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과 ‘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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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었습니다. ‘사법농단 재판’에 갑자기 17세기의 명화(名畵)가 등장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3월 11일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첫 공판에서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바로크 시대 화가 페테르 루벤스의 작품 ‘시몬과 페로’가 언급됐죠. 한 노인이 젊은 여성의 젖을 빨고 있는 이 그림은 매우 외설적으로 보이지만 이면에 숨은 내용을 들춰보면 감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의 작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의 <기억할 만한 언행들>에 나온 얘기를 소재로 그린 이 작품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편집실에서]‘다름’과 ‘틀림’

반역죄로 ‘아사형’을 선고받은 시몬이란 노인이 굶어죽을 운명에 처했습니다. 그에게 페로라는 딸이 있었는데 아버지에게 음식을 전해주고 싶었지만 먹을 것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딸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면회 때마다 간수 몰래 자신의 젖을 아버지에게 먹였다고 합니다. 사연을 듣게 된 로마의 왕은 딸의 효심에 감동을 받아 시몬을 석방했다고 합니다.

임 전 차장은 이 그림을 언급하면서 “처음 접한 사람은 포르노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은 아버지에 대한 딸의 효성을 그린 성화(聖畵)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그게 틀린 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검찰이 공소장을 통해 그린 그림이 너무 자의적”이라고도 했죠. 한마디로 검찰이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을 설정해놓고 자신을 기소했다는 겁니다. 이어 ‘사법부는 국가기관과 관계를 단절하며 유아독존할 수는 없다’ ‘사법부를 위해 원만한 관계를 설정하고 유관기관과 상호 간 협조를 구하는 역할을 부득이 법원행정처가 담당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력과 유착하는 것과 일정한 관계를 설정하는 건 차원이 전혀 다르다’는 등의 주장을 늘어놓았습니다.

과연 그의 주장이 맞는 걸까요. 법원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에게 물어봤습니다. 판사들이 전한 요즘 법원의 분위기는 이렇답니다.

“판사들도 새벽까지 회의하고 판결문 작성하면서 열심히 일했어요. 그런 노력들을 한순간에 사법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사람이 그 사람(임종헌)이잖아요. 행정처에서 일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옳고 그름까지 판단 못한답니까.” “임종헌이 만든 이상한 문건과 판사이길 포기한 행동들을 두고 왜 법원행정처가 전체 판사를 위해 희생하는 것처럼 말을 합니까. 그건 절대 아닙니다.”

임 전 차장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몸담았던 법원 내부의 구성원 대다수가 ‘당신이 잘못했다’고 하는데, 자기만 옳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건 틀린 걸까요, 생각이 다른 걸까요. 임 전 차장 자신에게 깊이 숙고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아울러 법관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대한민국 헌법 103조를 그에게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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