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지진 원인 밝혀졌지만 주민들의 공포는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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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조사 발표 후 찾은 포항, “정부가 정신적 피해까지 살펴봐주길”

2017년 11월 규모 5.4의 지진이 경북 포항 일대를 할퀴고 간 지도 1년 5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포항지열발전이 지진의 원인이 됐다는 가설은 지난 3월 20일 정부의 조사 결과 발표로 ‘정설’이 됐다. 지열발전을 위해 땅에 시추공을 뚫어 고압의 물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단층을 자극했고, 물이 들어간 단층은 마찰력이 줄어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상태로 변했다는 것이다. 시추공에 고압의 물을 주입하는 세 번째 ‘수리자극’ 작업이 종료된 시점에 규모 3.1의 지진이 났지만 작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자극이 임계치에 있던 단층을 활성화시켜 지진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자연재해보다 인재에 가깝다는 것이다.

포항지진이 발생한지 1년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한 한미장관맨션 이재민 약 40여명이 3월 26일 임시구호소인 흥해실내체육관에 머물고 있다. 밤 10시 소등한 이후 텐트 속 주민들이 켠 불빛만 새어나오고 있다. 이재민들은 70세 이상 고령자들이 많아 이주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김정근 선임기자

포항지진이 발생한지 1년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한 한미장관맨션 이재민 약 40여명이 3월 26일 임시구호소인 흥해실내체육관에 머물고 있다. 밤 10시 소등한 이후 텐트 속 주민들이 켠 불빛만 새어나오고 있다. 이재민들은 70세 이상 고령자들이 많아 이주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김정근 선임기자

지진의 원인은 밝혀졌지만 아직 주민들은 지진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진이 남긴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지난 3월 26일 찾은 포항에서 지진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메우고 세워 멀끔해진 안쪽으로 갈라지고 깨진 곳이 많았다.

“기어서 말고 서서 집에 들어가게 해달라”

포항시 흥해읍 삼도미래아파트에 사는 주민 김선령씨(67)는 “처음엔 몰랐는데 살림을 하면서 집 안 구석구석을 보니 바닥과 옆벽, 화장실에 실금이 다 있다. 흥해 쪽만이 아니라 포항시 전체가 대부분 그렇다”고 말했다. 지진 이후에는 한동안 옷을 다 입은 채 손전등과 세면도구를 가방에 넣어놓고 언제든 대피가 가능하도록 준비한 상태에서 자야 했다. 주변 사람들의 얘기로는 규모 5.4와 같은 지진이 다시 오면 무너질 거라고 했다. 불안감에 거저 주다시피 집을 팔고 간 사람도 많고, 손해가 말도 못할 지경이라고 했다.

김씨를 만난 곳은 포항육거리에 있는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범대본) 사무실이다. 이곳에서는 포항지진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보상을 위한 시민참여 소송을 접수받고 있다. 20평이 채 안되는 공간에 20~30명이 의자에 앉아 서류 접수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이진석 범대본 공동대표가 전화 응대를 하고 있었다.

“네 사람이 가족관계증명서 안에 다 나오죠? 통장은 각 개인 것이어야 합니다. 없으면 개설하시고, 주민등록증도 지참하시고요.”

이 대표는 하루에 200~300명 정도의 시민들이 찾는데 자원봉사자 7명이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일해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부조사연구단 발표 이후 현재까지 시민 3300여명이 소송인단에 참여의사를 밝혔다. 이 대표는 20만명 이상이 목표라고 했다. 퇴임 목사인 이 대표는 “지진피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 여전히 트라우마 속에서 살고 있다”며 “정부가 정신적 피해까지 살펴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범대본의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맡은 법무법인 서울센트럴은 승소를 자신했다. 이곳 관계자는 “유발지진이든 촉발지진이든 법적으로 인과관계만 입증되면 된다”며 “지금은 인재라는 게 확정됐지만 일부 승소나 입증이 쉽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조금이라도 더 보상받을 수 있도록 (포항지열발전에 참여한) 포스코 공해소송까지 함께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송 결과를 기다리기에는 당장 버티기 어려운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피해가 심했던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이재민들이다. 한미장관맨션에서는 비가 오면 어디선가 물이 샌다. 천장에서 주르륵 떨어지는 빗물을 양동이로 받아야 할 정도다. 겨울에는 칼바람이 벌어진 창문 틈 사이로 들이쳤다. 지하층엔 물이 점점 차올랐다. 벽에서 조그맣게라도 갈라지는 소리가 나면 불안해 잠을 잘 수가 없다.

“시민들이 여기까지 이끌어”

견디다 못한 이들이 흥해실내체육관으로 거처를 옮겨 지내고 있다. 지진 때 대피소로 몰렸든 시민들은 줄을 서서 차례로 텐트를 배정받았다.

체육관에는 바닥과 2층을 합해 200여개의 텐트가 있다. 텐트는 가로·세로가 1.5m가량 되는 좁은 공간이다. 윤숙경씨(가명·64)는 “키 작은 사람은 겨우 자는데 대부분 발이나 머리를 밖에 내놓고 잔다”고 했다. 윤씨의 텐트 안쪽엔 빨래들이 널려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전국재해구호협회가 이재민들에게 준 하얀색 안전모도 보인다. 지진이 다시 찾아올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보호장비다.

체육관 바닥에 깔린 장판 외에 텐트 안에 있는 거라고는 돗자리와 매트리스뿐이라 바닥의 한기를 막기엔 부족해 보였다. 화재를 막기 위해 전기를 쓸 수 없다. 1인당 2개씩 지급하는 핫팩을 끼고 자거나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데워서 안는 것 외에는 온기를 느낄 방법이 없다. 생필품을 보관할 공간도 마땅치 않아 종이박스 한쪽을 잘라 쌓아 서랍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작은 화분을 두고 있는 이재민도 눈에 띄었다.

밤 10시면 소등을 해 개인시간을 갖기란 불가능하다. 책도 없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주부 이혜은씨(가명)는 “여기서 아이들은 못지낸다”며 “어른들도 면역력이 떨어져서 대상포진에 걸린 분들이 많다”고 했다.

대피소에 있는 이재민 10명 중 6~7명은 60대 중반 이상의 노년층이다. 체육관에서 만난 정정희 할머니(79)는 이유없이 손이 저리고 마비증상이 온다고 했다. “우리가 텐트 안에서 살면서 온갖 병을 다 얻고 있어요. 사람이 집 같은 곳에서 안전하게 발 디디고 서서 들어오고 나가야 하는데 여기서 기어 들어가고 나가고, 하루이틀도 아니고 1년 5개월이나 있는 게 말이 됩니까.”

정 할머니는 “지열발전으로 인한 인재로 밝혀졌으니 정부에서 책임을 지고 대책을 마련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상보다는 전세비를 지원해 안전한 곳으로 이주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이 80에 잘 먹고 잘 살아도 고통스러운데 여기서 1년 넘도록 기어 들어오고 나오고,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아파요. 우리에겐 (남은) 세월이 없잖아요. 하루가 너무 귀중한데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는 게….”

옆에 있던 김자라 할머니(75)도 거들었다. “젊은 사람은 이게 계기도 될 수 있고, 세월이 많이 남았으니 재개발을 하면 다시 들어와 살 수 있지만 우린 한시가 급해. 이주를 시켜서 조금이라도 편한 곳에 살게 해달라. 다만 얼마 안 남은 세월이라도.”

한미장관맨션의 전체 240가구 중 체육관에서 지내는 이재민은 91가구 208명이다. 하지만 매일 텐트에서 잠을 자긴 힘들어서 친척집 등에서 머물기도 한다. 평상시 머무는 이재민들은 40~50명 정도다. 가나다라 4개동 가운데 상태가 그나마 괜찮은 다동에는 아직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들 중에는 지팡이를 짚을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 장애가 있는 분들도 있어 위험에 더 취약하다.

가동 1층에 살던 이혜은씨도 몇 달간 대피소 생활을 하다 지금은 다동에 사는 친정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이씨는 “(규모) 5.4 지진 때보다 (2018년 2월 11일) 4.6일 때 피해가 더 심했다”며 “빗물이 콸콸 쏟아지는데 어디서 새는지도 모르고, 지금은 더 벌어지고 엉망이 됐다”고 말했다. 다동의 천장도 비는 샌다고 했다.

김홍제 한미장관맨션 지진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3월 27일 한미장관맨션의 한 빈 집에서 지진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아파트 곳곳이 갈라져 비가 새고, 전기와 가스가 끊긴 집들이 많다.(사진 위) 지진피해로 인한 정신적 피해보상을 받기 위한 집단 소송에 참여하려는 포항시민들이 3월 26일 포항시 북구 포항육거리 부근의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 사무실에서 소송 서류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 김정근 선임기자

김홍제 한미장관맨션 지진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3월 27일 한미장관맨션의 한 빈 집에서 지진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아파트 곳곳이 갈라져 비가 새고, 전기와 가스가 끊긴 집들이 많다.(사진 위) 지진피해로 인한 정신적 피해보상을 받기 위한 집단 소송에 참여하려는 포항시민들이 3월 26일 포항시 북구 포항육거리 부근의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 사무실에서 소송 서류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 김정근 선임기자

이재민들은 특히 포항시에 상당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이곳 주민들은 시가 진행한 건물 안전점검이 부실했다고 주장한다. 한미장관맨션은 지진 진앙지 바로 아래쪽이라 피해가 극심했는데 내력벽은 온전하다는 이유로 모두 ‘소파(小破)’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3월 27일 실제 살펴본 맨션 내부는 곳곳이 갈라졌고, 석고벽이 물을 먹고 떨어져 나가 사람이 살긴 어려워 보였다. 곰팡이도 여기저기 피어올랐다. 한때 따뜻한 안식처였을 집은 온기를 잃었다. 누전이 잦다고 했는데 때마침 한전에서 계량기를 고치러 오기도 했다. 보일러 배관이 망가져 집에서 온전한 건 수도배관뿐이라고 하소연한 주민도 있다. 이주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전파(全破)’ 판정을 받은 곳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지진도시 오명 벗어 다행”

이곳 주민들은 시에서 받은 안전점검이 현실에 맞지 않다고 보고, 포항시를 상대로 ‘소파’를 ‘전파’로 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전파로 판정받을 경우 전세금을 저리로 지원받아 이주할 수 있다.

포항시가 주민들의 동의 없이 몇 차례 대피소를 폐쇄하려 했던 것도 반발을 샀다. 시는 지난해 2월 초 이재민들이 서울로 상경집회를 갔을 때 일부 텐트를 철거하기도 했다. 때마침 그 달 11일 4.6의 여진이 발생해 체육관을 찾는 이재민이 늘었는데도 텐트 배정이 어렵다고 돌려보냈다. 포항시는 운영비용 부담을 이유로 들었으나 이재민들은 주거안정을 위해 필요한 경우 6개월 이후에도 대피소를 연장운영할 수 있도록 한 재난구호법에도 맞지 않는 조치였다고 반발했다. 김홍제 한미장관맨션 지진대책위 공동대표는 “포항시가 지금의 사태에 대해 최소한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하는데 신뢰를 주는 행정을 하지는 않고 오히려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장관맨션 이재민을 비롯해 주민들은 정부나 시 당국보다 시민들의 자구 노력에 더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진한 고려대 교수가 지열발전이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을 한 이후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정부와 포항시에 원인 규명을 압박한 것이 시민들이었다는 것이다. 김선령씨는 “포항과 흥해의 시민단체들이 마음을 합쳐 원인을 밝히기 위해 매번 모임을 갖고 활동했다”며 “우리가 힘이 있습니까, 우린 그것만 믿었어요”라고 말했다.

타 지역에서는 포항을 지진의 도시로 보고 발길을 끊고, 기업들은 투자를 꺼린다. 살던 주민들도 포항을 떠난다. 만난 이들은 대부분 집값이 수천만 원씩 떨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흥해읍에서 만난 박민정씨(44) 모녀는 “전세도 안 나가고 집값은 뚝 떨어졌다”며 “시내인 양덕동과 환호동 일대 상가에는 임대 딱지가 붙은 곳이 많다”고 전했다. 박씨 모녀는 이대로는 포항이라는 도시가 없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52만명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던 포항시 인구는 지진 이후 50만9000명으로 떨어졌다. 포항시청에서 만난 황병기 포항시 환동해미래전략본부장은 “50만명 이상이면 대도시라는 칭호와 함께 행정적인 특수성을 감안해 특별교부세 등에서 우대를 받고 구청도 설립할 수 있다”며 “인구가 그 이하로 떨어지면 도시 위상이 낮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포항 주민들도 지진을 하나의 사회적 낙인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범대본 사무실에서 만난 심현재씨(71)는 아들을 만나러 서울에 올라갔던 때를 떠올렸다. “택시기사가 ‘지진 나서 포항에서 어떻게 살아요’라고 묻는데 ‘70년을 살았는데 그럼 어디로 가노. 거기서 살지’라고 화가 나 쏘아붙였다”고 말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시장인 흥해시장도 타격을 입었다. 장날인 27일 흥해시장의 중심지는 꽤 붐비긴 했지만 상인들은 지진 전의 절반 수준 정도라고 했다. 이곳에서 22년째 생선을 팔고 있는 권정자씨(55)는 “경기가 죽어 살아날 기미가 안 보인다”며 “농번기도 아닌데 찾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건어물과 한약재를 파는 한 상점의 점원도 “예전에 비해 손님이 10분 1 정도로 줄었다”고 걱정했다. 청과물 상인인 이명순씨(55)는 시장을 찾는 사람은 물론이고 씀씀이도 줄었다고 말했다. 지진피해를 이겨내려면 아껴 쓰고, 늘 어느 정도의 현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지진의 원인이 지열발전의 수리자극에 따른 인재라는 결과가 나온 점은 작은 위안이 되고 있다. 지진도시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홍제 대표는 “트라우마는 많지만 그래도 정부 조사 결과 인재라고 밝혀지니 마음이 조금은 편하다”며 “지진이 인재로 밝혀졌으니 지금이라도 주거안정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여전히 지진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지진은 현재진행형이다. 취재 중 만난 주민 대다수는 계단을 올라갈 때의 멀미와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고,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나가는 트럭이 일으키는 진동에도 깜짝깜짝 놀란다. 김선령씨는 “한쪽 바닥에서 다른 쪽 바닥으로 굴러가고 또 반대편으로 미끄러지고, (5·4 지진 때) 죽는가 싶었다”며 “후유증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진으로 학교가 무너져 인근 남산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던 흥해초등학교의 오재윤군(12)은 지난해 3월부터 임시로 만든 컨테이너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다. 오군은 집도 옮겼다. 내력벽이 무너져 한쪽으로 기울어진 대성아파트에서 살다 인근 양덕동의 아파트로 전세금을 지원받아 옮겼다. 오군은 “조금만 흔들려도 집이 무너질까 겁이 난다”며 “집을 떠날 때는 오히려 슬프지 않고 안도했다”고 말했다.

상처 보듬을 트라우마 치료 필요

전반적으로는 학생들이 심리적 안정을 많이 찾았지만 여전히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는 친구들이 한 반에 1~2명씩은 있다고 학교 측은 전했다. 특히 아이들이 컨테이너 교실을 뛰어다닐 때 울리는 진동을 지진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 학교의 김학선 과학전담 교사(36)는 “독립된 공간에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고 작은 외부의 흔들림에도 반응을 크게 보인다”며 “가정이 안정되어야 하는데 지진으로 이사를 하거나 지역경제 자체가 나빠지면서 오는 생활의 불안정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사는 지역의 활기와 공동체 생활을 되살리는 지원이 있다면 아이들의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심리상담을 요청한 아이들에게 개별 상담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집단적인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주거이전 문제를 보상비를 받기 위한 싸움쯤으로 여기는 일각의 시선도 이들에게 상처가 된다. 이혜은씨는 “세월호 때 세금을 축낸다고 비난한 글들을 봤는데 지금 이렇게 같은 처지가 되니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최근 포항지진 이재민을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수행한 김선현 차의과학대학교 미술치료학과 교수는 “이재민들이 그린 그림을 보니 대부분 겨울인데도 빨리 도망가기 위해 문을 열어놓은 그림을 그렸다”며 “재난문자 진동벨만 울려도 힘들어 하고, 지진을 겪은 초등학생은 단체 수영 때 물에 못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림은 붉은색과 검정색이 주를 이뤘다. 김 교수는 “재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주변의 말은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며 “법적 보상은 되겠지만 중요한 건 이들의 아픔에 일단 주목하고, 이해하고 지켜봐주는 성숙함”이라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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