 받을 방법이 없고, 개인을 식별하지 않도록 정보를 처리한다는 보장이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홍콩에서 온 세계대중교통협회(UITP) 관계자들이 지난 5월 1일 LG유플러스가 서울교통공사와 함께 지하철 5호선 군자역에 조성한 ‘스마트 스테이션’ 운영 현장을 찾아 설명을 듣고 있다. / LG유플러스

홍콩에서 온 세계대중교통협회(UITP) 관계자들이 지난 5월 1일 LG유플러스가 서울교통공사와 함께 지하철 5호선 군자역에 조성한 ‘스마트 스테이션’ 운영 현장을 찾아 설명을 듣고 있다. / LG유플러스

위치와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얼굴인식이 가능한 기술은 그 존재만으로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감시와 사생활 침해 우려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낳는다. 국내 한 ICT기업 관계자는 “CCTV로 얼굴을 인식해서 나이와 성별을 맞추고, 옷차림을 분석하는 기술은 이미 일반화됐다”며 “하지만 이런 것도 일종의 개인정보라고 할 수 있어서 정서적으로 불쾌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시티가 ‘감시자본주의’로 흐를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버드대 경영학과 명예교수인 쇼사나 주보프가 정립한 개념인 감시자본주의는 인간의 행동을 데이터로 만들어 수익을 얻을 뿐만 아니라 기술을 이용해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스마트시티 기술이 매우 정교한 사회통제 수단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스마트시티를 추진할 때 빅데이터와 정보를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 그 과정에서 생기는 잉여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와 같은 문제를 심도 있게 따져야 하지만 한국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 대세라는 미명하에 안이하게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노골적인 ‘빅 브라더’인 중국보다 오히려 기업이 주도하는 세련된 감시체제가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마트시티 아닌 스마트컴퍼니 될 수도”

국내외 기업들이 스마트시티 사업에 공을 쏟는 이유는 돌아올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막대한 투자를 하고, 데이터를 모으고 기술을 실험할 수 있도록 규제도 완화해준다. 여기서 축적한 경험을 토대로 내년에만 약 1조5000억 달러(약 1747조원·딜로이트 추정)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글로벌 스마트시티 시장에 진출할 수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부산 에코델타시티·세종 5-1생활권)를 선정했다. 과감한 규제개선으로 신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목표 아래 지난해 8월 자율차·드론·개인정보 관련 6종의 특례를 신설했다. 지난 4월 5일 스마트도시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민간기업 참여 확대, 토지이용, 신재생 에너지 관련 특례 3종이 추가됐다.

정보인권연구소의 이은우 변호사는 국내 스마트시티 계획도 기업 주도로 진행되면서 공공성이 후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스마트시티 융합 얼라이언스나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 스마트시티 특별위원회의 구성원은 거의 기업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며 “공공인프라의 주도권을 기업에 넘기면 스마트시티가 아니라 스마트컴퍼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프레드폴’ 소프트웨어는 과거 범죄가 발생한 위치를 분석해 범죄위험이 있는 영역을 예측하는데, 이런 기술은 차별을 고착화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과 데이터에 기반한 도시정책은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이 변호사는 “스마트시티가 민주주의와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측면에서 이뤄지기보다 기업과 과학자들의 실용주의적이고 도구주의적, 가부장적 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시민사회가 적극 개입하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시티법에 따른 개인정보 규제 완화에 따른 영향평가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스마트시티에서 개인정보는 식별이 불가능한 상태로 유통이 된다”며 “CCTV 정보는 사실상 프라이버시에 속하기 때문에 얼굴식별 기술을 민간서비스에 적용할지 여부는 사안별로 결정해 엄격히 관리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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