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5G 축포 ‘소비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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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타이틀에 급급 저렴하고 안정적인 서비스는 포기

지난 4월 3일 밤 11시. 국내 이동통신 3사가 5G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초 5일로 예정됐던 상용화 일정을 앞당긴 것이다. 한밤중 개통은 경쟁사인 미국 버라이즌이 상용화 서비스를 앞당길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이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통사와 삼성전자를 소집해 서둘러 5G 상용화를 추진했다.

이동통신사 직원이 서울 명동의 한 빌딩 옥상에서 5G 기지국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SK텔레콤 제공

이동통신사 직원이 서울 명동의 한 빌딩 옥상에서 5G 기지국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SK텔레콤 제공

이번 ‘기습 개통’으로 세계 최초 상용화 타이틀은 대한민국이 쥐게 됐다. 모처럼 정부와 이통사, 단말기 제작사가 밀어주고 끌어주는 민·관 협력 모델이 5G로 연출된 것이다. 4월 8일에는 5G 세계 최초 상용화를 자축하는 민·관 행사도 마련됐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민·관이 합심하여 달성한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통해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정보통신 최강국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하게 됐다”고 말했다.

민·관이 판을 벌인 5G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이 있다. 가계통신비 부담을 호소해온 소비자들이다. 국내 통신소비자들은 새로운 통신서비스를 접할 때마다 비싼 통신비를 부담해 왔다. 2G에서 3G로 진입하면서 기본요금(정액요금)이 3배 올랐고, 4G LTE 때도 마찬가지였다. 5G 시대, 소비자들은 다시 높은 요금 고지서를 받아야 할 처지다. 통신3사는 일제히 고가 요금제에 혜택을 몰아넣은 요금제를 내놨다. 요금제 구간별 데이터 격차는 여전히 컸다. 반면 5G 커버리지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부 도심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5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가져오는 대신 저렴하고 안정적인 5G 서비스를 포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통3사가 만든 5G요금제는 5만원대부터 출발한다. 가장 저렴한 요금은 월 5만5000원으로 LTE 최저요금 구간보다 2만원 이상 비싸다. 그나마 5만원대 요금제로는 5G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기 어렵다. 통신사들이 5만원대 요금 구간에 할당한 데이터는 8기가바이트(GB)다.(LG 유플러스는 9GB) 5G 대표 콘텐츠인 4K 초고화질(UHD) 영상의 경우 1시간을 시청해도 12GB가 소진된다. 결국 5G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소비자들은 150GB 이상을 주는 7만5000원 요금제(SK텔레콤)나 8만원대 무제한 요금제(KT)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가격 차이는 3만원 정도인데 데이터는 8GB에서 무제한으로 바뀌는 셈이다.

미국 경쟁사 의식 한밤중 ‘기습 개통’

고가 요금제에 혜택과 데이터를 얹어주는 ‘토끼몰이’ 전략은 이통사들이 LTE 서비스 시기에도 즐겨 쓰던 방식이다. LTE의 경우 3만3000원대 저가 요금제에 할당된 기본 데이터 제공량은 300MB로 6만6000원대 74GB와 252배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데이터 중심 요금제 가입자 가운데 6만원대 이상 비중은 2015년 28%에서 42.3%(2017년 기준)로 증가했다.

비싼 단말기도 부담이다. 삼성 갤럭시S10 5G 모델의 출고가는 155만6500원이다(512GB). 같은 기종인 갤럭시S10 LTE 모델보다 25만원 정도 비싸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장 콘텐츠 소비를 많이 하고 5G 서비스 이용 욕구가 강한 세대는 20대”라며 “20대는 비싼 통신비를 지불하면서 5G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결국 5G를 끌고 갈 세대에게 비용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통신비 인하에 공을 들여왔다. 기본료 폐지와 보편요금제 도입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선택할인요금제의 할인폭을 25%로 높이고 취약계층 요금 감면을 확대하는 등 성과를 냈다. 하지만 5G 상용화와 함께 고가 요금제 논란이 반복되면서 그간의 성과도 퇴색되고 있다.

정부는 고가 요금제 논란을 우려해 SK텔레콤이 짜온 요금제에 대한 인가를 한 차례 반려하기도 했다. 당시 SK텔레콤은 중·저가 요금제 없이 7만원대부터 시작되는 요금제를 신청했다. 현행법상 이통사 가운제 시장지배사업자인 SK텔레콤은 요금제 출시 전에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한다.

5G 체험을 위해 준비된 ‘5G버스’에서 모델들이 시연을 하고 있다. / 우철훈 기자

5G 체험을 위해 준비된 ‘5G버스’에서 모델들이 시연을 하고 있다. / 우철훈 기자

인가가 반려되자 업계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해 5G 상용화를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 규제가 세계 최초 5G 상용화에 제동을 걸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당시 과기정통부는 “세계 최초 5G 상용화 서비스 개시에 지장이 없도록, SK텔레콤이 이용약관을 수정해 다시 신청할 경우 관련 절차를 최대한 빠르게 진행할 방침”이라고 해명했다.

정부의 공언대로였다. 지난 3월 25일 SK텔레콤은 5만5000원 요금 구간을 신설해 요금제를 다시 신청했고, 신청 하루 만에 통과됐다. 인가 여부를 심의하는 이용약관심의자문위원회에서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변수가 되지는 못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표결까지 하면서 찬반 격론이 벌어졌다”며 “하지만 정부가 5G 상용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채근하는 통에 반대하는 위원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통사, 데이터 차별로 고가 요금 강요

이통사들은 설비투자비를 감안하면 초창기 요금 수준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데이터 사용량이 많은 이른바 ‘헤비유저’를 겨냥한 고가 요금제가 나온 뒤 시장이 자리잡고 나면 저렴한 요금제가 출시된다는 얘기다.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 활동을 했던 변정욱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 교수는 “처음 네트워크가 구축됐을 때는 구조적 특성 때문에 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통신서비스의 개념이 바뀐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요금만 놓고 예전보다 비싸다고 지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5G 서비스의 대중화가 이뤄지면 통신요금 부담이 줄어들까. LTE가 시장에서 자리잡은 뒤 요금제는 다양해졌다. 2015년에도 소비자들은 3만원대 요금제를 고를 수 있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아통사들은 2015년부터 3년 동안 최저가 요금제 데이터 용량을 300MB로 고정시켰다. 2018년 기준 평균 데이터 사용량이 6.81GB임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고용량 데이터를 제공하는 고가 요금제를 택할 수밖에 없다. 낮은 구간의 요금제 출시가 통신비 부담을 경감하는 쪽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다.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는 “이통사들은 LTE 출시 이후 투자금에 대한 회수가 이뤄졌음에도 그에 걸맞은 요금 인하는 미미했다”며 “5G에 대한 설비투자비를 LTE 고객에게 비싼 요금을 매겨서 뽑는 현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통신시장에서 소비자들은 요금제를 비롯한 통신 서비스 관련 선택권을 사실상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3G에서 LTE로 시장이 바뀔 때 통신업계는 상대적으로 요금이 저렴한 3G를 배척하고 소비자들에게 LTE 가입을 강요했다. 대리점에서는 3G 단말기가 없다며 가입을 받지 않았다. 단말기 제조사들도 3G폰 생산을 중단하거나 축소했다. LTE에서 5G로 통신시장이 옮겨가는 지금도 비슷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민생팀장은 “LTE가 처음 나올 때도 3G 쓰겠다는 소비자들이 있었지만 통신사들이 의도적으로 3G 시장을 축소해 선택권을 빼앗겼다”며 “이통사들은 주파수라는 공공재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를 손에 쥐고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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