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오신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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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모든 사람이 귀한 만큼 누구에게도 군림하지 말라고 이르셨다. 스스로 옷 입고, 밥 먹고, 발 씻고, 잠자는 것이 유혹을 멀리하며 진리를 받드는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온다. 길가의 연등이 화사하다. 부처님오신날 즈음에는 세상이 기운차고 싱그럽다. 꽃보다 아름다운 새잎들을 보며 새삼 석가모니 부처님이 왜 오셨는지를 생각해본다. 조계종 종정이었던 성철스님은 1982년 부처님오신날에 이런 법어를 내렸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연등이 걸려 있다./사진 김창길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연등이 걸려 있다./사진 김창길 기자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불교사에 길이 남을 한글 법어이다. 우리 모두가 불성을 지녔고, 그렇기에 내 안의 탐욕과 분노를 없애면 부처가 될 수 있고, 또 그렇기에 부처님들이 사는 이 땅은 지옥이 아닌 정토라는 가르침이다. 실제로 석가모니 부처님은 따르는 무리와 더불어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사셨다. 단단해서 깨지지 않는, 위없는 가르침이 들어있는 <금강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때 세존께서는 식사시간이 되어, 옷 입고 바리때를 들고 사위성 안으로 들어가 걸식하셨다. 성안에서 한 집 한 집 빌어 드시고는 본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오셨다. 식사를 끝내고 옷과 바리때를 거두시고 발을 닦으신 후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금강경> 제1품)

부처님의 평범한 일상을 옮겨놓았다. 여기에 가르침이 들어있다. 손수 음식을 구걸함은 교만하지 않음이다. 한 집 한 집 차례로 구걸함은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음이니 차별이 없음이다. 본디 자리로 돌아옴은 제자리를 찾아감이요, 발을 닦음은 몸으로 지은 업을 씻어냄이다. 자리를 펴고 앉음은 다시 깨달음의 경지인 공(空)의 세계로 들어감이다.

모든 것에 불성이 있음을 깨달았다면 부처님처럼 자신을 낮추고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부처님이 설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은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귀하고 잘났다’는 말이 아니다. 우주 전체의 생명들이 절대적 존재라는 뜻이다. 내가 귀한 만큼 남들도 귀하게 여기라는 말이다. 생명존엄의 선언이다. 이를 성철스님은 ‘나’ 아닌 게 하나도 없는 세계, 곧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利他)가 자연히 이뤄지는 세계라고 풀이했다.

김택근

김택근

머리 또는 얼굴에서 빛이 난다거나, 신통력을 지녔다거나, 날마다 복을 나른다거나 하는 것들은 가짜이거나 하찮은 것들이다. 누군가 공중을 나는 비법을 터득했다고 치자. 계속 하늘을 날아다녀서 무얼 하겠는가. 그런 비법을 터득했다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도(道)란 일상 속에 있다.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들어있다. 깨친 사람은 남을 무시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 않는다.

둘러보면 특별한 스님들이 많다. 높은 곳에서 고함 지르고 주장자를 내리치고 있다. 그럼에도 부처님처럼 살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신에게 감탄하고 자신을 숭배하고 있음이다. 이들 또한 가짜이거나 하찮은 부류이다. 부처님은 모든 사람이 귀한 만큼 누구에게도 군림하지 말라고 이르셨다. 스스로 옷 입고, 밥 먹고, 발 씻고, 잠자는 것이 유혹을 멀리하며 진리를 받드는 것이다. 옛 고승들에게 하루 일과를 물으면 이렇게 답했다.

“배고프면 밥 한 술 뜨고 곤하면 잔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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