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정책연구소, 노조 와해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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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노조 지부장 업무배제 지속… 제2노조원들 대거 가입으로 주도권 이동

국무총리 산하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에서 기존 노동조합(제1노조)을 와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연구소 내 비리를 폭로한 제1노조 지부장에 대한 업무배제가 있었고, 최근에는 해당 지부장에 대한 탄핵안까지 발의됐다.

국무총리 산하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공공연구노조 육아정책연구소지부 제공

국무총리 산하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공공연구노조 육아정책연구소지부 제공

연구소 기관장 차량 운전원이자 제1노조 지부장인 최홍범씨는 2017년 7월 우남희 전 소장의 비위사실을 알린 공익신고자다. 최 지부장은 당시 우 전 소장이 관용차를 교회(120번), 마사지숍(10번), 골프연습장(6번) 등 개인 업무에 사용한 일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업무시간에 관용차를 타고 동창 모임에 간 일도 있었다.

감사 결과 최 지부장의 제보는 모두 사실이었다. 나아가 우 전 소장은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의 자문기관으로 연구소 이름을 올렸다. 국무조정실은 ▲연구소 명칭 사적 활용 ▲공용차량 사적 사용 ▲근무시간에 개인행사 참여 ▲부적절한 연구원 특별채용 등을 확인하고 우 전 소장을 징계했다.

새 소장 부임 후에도 달라지지 않아

하지만 공익신고자인 최 지부장의 일상도 순탄치 않았다. 최 지부장은 소장이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심리적 불편 등 부적절함’을 느낀다는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됐고, 이후에는 징계위원회 출석통보를 받았다. 그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해당 징계위가 ‘보복성’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제1노조는 우 전 소장의 임기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새로운 소장이 오면 상황이 바뀔 것으로 생각했다. 2017년 12월 백선희 서울신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새로운 소장으로 선임되자 기대감은 커졌다. 백 소장은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후보에 복지국가위원 등으로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백 소장이 취임한 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최 지부장은 백 소장 취임 이후에도 한동안 본인의 업무에 복귀하지 못했다. 기관장 차량은 대리기사가 운전했다. 이에 백 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사분이 노조를 만드셨어요. 기사가 지부장이에요. 사용자 대표와 노동자 대표가 한 차에 타게 생긴 거잖아요”라고 불편함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백 소장의 주장에 일리가 있지만 업무배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박공식 이팝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업무상 직위와 노조원으로서 자격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면 교섭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며 “업무를 이유로 지부장 자격을 문제 삼거나 업무에서 배제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지적했다.

이경석 노동분쟁해결센터 노무사도 “회사 대표가 노조 지부장 직책을 맡고 있는 운전사와 같이 움직이는 게 부담스럽다면 교섭을 통해 타임오프를 줘서 노동조합 전임업무를 시키거나 다른 차량을 운전할 수 있도록 전보배치를 하면 된다”며 “업무가 없다시피 한 건 사실상 대기발령”이라고 말했다.

내부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최 지부장은 지난 1월 언론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보했다. 언론 보도가 나온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인 지난 2월 26일, 기업노조(제2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대거 기업노조를 탈퇴하고 제1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공연구노조에 가입신청을 했다. 이들은 총 12명으로 제1노조 조합원(5명)의 두 배가 넘는다.

직원들이 대거 노조에 가입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복수노조가 허용된 2011년 이후, 복수노조가 기존 노조를 와해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는 한두 건이 아니다. 규모가 큰 복수노조(주로 기업노조)를 만들어 교섭권을 가져가 기존 노조를 무력화시키거나, 노조를 통합한 다음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을 탈퇴하는 방식 등이다.

게다가 육아정책연구소의 경우 기업노조에서 탈퇴하고 제1노조에 가입신청을 한 이들 상당수가 보직자다. 연구소 팀장은 총 10명인데 이들 중 4명이 노조에 가입을 신청했다. 여기에는 총무정보팀장, 연구기획평가팀장이 포함돼 있으며 심지어 지난해 인사팀장 지위에서 사측 교섭위원을 맡아 노조와 대립한 사람도 있다.

제1노조 소속인 박창현 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우리가 2017년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2018년에 사측과 교섭을 진행했다. 당시 교섭상황을 알리면서 노동조합에 가입하라고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며 “지금까지 가입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 왜 하필 이 시점에서 단체로 가입신청을 했는지 모르겠다. 황당하다”고 말했다.

새 조합원들 ‘집행부 불신임’ 제출

반면 기업노조 위원장이었다가 제1노조에 가입한 최효미 연구위원은 “상급단체가 없는 기업노조 12명으로는 회사와 교섭을 하기 어려웠다. 상급단체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해서 가입한 것”이라며 “하지만 기존 노조는 새로운 조합원들의 가입을 막고 우리가 가입한 이후에도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답답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련의 상황을 두고 자칫하면 노조 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보직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하지만 총무나 인사, 노무 관련자는 가입할 수 없다”며 “그런 사람들이 노조에 가입했다면 기존 소수 노조를 탄압하는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석 노무사는 “지금 상황은 공익신고를 한 노조 지부장과 소수노조가 힘들게 싸우고 있는 와중에 상급단체인 공공연구노조가 찬물을 뿌린 격”이라며 “만약 이로 인해 기존 노조가 와해되는 결과가 초래된다면, 그리고 이 과정에 사용자가 개입했다면 중대하고 악질적인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제1노조에 가입한 조합원 중 10명은 ‘최홍범 지부장 탄핵 및 집행부 불신임 요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최 지부장이 새로 가입한 조합원들을 인정하지 않고 이들을 향해 “우리 노조를 와해시킬 의도가 의심된다”는 발언을 하는 등 정상적인 노조 운영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이유다.

당사자인 최홍범 지부장은 “연구소 입장에서 내가 탄핵되면 여러 측면에서 좋다. 소장 차를 운전하는 새로운 운전원을 뽑을 수 있고 노조 지부장 자리도 공석이 된다. 눈엣가시였던 공익신고자도 없어진다”며 “공익신고 당시 한 번도 도와주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노조에 가입하니 의심할 수밖에 없다. 주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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