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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열발전 위험 ‘신호등’ 꺼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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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단계부터 단층조사 부실… 지진 위험성 통제 체계 작동 안해

지난 3월 27일 찾은 경북 포항시 흥해읍의 지열발전 상용화 실증시험 현장. 굳게 닫힌 철문 앞에는 ‘전담기관인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의 과제수행 중지 명령에 따라 현재 본 현장에서의 모든 연구활동이 중단됐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지난 2월 7일 온 우편물 도착 안내서는 다음 방문일을 예고한 상태에서 출입문 기둥에 붙은 채 빛이 바래 있었다.

경북 포항시 흥해읍 영일만대로에 있는 지열발전 상용화 실증시험 현장이 텅 빈 채로 닫혀 있다. 포항시는 원상복구 후 폐쇄를 정부에 요구했으나 전문가들은 지진 관측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 김정근 선임기자

경북 포항시 흥해읍 영일만대로에 있는 지열발전 상용화 실증시험 현장이 텅 빈 채로 닫혀 있다. 포항시는 원상복구 후 폐쇄를 정부에 요구했으나 전문가들은 지진 관측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 김정근 선임기자

시추탑과 수십 개의 굵은 관, 각종 밸브 장치들이 방치된 채 녹이 슬고 있었다. 안쪽에서 인기척을 느낀 개가 짖어댔지만 관리인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메가와트)급 지열발전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국비 185억원, 민자 206억원을 투입한 지열발전소 실증 현장은 이제 천덕꾸러기 신세가 돼 폐쇄될 처지에 놓여 있다.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3월 20일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을 위한 수리자극에 의한 촉발지진이라고 결론내렸다. 국내 조사단에 참여한 손문 부산대 교수는 “조사과정에 외압이 전혀 없었고 과학적인 자료를 충실히 이용해서 결론을 냈다”며 “처음에는 자연지진 쪽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조사과정에서 과학적으로 명확한 증거가 많이 나와 결과적으로 별 문제 없이 모든 분들이 동의하는 형태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인재

지진 발생은 단층이 존재한다는 말과 같다. 손 교수는 단층의 존재를 크게 세 가지 근거로 입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먼저 2개의 시추공 중 ‘PX-2’가 3790~3715m 지점에서 단층의 핵심을 관통했다. 그 곳에서 암석파편이 많이 나와 단층을 관통한 것으로 봤다. 마치 맷돌 사이에 콩을 갈면 물을 머금고 부서지듯 진흙 상태의 암석파편이 나왔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지진이 난 이후의 상황을 관측하기 위해 시추공 속으로 카메라를 집어넣었는데 3790m 부근에서 막혔던 점도 단층이 존재하는 근거로 봤다. 손 교수는 “지진이 난 후 그 부분이 움직였다는 뜻”이라며 “시추를 한 후 땅이 움직일 수 있어 단단한 강철로 포장(케이싱)하는데 지진으로 땅이 움직여 그 부분이 절단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깊이에서 물이 많이 빠져나간 것도 단층이 존재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고 했다.

이런 조사단의 결론에 홍태경 연세대 교수는 <사이언스>에 투고할 예정인 논문에서 조사단이 밝힌 물 주입과 단층 존재 사이의 연결고리가 논리적으로 해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수압 파쇄를 해도 암석이 쪼개지는데 그게 단층을 뚫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되는지는 모르겠다”며 “그 근처에 단층이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이나 물 주입에 의한 것인지는 연대측정을 해봐야 확실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그러면서 “무조건 물 주입 탓이라고 마무리하면 보상은 끝나더라도 그 이후 지열발전 연구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체로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단의 결론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 처음 사업을 시작한 단계에서 단층의 존재 여부를 면밀히 조사하지 않은 것이 첫 번째 실책이었다고 봤다. 이희권 강원대 교수는 “단층대가 지나가는 걸 시추하는 조사단계에서 파악했어야 했다”며 “사업 자체가 엉터리는 아니었지만 예산과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단층조사를 하고, 물을 주입하는 기간도 길게 잡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지열발전에 따른 지진의 위험성을 통제하는 ‘신호등 체계’가 작동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실이 제공한 ‘포항 EGS 프로젝트 미소(微少)진동 관리방안’을 보면 지열발전사업 컨소시엄도 지진 발생 위험성을 인지했다. 컨소시엄은 관리방안에서 미소지진을 ‘미소진동’으로 표현하면서 지진 규모가 2.0 이상이면 에너지기술평가원에 보고하고, 2.5 이상이면 정부에 보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관리방안은 포항 현지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느슨한 규정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호등 체계는 전세계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열발전 지역의 인구밀도 등을 고려해 바뀐다. 일례로 캐나다의 경우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곳에서 지열발전을 하기 때문에 규모 3.0의 지진이 나도 물 주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지만, 미국 오클라호마주는 규모 3.0이 되면 일단 작업을 중단하고 안전조치를 취하도록 한다. 영국의 경우 규모 1.0의 지진만 나도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압력 감소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포항시 거리에 지진피해 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김정근 선임기자

포항시 거리에 지진피해 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김정근 선임기자

지열발전 시설, 지진관측에 활용해야

김광희 부산대 교수는 “신호등 체계는 그 지역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를 보고 만든다”며 “그런 점을 고려하면 포항은 지열발전소에서 눈에 보이는 거리 안에 아파트들이 건설되고 남쪽으로 대규모 도시가 형성되고 있어서 당연히 보수적으로 운영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매뉴얼은 처음에는 규모 2.0부터 정부에 보고하도록 했지만, 나중에 2.5 이상으로 상향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17년 4월 규모 3.1 지진이 발생했다면 그나마 매뉴얼 대로 무조건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물 주입과 관련해 지진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주민과 관련기관에 알렸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신호등 체계가 완화된 채로 있었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포항지진 직후 그 원인으로 지열발전을 지목했던 이진한 고려대 교수는 “연구단이 충분히 위험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안전관리체계라 할 신호등 체계를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포항지진이 지열발전과 관련됐다는 결과가 나온 이후 관련기관들은 지열발전과 ‘거리두기’에 나서고 있다. 포항시는 지열발전을 유치하려는 노력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종식 포항시 환동해미래전략본부장은 “전문가들이 석도모와 제주도, 강릉, 울릉도, 포항 후보군을 두고 현지조사한 결과 포항이 가장 적절하다는 심사평을 전달받았다”며 “국책사업에 편의를 제공하는 정도로 생각했고, 특별한 의구심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신재생에너지와 영일만대교 등 포항시에서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 사업의 책임자다. 그는 포항시가 지열발전의 지진 위험성을 알게 된 건 이진한 교수가 그 연관성을 제기한 이후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미장관맨션 이재민들은 이강덕 포항시장이 당시 지열발전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포항시는 조사단 발표 후 지열발전 실증단지를 원상복구해줄 것도 요청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열발전 시설을 무조건 폐쇄하기보다는 지진관측 시설로 재활용하는 방안이 더 바람직하다고 했다. 국내에서 지하 4㎞ 깊이까지 땅을 판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그 끝에 지진 관측장치를 설치해 그 깊이에서 일어나는 지진현상을 관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문 교수와 이희권 교수, 김광희 교수가 같은 입장이다. 김 교수는 스위스 바젤도 지열발전으로 지진이 난 후 폐쇄하지 않고 바닥에 압력계 등을 설치해 꾸준히 주변 지진을 관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시추공에 압력이 증가하면 미소지진의 발생횟수가 커지는 현상이 관측돼 압력을 낮춰 지진을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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