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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도 AI가 하면 다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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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을 받아내는 과정은 고도의 심리전… 현업 관계자들의 답은 “아니오”

“그래서, 시신의 나머지 부분은 일부러 다른 곳에 묻어둔 건가?”(형사)

“저기, 목이 마른데 물 좀 떠다 줘봐요.”(연쇄살인범)

연쇄살인범을 신문한 지 3시간째, 형사는 연쇄살인범의 표정에서 공기가 바뀌는 것을 직감했다. 아주 짧은 찰나, 연쇄살인범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범인이 ‘들켰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형사는 알아차렸다. 생각이 바뀌기 전에 신문을 이어가야 했다. “내가 한 질문까지만 답을 하면 내가 물 떠다 줄게. 지금 이야기 중이잖아.”

/ 일러스트 김상민

/ 일러스트 김상민

물을 떠다 줄 경우 그 아주 짧은 몇 분 사이에 연쇄살인범은 자신이 계획한 답변으로 경찰을 유도하기 위해 머리를 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연쇄살인범은 자신의 강인함, 통제력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경찰에게 ‘물을 떠다 주는’ 행위를 시킴으로써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려는 감정을 제압할 필요도 있었다. 경찰 역시 목이 탔다. 허리도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 흐름이 끊어질 경우 연쇄살인범의 약한 부분을 찾아내는 데 실패할 수 있었다. 경찰은 그가 떠드는 말 속에서 진실과 거짓, 허점을 찾았다. 또 그가 보이는 각종 비언어적 행위, 침을 갑자기 삼키거나 목을 가다듬는 순간 등을 포착해냄으로써 그가 진짜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려 했다.

매번 새 용의자 상대, 축적 데이터 없어

이런 상황은 범죄자들을 면담하는 프로파일러들에게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모습이다. 강력범죄자들, 특히 사이코패스와 같은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의 범죄자들과의 면담에서는 매번 고도의 기싸움이 요구된다. 사람을 연쇄적으로 살인하고, 시신을 유기하는 대담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범죄자에 맞서 그를 제압하고 자백을 받아내는 일련의 과정은 고도의 심리전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그렇다면 인공지능(AI)은 이 같은 범죄수사 분야에서 프로파일러 혹은 경찰·검사 및 수사관을 대체할 수 있을까. 범죄자마다 자라온 환경, 범죄를 저지를 당시의 환경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AI가 범죄자를 상대로 개인의 특징에 따라 신문을 하고, 자백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피의자가 조사실 안에서 내놓는 각종 진술 외에 비언어적 행위까지 AI가 포착해 진실 여부를 가려낼 수 있을까.

현직에 있는 대부분의 수사관계자들이 내린 답은 ‘아니오’였다. 판사와 변호사의 영역에서는 일정 정도 AI가 대체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던 사람들조차 AI가 검사·경찰의 역할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유는 경찰과 검찰은 ‘로 데이터(raw data)’를 수집하는 수사기관이라는 데 있었다.

AI가 바둑, 체스, 포커에서 인간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AI가 과거 기록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AI가 포커판에서 상대에게 ‘블러핑(속임수)’까지 가능하게 된 것 역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수집하고 학습한 데이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의 수사에는 데이터가 없다. 매번 새로운 용의자를 상대해야 한다.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판단을 내리는 판사의 업무와 차이가 여기서 생긴다.

한 수도권 지역 검찰청 차장검사의 말이다.

“재판을 식사에 빗대 본다면 판사는 검찰과 변호인 측이 차려놓은 밥상을 보고 ‘반찬이 짜다’, ‘밥이 덜 익었다’고 판단을 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간이 적당한지는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기계로도 판단가능한 영역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경찰과 검찰은 밥상에 올라온 밥이 덜 익었는지를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다. 경찰이 오늘 재래시장에 가서 뭘 사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금치를 사올 수도 있고, 콩나물을 사올 수도 있다. 고기 대신 생선을 갖고 올 수도 있다. 그러면 검사는 그 시금치에 조미료를 넣을지, 간간하게 데치기만 할지, 생선은 소금에 좀 더 절일지 말지를 결정한다. 검사로서는 경찰이 매번 어떤 반찬재료를 갖고 올지도 알 수가 없다. 수사에는 미리 축적된 데이터라는 게 없다. 수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인간의 노하우’만 있을 뿐이다. 축적된 자료를 토대로 판단을 내리는 AI가 자료가 없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거기다 AI가 경찰과 검사를 대신해 범죄 피의자를 수사하고 자백을 받아낸다? 설령 인간에 가장 가까운 형태의 기계가 등장해 조사를 벌인다고 해도 과연 인간인 피의자가 기계 앞에서 자백을 할 수 있을까. 기계가 피의자 진술의 허점을 찾고 참과 거짓을 판단내릴 수 있을까. 그건 공상과학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아닌가.”

“경찰과 검사의 역할 대신할 수 없을 것”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박사(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는 흉악범이나 연쇄살인범과 같은 범죄자들을 상대로 한 ‘프로세서’와 ‘매뉴얼’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상심리학(abnormal psychology)에서 정상인과 범죄자를 구분하는 정규분포 그래픽을 살펴보면 정상인들은 중절모 모양의 그래픽 구간 중 가장 많은 영역인 모자의 중간부분에 위치하는 반면, 범죄자들은 모자의 챙에 해당하는 양쪽 극단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범죄자들은 축적할 만한 케이스가 적고, 일반화할 데이터가 없다. 일반인이 갖고 있는 많은 행동 패턴을 토대로 범죄자를 이해하려면 맞아들어가지 않는다. 방대한 패턴과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 AI로서는 패턴에서 벗어난 범죄자를 다루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반인의 행동 패턴 데이터는 흉악범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 연쇄살인범이나 사이코패스, 대규모의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형법상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질문을 던졌을 때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육하원칙에 따라 질문을 던졌을 경우 통상의 범죄자들과 달리 답을 쉽게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타인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고립된 상황에 익숙해져 있는 흉악범으로서는 ‘어차피 내가 말해도 너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확신을 갖고 자백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때는 일반적인 범죄자를 상대로 한 수사기법이 먹혀들 수 없다.

결국 AI는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경찰과 검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한 일선 검사는 “수사기관이 수집한 각종 자료를 분석하고 코멘트까지 할 수 있는 영역까지 AI가 발전할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은 수사를 위한 하나의 보조수단일 뿐 경찰과 검사의 역할은 대신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경의 본질적인 업무는 수사 그 자체다. 현장에 뛰어들고, 시시각각 변하는 미로(수사)로 들어가 출구(기소)를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는 결국 인간이 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고 했다. 또 다른 부장검사는 “정말 예를 들어 ‘이 사람의 진술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밝혀내기 위해 통계적으로 인간이 거짓말을 할 때는 눈을 1분에 몇 번을 깜박이는데 피의자는 몇 번을 깜박였으니 이것은 거짓이다’ 식의 판단은 내릴 수 있겠지만 인간은 기계도 속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는 단적인 예로 거짓말탐지기를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거짓말탐지기는 99%의 정확도를 갖고 있음에도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다. 이유는 기계를 속이는 1%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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