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 선도하는 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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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동장 시민추천제 도입… 주민세 전액 ‘자치분권 특별회계’로 운영도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의 상징인 세종시가 시장과 시청의 행정권한을 시민과 나누는 작은 단위의 풀뿌리 주민자치를 펼치고 있다. 시장이 가진 읍·면·동장에 대한 인사권을 시민에게 넘기는가 하면, 마을마다 시민 스스로 사업을 결정하고 예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재정권을 주는 방식이다. 국가에서 시민까지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그동안의 행정구조를 시민 중심으로 바꿔 제대로 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해 보자는 취지다.

4월 19일 세종 조치원읍 교리 북세종통합행정복지센터(조치원읍사무소) 1층 민원행정과에서 이희근(왼쪽)·김영복(가운데) 부부가 센터 공무원으로부터 여권을 건네받고 확인하고 있다. / 권순재 기자

4월 19일 세종 조치원읍 교리 북세종통합행정복지센터(조치원읍사무소) 1층 민원행정과에서 이희근(왼쪽)·김영복(가운데) 부부가 센터 공무원으로부터 여권을 건네받고 확인하고 있다. / 권순재 기자

지난 4월 19일 세종 원도심에 위치한 북세종통합행정복지센터(조치원읍사무소) 1층 민원행정과. 세종은 읍·면 단위의 원도심과 42개 중앙행정기관, 19개 국책연구기관, 세종시청 등이 위치한 동 단위의 행정중심복합도시(신도심)로 구분된다. 김영복·이희근씨 부부(78)는 “중국 여행을 갈 계획”이라며 공무원들에게 여권 발급을 문의하고 있었다.

조치원읍에 여권 등 215개 사무 위임

이 부부는 충북 청주시 오송읍에 거주하지만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조치원읍을 찾았다. 김씨는 “여권 발급을 위해 충북도청이나 청주시청으로 가려면 집에서 차로 40분, 세종시청까지는 30분이 걸리는데 읍사무소에서 여권을 발급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세종시는 외교부에 건의해 2017년 10월부터 조치원읍에서 여권사무를 대행할 수 있게 했다. 읍 단위 행정기관에서 여권업무를 취급하는 것은 조치원읍이 전국에서 처음이다. 세종시는 원도심 주민이 신도심에 위치한 세종시청에 가지 않고도 조치원읍에서 대부분의 민원을 해결할 수 있게 하기 위해 2015년 12월 조치원읍에 215개의 사무를 위임했다. 조치원읍에 위임된 사무는 여권사무부터 건축신고, 부동산 실거래 신고, 복지사무 등 대부분 주민 생활민원과 관련된 내용이다.

세종시는 일부 행정을 읍 단위에 나눠준 데 이어 주민에게 읍장 등을 뽑는 권한도 넘겼다. 지난해 7월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읍·면·동장 시민추천제를 도입했다. 읍·면·동장 시민추천제는 읍·면·동장 후보자로 나선 공무원들이 마을 운영계획 등을 밝히면 주민이 직접 평가해 최고 득점자 1명을 세종시에 추천하고, 시장이 임명하는 시스템이다. 현재 조치원읍, 전의면, 고운동 등 6곳의 읍·면·동장이 시민추천제로 임명됐다. 세종시는 현재 공무원만 읍·면·동장 후보로 나설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방형 직위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세종시는 지난해 8월 13일 주민 면접을 높은 점수로 통과한 연기군(세종의 전신) 출신의 이동환 서기관(4급)을 조치원읍장으로 임명했다. 이 서기관은 주민이 직접 뽑은 읍장답게 행정의 중심을 주민 생활불편 개선에 뒀다. 그는 주민의 요구가 많은 마을회관 환경개선사업이나 불법현수막 철거 등에 적극 나섰다.

이 서기관은 조치원읍의 현안 중 하나인 원도심 경제활성화도 고민했다. 그는 “조치원읍 경제를 살리는 게 읍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뭐라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주민과 함께 봄꽃축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조치원읍은 지난 4월 6∼7일 벚나무가 심어진 조치원역부터 조천(하천)변까지 4차선 도로의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제1회 조치원 봄꽃축제’를 열었다.

조치원읍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장덕순씨(46)는 “축제기간 편의점은 평소 매출의 2배가 올랐고, 한산했던 전통시장 주변 음식점 등도 하루 종일 손님으로 북적여 원도심 부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며 “이는 주민을 위해 고민하는 읍장이 펼친 행정의 결과물로,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4월 19일 세종 도담동 싱싱문화관 1층 회의실에서 열린 시민주권대학에서 세종지역 시민들이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왼쪽)로부터 ‘시민주권과 자치분권의 이해’에 대한 강의를 받고 있다. / 권순재 기자

4월 19일 세종 도담동 싱싱문화관 1층 회의실에서 열린 시민주권대학에서 세종지역 시민들이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왼쪽)로부터 ‘시민주권과 자치분권의 이해’에 대한 강의를 받고 있다. / 권순재 기자

세종시는 마을 입법·재정 등을 시민에게 맡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민 스스로 마을을 운용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세종시는 올해부터 주민이 마을 관련 사업을 결정해 집행할 수 있게 주민세 전액(개인분·재산분·종업원분)을 ‘자치분권 특별회계’로 운영한다. 주민세는 지자체에 주소를 둔 개인과 법인에 부과되는 지방세다. 충남도 등이 주민세 일부를 주민자치예산으로 전환한 사례는 있었지만 주민세 전액을 주민이 집행할 수 있는 예산으로 운영하는 것은 세종시가 처음이다.

세종시는 올해 자치분권 특별회계로 주민세 전액에 시비를 더해 159억원을 편성했다. 해당 예산은 소규모 주민숙원사업, 생활불편 해소, 지역문화행사, 환경개선, 주민자치사업 등 마을에 필요한 사업에 활용된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주민세를 도로포장과 같은 사회기반시설 조성 등에 사용하고 있다. 자치분권 특별회계는 읍·면·동 주민자치회에서 주민이 필요한 사업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세종시가 이행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시민참여 기본조례’도 만들어

세종시는 지난해 11월 시민의 시정 참여 권리와 의무 등을 담은 ‘시민참여 기본조례’도 만들었다. 조례는 주민이 마을 실정에 맞게 자치법규(조례·규칙)를 변경할 수 있도록 주민자치회·주민총회 등에 권한을 부여했다. 기존 자치법규의 내용 중 읍·면·동별로 상황에 맞춰 따로 정할 필요가 있는 사안에 대해 시민이 자치법규를 제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시장은 시민이 제안한 자치법규의 타당성이 인정될 경우 해당 자치법규의 제정·개정·폐지 등의 조치를 하게 된다.

조례는 세종시 주요 정책의 수립·집행·평가를 하는 과정에 시민의 의견을 구하기 위한 시민주권회의를 설치·운영하는 내용도 담았다. 또 세종시의 중요 사업에 대해 시민 300명 이상이 서명하면 토론회를 열 수 있게 했다. 예산 편성과 각종 위원회·토론회 등을 열 때 시민참여를 보장하는 한편 시민참여 활성화를 위한 사업에 지자체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조례에 담겼다.

조례에는 주민총회나 읍·면·동장 시민추천제 등 지역사회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을 만 16세 이상으로 하는 내용도 있다. 고등학생이면 의사결정을 충분히 할 수 있을뿐더러 그 목소리를 청소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세종시는 지난해 10월부터 주민 스스로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게 돕는 시민주권대학도 운영하고 있다. 주민자치 역량을 길러 주기 위한 시민주권대학에서는 이·통장, 공동주택 입주자 대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주민참여예산제에 대한 설명, 조례·규칙 발굴방법 등에 대한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염원하는 국민적 열망으로 탄생한 세종이 제대로 된 풀뿌리 민주주의까지 선도하는 전국 모범도시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세종·권순재 전국사회부 기자 sjkw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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