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부작용 셧다운제를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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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여성가족부는 ‘심야시간대 인터넷 게임의 제공시간 제한대상 게임물 범위’를 고시했다. 이번 고시를 통해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시간 PC 온라인게임과 일부 콘솔게임 플레이가 금지되는 게임물의 범위가 2021년 5월 19일까지 정해진다. 벌써 8년째 시행되고 있는 이 법은 익숙해질 법도 한데 나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당혹스럽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성공할 수도 없는 제도일 뿐 아니라, 만에 하나 성공하더라도 매우 나쁜 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이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 2018’ 행사장에서 배틀그라운드와 펍지 부스를 구경하고 있다./경향DB

관람객들이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 2018’ 행사장에서 배틀그라운드와 펍지 부스를 구경하고 있다./경향DB

셧다운제는 허점이 너무 많다. 제도치고 너무 엉성하다. 아이들이 하는 게임은 PC 온라인게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바일게임은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스팀 같은 외국계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는 게임은 해당되지 않는다. 콘솔게임도 예외다. 마치 문이 여러 개 달린 방의 문 중 하나만 잠그고 방문을 모두 폐쇄했다고 하는 것과 다름 없다. 누가 봐도 이건 코미디다. 이걸 시행하는 정부만 우스워진다는 뜻이다. 국가의 권위도, 공권력에 대한 신뢰도 잃게 된다. 그것도 미래의 주역 청소년들에게 말이다.

설령 통제에 성공한다손치더라도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된다. 특히 심리적인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우선 금지를 통해 자라난 아이들의 내면은 죄의식이 자리잡게 된다. 금지는 전형적인 처벌이다. 자유를 금지하는 것이 바로 감옥이고, 잘못했을 때 생각하는 방에 들어가는 것 역시 금지의 일종이다. 그런데 이런 금지를 왜 당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금지가 일상화되면 내면에 죄책감도 함께 커지게 된다. 새로운 상황이나 선택의 순간에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또 잘못을 할까봐 두려움이 먼저 생기는 것이다. 창의성과 적극적인 자세가 사라진다. 무기력해진 청소년이 탄생하는 것이다.

금지에 오랫동안 노출된 아이들은 자신에 대한 신뢰도 잃는다. 자기를 못믿고 금지를 시행하는 어른들의 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냥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착한 아이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도덕적 판단능력이 매우 떨어진다. 이것이 도덕적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피해가 가는지,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성실하게 수행해 시킨 이에게 칭찬을 듣고자 하는 동기가 강화된다. 이들이 공직에 진출하면 영혼 없는 관료 역할을 누구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부모와 자녀 혹은 교사와 학생 간에 게임으로 갈등을 겪는 곳은 지역과 국가를 넘어 전지구적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셧다운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동아시아 지역의 극소수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선진국 모임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국한하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다른 선진국이 셧다운제도를 실시하지 않는 이유는 앞서 소개한 부작용이 너무 끔찍하기 때문이다. 이제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셧다운제를 통해 자란 우리나라 청소년과 셧다운제가 없는 OECD 국가 청소년들이 자라서 세계 무대에서 만났을 때의 경쟁력을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 셧다운제를 멈추어야 한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말이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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