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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고등정신능력 함께 제대로 가르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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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틀 만든 이중현 전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

혁신학교의 출발은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수업 대신 잠을 택했다. 학교는 방치했다. 수능시험에서 원하는 점수를 얻지 못한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다. 모두가 ‘교육이 문제’라고 했지만 바꾸려는 노력은 없었다. 2009년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당시 경기도 일부 낙후지역 13개 학교를 시작으로 혁신 시범학교를 만들었다. 학생이 잠들지 않는 학교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대한민국 사회는 혁신학교를 ‘전교조가 점령한 학교’ ‘공부하지 않는 학교’, 심지어는 ‘빨갱이 학교’라고까지 폄훼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3월 27일 김상곤 전 교육감과 함께 혁신학교의 틀을 만들었던 이중현 전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63)을 만나 혁신학교의 나아갈 길, 교육의 나아갈 길을 물었다. 그는 30여년간 교직생활을 한 교사이기도 하다.

이중현 전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이 3월 27일 경기도 구리의 한 커피숍에서 혁신학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이중현 전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이 3월 27일 경기도 구리의 한 커피숍에서 혁신학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혁신학교에 대한 거부감을 어떻게 바라보나.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혁신학교에 대한 오해가 있다. 강남 등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혁신학교를 거부하는 집단적 움직임은 혁신학교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 오해를 해소하고 혁신학교를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결국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이마저도 일부 학부모들은 시·도교육감의 성향에 따른 일방적 주장이라고 오해한다. 그런데 혁신학교는 ‘혁신’이라는 단어가 붙었을 뿐 서구의 보편적 교육,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시도일 뿐이다. ‘우리 지역에도 혁신학교 지정을 해달라’는 학부모도 동일하게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학교가 지난 10년간 확산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강남의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혁신학교를 다니면 성적이 떨어진다’ ‘노는 학교다’라고 왜곡된 주장을 하고 모두가 동조하면서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도 근원은 있다. 사교육과 이해관계가 있는 분들이다. 또 진보 교육감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학부모들이다. 그런 커넥션이 함께 작동하면서 반대의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혁신학교가 ‘공부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말이 정설처럼 굳어지고 있지 않나.

“혁신학교가 학력이 떨어지는 학교인지, 공부하지 않는 학교인지를 먼저 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일부 야당 의원은 혁신학교가 일반학교에 비해 기초학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혁신학교는 지난 10년간 농어촌지역, 낙후지역, 폐교 직전의 학교를 중심으로 지정됐다. 일반학교와 혁신학교 간의 학력 격차가 아닌, 도·농 간의 격차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이다. 동일한 지역을 기준으로 평가된 결과가 아니다. 다시 공부란 무엇인지를 짚어보자. 우리 세대의 공부, 지금 학부모 세대의 공부란 사지선다형·오지선다형 문제의 답을 많이 맞춰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었다. 그것이 고등학교 진학과 대학 진학을 결정지었고, 나아가 내 삶을 결정짓는 것이었지만 지금 사회는 다르다. 문제풀이, 정답 맞히기가 학력의 전부냐고 물었을 때 혁신학교를 반대하는 의원조차도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전세계적인 흐름으로 볼 때 굉장히 획일적이고 뒤떨어져 있다. 과거 학력고사에서 탈피해 새롭게 시도한 게 통합교과 형태의 수학능력시험인데 이 역시 실패한 제도가 됐다. 수능은 암기식 문제풀이에서 벗어나 통합적인 사고를 통한 문제 해결능력을 기르기 위해 만든 제도였다. 그러나 당초 목표와 달리 수능도 암기 위주로 변질됐다.”

-결국 입시 위주의 교육, 서열화된 교육에서는 어떠한 제도도 제대로 이식되기 어려워 보인다.

“혁신학교를 반대하는 사람이든 찬성하는 사람이든 단순히 교과서만 달달 외워 문제풀이를 잘하는 것만이 공부냐고 물었을 때 그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수능을 치러야 하고, 대학 진학이나 직장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인데 우리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것이다. 부모들도 내 아이의 창의력, 재능을 살려주고 싶지만 그건 (대학 입학 후) 나중의 문제이고, 당장은 애들이 수능을 보지 않느냐고 한다. 그렇다면 전체 통계로 이야기를 해보자. 당장은 수능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 대부분은 수능으로 대학에 진학해야 할 지역의 사람들이다. 실제 강남은 많은 아이들이 수능으로 대학을 간다. 특목고, 자사고를 비롯해 강남의 많은 아이들이 그렇다. 왜냐하면 특목고, 자사고는 상대평가다. 일반고에 진학했으면 전교 1~2등, 반에서 1등을 했을 아이가 특목고, 자사고에 가면 200등, 300등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신으로는 대학을 못간다. 그러니 그 아이들이 매달리는 게 뭐냐. 수능이 된다.”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사건 이후 수능이 가장 공정한 경쟁이라는 주장도 나오지 않았나.

“지난해 학생부에 기록하는 수상도 교내 수상으로 제한하고, 3년간 수상할 수 있는 횟수도 제한했다. 사교육을 조장한다고 지적받은 소논문도 반영하지 않도록 바꿨다. 수상 경력을 조작하거나 일부를 위해 몰아주기 식으로 하는 나쁜 관행은 제어하면 된다. 미국 하버드대나 버클리대는 SAT(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 만점을 받은 학생도 떨어진다. 대한민국에서는 수능 만점을 받은 학생이 ‘SKY대(서울·고려·연세대)’에 떨어지면 난리가 날 것이다. 그 성적만이 한 학생을 평가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학교생활, 각종 활동을 종합하고, 인터뷰를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

-교사가 공정한 평가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도 강하지 않나.

“이렇게 보자. 한 아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부모와 교사다. 아이는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한 아이가 어느 교과에 어려움이 있고,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를 교사보다 더 잘 아는 부모는 드물다. 내 아이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교사 말고 누가 있나. 그 불신의 근거는 단순히 ‘학생부’에 대한 불신이 아니다. 어떻게든 내 자식은 좋은 대학을 가야 하는데,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내신이 좋아야 하고, 그렇다면 그 내신이 정말 공정할까 하는 의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학교의 역량과는 관계없이 개인의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수능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버드대 입학을 위해서는 SAT 성적 이외에 학교에서 제출한 내신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하버드 입학은 다 불공정한 입학인가. 그러나 부모들만을 탓할 수는 없다. 학부모가 교육을 불신하게 된 저간의 사정에는 우리 교육에 대한 비전 제시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이 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 이런 것이고, 현재는 이 정도의 수준인데 앞으로 단계적으로 이렇게 나아가겠다는 로드맵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으니 결국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획일적인 수능이 다양한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제도라고 단언할 수 있나.”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온다고 생각하니 공정하다고 보는 게 아닐까.

“혹시 기자분은 지난 10년간 교육부로부터 ‘혁신학교 확대를 어떤 방식으로 하겠다’는 발표를 들어본 적이 있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교육의 당사자인 학부모를 설득할 것인가. 이건 우리 교육이 자초한 일이다.”

-혁신학교를 못받아들이는 것도 결국 설득의 부재가 아닌가.

“혁신학교는 학력이 떨어지는 학교, 공부 안 하는 학교가 절대 아니다. 전세계 어떤 학교가 학력을 떨어뜨리려고 교육을 하나. 그런데 지금까지 기성세대들이 말하는 그 ‘학력’과 앞으로의 세대들이 배워나가야 할 ‘학력’의 개념 차이는 분명 있다. 우리 아이들이 습득하는 지식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하루 15시간씩 공부한다. 그것도 분명 학력이다. 그런데 고등정신능력은 결핍돼 있다. 비판적 사고력, 문제 해결력, 분석력, 종합력이 굉장히 약하다. 또 수능 점수만 높으면 되니까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하지 않는다. 정의적 능력 결핍이다. 이 같은 고등정신능력은 시험문제로 낼 수 없지 않나. 그래서 교육과정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라고 해도 그동안 가르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의 학력은 지식기능 중심의 학력이고, 같이 가야 할 고등정신능력과 정의적 능력은 결핍된 채 머문 것이다. 이는 곧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적 자양분의 결핍이다. 기자분도 잘 아실 거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 국내 기자들은 질문을 못했다. 정말 부끄럽지 않나. 그게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기자들의 현실이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혁신학교는 그렇다면 결핍됐던 ‘학력’을 함께 키우는 학교로 정리할 수 있을까.

“혁신학교는 무너진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학교이지 거창하고 혁명적인 학교가 아니다. 이제 아이들은 각자가 가진 재능을 키워 재능 중심으로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탐색할 수 있는 인간으로 키워야 한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 그 아이는 밤을 새서라도 소설을 읽고 창작할 수 있도록 학교가 돕는 것이 교육이다. 소설가가 돼야 할 아이에게 수능 점수부터 올려놓으라고 하는 게 공정한 것인가. 단순히 교실에 앉아 지식만 흡수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현장을 보고, 기록하고, 토론을 거쳐 자신의 생각을 갖추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공부다. 그걸 하겠다는 게 혁신학교다. 학교 교육이 갖고 있는 고질적 병폐는 진보·보수를 떠나 모두가 인식하는 문제다. 모든 학력을 종합적으로 제대로 기르자는 게 혁신학교다. 공부를 안 가르치겠다는 게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이나 있었다.

“부모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아이는 수능으로 대학을 가야 하는데 ‘혁신학교는 수능에 도움이 되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교육업체 입장에서도 혁신학교는 답이 없다. 혁신학교의 프로그램은 사교육에서 서포트가 안 된다. 통합적 프로젝트를 하니 학원에서는 손을 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혁신학교를 가면 우리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는 말을 만들어 부채질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능 선발 비중이 30%로 확대됐다.”

-30% 확대는 공론화위원회라는 대표기구에서 내린 선택이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학교 밖에 있다. 우리나라는 학력 간 임금격차가 큰 나라다. 많은 학부모들이 SKY대에 집착하고, 자기 자식의 진학을 위해 온 살림을 바쳐 교육에 비용을 지출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학력 간 임금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SKY 출신은 이미 좋은 직장을 60%는 보장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학 졸업 후 일류회사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을 때 그게 곧 신분상승이라는 것을 학부모들은 너무 잘 안다. 대졸임금을 100으로 하면 고졸임금은 60 수준이다. 그걸 경험으로 부모들은 너무 잘 아는 거다. SKY에 올인하는 이유 중 하나가 SKY에 가야만 내 자식의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인식을 깨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 자체가 우리 사회는 미비하다. 그래서 대학입시가 이렇게 치열하고,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더 좋은 점수를 얻으려 하고, 더 많은 학원을 다니고, 어떻게든 친구들보다 학생부 기록을 더 잘 남기려 하는 것이다. 국가가 우리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교육도 거기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수 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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