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히트노런 도우미 포수들의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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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히트노런’은 투수가 해야 할 역할을 최대치로 올려야 나올 수 있는 기록이다. 안타를 하나도 허용하지 않고 홈에 한 명도 들여보내지 않아야 비로소 노히트노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삼성 덱 맥과이어가 4월 21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19 KBO리그 한화전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뒤 환호하고 있다. / 삼성라이온즈 제공

삼성 덱 맥과이어가 4월 21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19 KBO리그 한화전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뒤 환호하고 있다. / 삼성라이온즈 제공

KBO리그에서 노히트노런은 1982년 원년부터 단 14차례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기록에 이름을 올리는 선수는 항상 투수지만 노히트노런은 투수 혼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대기록의 현장에는 언제나 투수와 함께 호흡을 맞춘 포수가 있었다. ‘안방마님’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포수는 투수의 기록을 이끌어냈다는 것에 만족해야만 한다. 그러나 노히트노런을 일궈낸 포수들에게도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가장 최근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선수는 삼성 외국인 투수 덱 맥과이어다. 맥과이어는 지난 4월 21일 대전 한화전에서 9이닝 동안 13개의 삼진을 뽑아내며 볼넷과 몸에 맞는 볼 1개씩만을 주고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삼성 타선이 장단 23안타로 16점을 내줘 맥과이어는 완연한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데뷔 15년 만에 합작한 강민호

이날 경기 전까지 승리 없이 5경기에서 2패 평균자책점 6.56으로 부진하던 맥과이어는 KBO리그 데뷔 후 첫 승을 노히트노런으로 장식한 최초의 투수가 됐다. 또 역대 최다 득점 노히트노런의 주인공이 된 것과 동시에 최다 탈삼진 기록도 세웠다. 맥과이어와 호흡을 맞춘 포수는 강민호였다. 맥과이어는 경기 후 “강민호가 내게 자신감을 심어줬다”며 공을 돌렸다. 이날 경기에서는 경기 전부터 빠른 카운트로 승부를 보려고 한 것이 주효했다.

강민호는 2004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단한 후 처음으로 노히트노런을 합작했다. 데뷔 15년 만에 영광스러운 기록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 것이다.

앞서 강민호는 롯데 시절에 더 큰 기록을 달성할 뻔한 적이 있었다. 강민호는 2012년 6월 2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 이용훈(현 롯데 코치)과 8회말 1사까지 퍼펙트 기록을 이어갔다. 이용훈은 2011년 9월 17일 퓨처스리그(2군 리그)에서 한화를 상대로 역대 최초로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주인공이기도 했다.

야구장 전광판에 ‘0’이라는 숫자가 하나하나 찍혀나가던 순간, 이용훈은 강민호의 사인을 보던 중 잠깐 웃음을 지었다. 긴장한 강민호가 옛날 사인을 냈기 때문이다. 이용훈은 강민호의 마음을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번져 나왔다. 투수와 포수의 마음이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아쉽게도 8회 1사 후 최동수에게 안타를 내줘 퍼펙트게임은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포수 강민호에게도 잊을 수 없는 경기가 됐다.

그리고 7년 후 강민호는 롯데가 아닌 삼성의 유니폼을 입고 대기록을 함께했다. 강민호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팀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안방을 지키겠다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공격형 포수’로 불리던 그는 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안방을 지키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홈을 지켰던 강민호는 벅차오르는 마음을 안고 맥과이어와 뜨거운 포옹을 했다.

KBO리그 역사상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퍼펙트게임 기록은 항상 달성 직전 실패하곤 했다. 정민철(현 MBC스포츠 해설위원)이 가장 근접한 기록을 낸 투수였다.

1997년 5월 23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OB와의 경기에서 정민철은 9회초 1사 후 타석에 들어선 심정수를 삼진으로 잡았다. 그런데 공이 바운드되며 포수 뒤로 빠졌고 스트라이크 낫 아웃 상황이 돼 심정수의 출루를 허용했다. 정민철은 안타를 내주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해 퍼펙트게임 대신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노히트노런 도우미 포수들의 뒷이야기

경기 후 포수 강인권(현 한화 코치)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포수가 포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퍼펙트게임’이라는 대기록 달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민철과 강인권 모두 현역생활에서 물러난 뒤에도 노히트노런 기록이 나올 때마다 그날의 경기가 회자되곤 했다.

세월이 흐른 뒤 당시 포구 상황에 대한 속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삼진을 잡아내기는 했지만 사인미스였다는 것이다. 이제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강 코치는 ”이제 와서 변명밖에 되지 않지 않겠나“라며 덤덤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래도 강인권이 현역시절 이름을 떨쳤던 포수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강인권은 2000년에는 송진우와 호흡을 맞춰 노히트노런 역사를 또 썼다.

NC 김태군, 무명에서 명포수 반열에

지도자가 된 후에는 세 차례나 제자들이 노히트노런을 달성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2014년 NC 코치로 있을 때 포수 김태군이 찰리 쉬렉과 노히트노런을 합작하는 모습을 봤다. 두산으로 팀을 옮긴 2015년에는 4월 9일 잠실 넥센전에서 양의지가 유네스키 마야와 노히트노런을 세우는 현장을 함께 경험했다. 2016년 6월 30일 마이클 보우덴의 노히트노런까지 지켜봤다.

2011년 창단한 9구단 NC는 2013년 1군 진입 후 돌풍을 일으키며 10구단 체제의 발판을 마련했다. NC는 1군에서 각종 기록을 생산하곤 했는데 노히트노런 기록도 양산했다.

구단 최초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투수는 푸른 눈의 외국인 투수 찰리 쉬렉이었다. 찰리는 2014년 6월 23일 잠실 LG전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외국인 선수가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건 찰리가 처음이었다. 2013시즌 평균자책점 2.48로 이 부문 리그 1위를 기록한 찰리 쉬렉이 팀 역사는 물론 리그 역사에 획을 긋는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함께 호흡을 맞춘 이는 김태군이었다.

김태군은 NC에서 새롭게 빛을 본 선수다. 2008년 LG에 입단한 김태군은 NC의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2013시즌부터 팀을 옮겼다. 맨땅에서 시작한 NC에서 명포수 출신이었던 김경문 감독의 지도를 받고 성장해갔다. TV 다큐 프로그램에 나왔던 김태군은 “야구 포지션별로 계급을 나누면 포수가 가장 낮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포수의 위치가 힘들다는 의미였다. NC에서 노히트노런을 합작한 포수 반열에 이름을 올린 김태군은 그러나 더 이상 가장 낮은 계급의 위치가 아니었다. 김태군은 그 해부터 2017년까지 팀을 4년 연속 포스트시즌으로 이끄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김하진 스포츠부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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