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을 다시 춤추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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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에서는 그의 작품에 불이 꺼졌지만 외국에서는 그를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 곳곳을 뒤져 희귀한 브라운관 TV를 구입하여 백남준의 예술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1990년 여름 요제프 보이스를 추모하는 진혼굿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백남준. /갤러리현대 제공

1990년 여름 요제프 보이스를 추모하는 진혼굿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백남준. /갤러리현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서면 백남준(1932∼2006)의 비디오아트 작품 ‘다다익선’이 우뚝 서 있다. 하지만 불이 꺼져 있다. 밖은 꽃이 만발했는데 그의 작품에서는 기괴한 침묵이 흐른다. ‘많을수록 좋다’는 뜻의 거대한 작품은 ‘많을수록 흉하다’며 관람객을 내려다보고 있다. 흡사 예술가의 혼과 열정이 굳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다익선’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1003개의 TV 브라운관 모니터로 만들었다. 1003은 개천절을 상징하는 숫자다. 세계에서 가장 큰 비디오아트 작품으로 미술관의 상징이었다. 백남준은 음악가, 미술가, 과학자, 철학자였다. 달리 말하면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는 경계를 부단히 허물었다. 그에게 텔레비전은 화폭이었고, 기술은 붓이며 물감이었다. 바람처럼 이동하며 의식의 지평을 넓혀왔고, 온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그를 행위예술가 또는 비디오아트 창시자로 부르지만 ‘환상세계 여행자’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가 남긴 많은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려면 쭈뼛거리게 된다. 그의 예술세계가 넓고 깊기 때문이다. 백남준 작품의 특징을 적확하게 집어낼 수는 없지만 ‘복합매체’와 ‘비(非)결정성’으로 파악하는 이들이 많다. 복합매체는 이종 간의 교배를 통해 탄생하고, 비결정성은 비정형으로 이를 확장하면 카오스 이론과 맞닿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연’까지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백남준은 혹시 기계에 인간의 생각을 흘려 넣으려 하지 않았을까. 그의 삶을 더듬다 보면 이런 생각도 든다. 그는 미래에 어떤 나라가 강국이 될 것인지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예측했다. 그 근거가 무척 흥미롭다.

“다음에는 무엇이 나올 것인가? 가장 강력한 통신력은 심령력이다. 자국의 목표를 위해 이 능력을 이용할 수 있는 국가는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다. 누가 22세기의 최강국이 될 것인가? 분명한 대답은 불가리아다. 불가리아는 인구 중 집시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미국도 중국도 한국도 아닌 불가리아다. 백남준은 미래는 ‘소통하는 자’들이 지배할 것이라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소통은 미래사회의 강력한 무기이고, 이는 문명과 형식을 거부하는 집시에게 건강하게 남아있다고 본 것이다. 백남준 또한 영혼이 맑고 순수했다. 그래서 행위에 어떤 제약도 없이 자유스러웠다.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김택근

김택근

1998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백남준은 백악관 만찬에 초대를 받아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그가 휠체어에서 내려 빌 클린턴 대통령 앞에 서자 바지가 흘러내렸다. 팬티도 입지 않아 알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소란이 일었을 것이다. 백남준이었기에 모두 웃음을 머금었다. 이를 본 김 대통령은 그날 해프닝을 천재예술가의 행위예술로 간주했다.

“그의 삶 자체가 초현실적 예술이었으니 그날 일도 그만의 ‘계산된 파격’이었을 것이다.” 모국에서는 그의 작품에 불이 꺼졌지만 외국에서는 그를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 곳곳을 뒤져 희귀한 브라운관 TV를 구입해 백남준의 예술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해 불을 밝혀야 한다. 어차피 영원한 것은 없다. 백남준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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