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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일 근무, 노동자가 꿈꾸는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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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제라면 하기 어려운 장거리 여행을 갈 수 있다. 앞뒤로 연차를 하루 더 붙이면 거의 4박5일을 보낼 수 있다. 평일 업무시간에는 집중을 더 해서 시간관리가 잘 되는 것 같다.”

경북테크노파크의 글로벌게임센터에서 일하는 최환석 연구원(33)은 2017년 9월 주4일 근무제를 시행하는 이곳으로 이직했다. 이전 ‘주5일제 직장’보다 급여는 줄었지만 대학원 학업과 육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서 일하는 김잉걸, 서정우, 김나영씨가 3월 12일 이 회사의 커뮤니티 공간인 ‘가평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회사는 2015년부터 주4.5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서 일하는 김잉걸, 서정우, 김나영씨가 3월 12일 이 회사의 커뮤니티 공간인 ‘가평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회사는 2015년부터 주4.5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경북테크노파크는 국내 공공기관 중 처음으로 주4일제를 도입했다. 모든 부서가 주4일제를 하지는 않는다. 글로벌게임센터와 산업빅데이터센터를 새로 만들면서 이곳에 주4일제를 도입했다. 4명이 일하는 글로벌게임센터의 경우 2명은 월~목, 2명은 화~금을 택했다.

최 연구원은 월요일에 쉬는 쪽을 선택했다. 그는 “남들이 다 연차를 붙여 쓰고 싶어하는 월요일에 쉬니 다들 부러워한다”며 “저처럼 일하면서 육아와 학업도 병행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같은 부서의 최가영 연구원(30)도 회사 인근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금요일 하루를 온전히 논문 준비에 쏟을 수 있다는 데 만족했다. 최 연구원은 “자기계발에 가치를 두고 처음부터 대학원을 생각하고 들어왔다”며 “승진과 복지에서 주5일 근무자와 전혀 차별이 없어 좋다”고 말했다. 평일에 관공서 업무를 보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경북테크노파크 외에도 한국국학진흥원과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경북신용보증재단, 경북문화콘텐츠진흥원 등 경상북도 산하 7개 기관이 일부 부서에서 주4일 근무제를 운영하고 있다. 민간기업에서도 주4일제를 시행하는 곳이 등장하고 있다. 비타민 유통업체 리오단의 경우 지난해 1월부터 격주로 주4일제를 시작했다. 전체 직원이 절반씩 나눠 쉬는 구조다.

주4일제 도입은 개인의 삶과 회사의 생활이 조화를 이루면 좋겠다는 대표의 의지가 컸다. 임금이 줄지 않아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다. 이 회사 직원 윤민중씨(40)는 “주4일 근무로 쳇바퀴처럼 돌던 인생에 하루라는 시간이 선물처럼 생겼다. 짧은 해외여행도 가능하고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윤씨는 근무체계만 잘 구축된다면 주3일만 일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봤다. 이 회사는 주4일 근무제 전환 후에도 매출은 오히려 소폭 늘었다고 전했다.

주4일제, ‘일자리 나누자’ 고민에서 출발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 발표한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2030년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이 하루 3시간만 일하고도 생계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술 발전으로 생산량이 증가해 조금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가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1933년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한 것과 유사하다. 아인슈타인은 대공황과 실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법정 노동시간을 줄이고, 구매력을 보장하도록 최저임금을 설정할 것을 제안했다.

포드 자동차의 창립자 헨리 포드가 ‘주5일 노동에 6일치 임금’을 주장하고 자신의 공장에서 주5일제를 시행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포드는 “주5일 노동은 더 큰 번영으로 가는 길을 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935년 제19회 총회에서 ‘주 40시간 단축 협약’을 채택할 때도 실업을 이유로 들었다. 이 조약 전문은 “현대 산업의 특성인 급속한 기술 진보의 혜택을 노동자들이 가능한 한 실질적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가능한 모든 범위 내에서 모든 형태의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오늘날 실업의 가장 큰 원인은 생산성 증가로 꼽힌다. 프랑스 경제학자 다니엘 코헨의 2011년 연구에 따르면 같은 양의 산업 생산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인력은 해마다 4%씩 줄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은퇴한 이들의 뒤를 사람이 아닌 기계가 채우면서 실업을 낳고, 인공지능의 발전은 화이트칼라의 일자리까지 위협하고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을 나누고 지켜내는 것이 급한 상황이다.

경북테크노파크가 주4일제를 도입한 것도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자는 고민에서 비롯했다. 경북테크노파크의 황윤권 경영기획실 팀장은 “전통 제조업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일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4명의 임금으로 5명을 채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에서 주4일제를 고민하다 마침 경상북도에서 함께 사례를 만들자고 제안해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처음 도입과정에서는 유럽의 사례들을 참고했다.

유럽에서는 이미 폭스바겐이 1990년부터, 루프트한자가 2000년부터 주4일제를 도입하는 등 적지 않은 사례가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1982년 노·사·정이 합의해 노조가 임금인상 요구를 억제하는 대신 기업이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리는 ‘바세나르 협약’을 맺었다. 그 결과 고용률과 경제성장에서 유럽연합(EU) 평균을 상회하는 좋은 성과를 보였다.

경북테크노파크의 경우 회사 차원에서 이와 유사한 협약을 맺었다고 볼 수 있다. 황 팀장은 “야근 문화를 개선해 시간외근무 총량을 줄이고 그렇게 줄인 재원으로 사람을 좀 더 뽑을 수 있는 형태로 사회적 합의가 되면 주4일도 더 확대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4일 근무를 하는 경북테크노파크의 글로벌게임센터 직원들이 3월 12일 회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 / 경북테크노파크 제공

주4일 근무를 하는 경북테크노파크의 글로벌게임센터 직원들이 3월 12일 회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 / 경북테크노파크 제공

주4일제로 가는 다양한 ‘징검다리’들

주5일 근무제에서 주4일로 단숨에 가기 어렵다면 ‘징검다리’를 거칠 수 있다. 배달 플랫폼 기업 ‘우아한형제들’처럼 월요일 오전을 쉬는 ‘주4.5일 근무제’나 전자상거래 플랫폼 기업 ‘카페24’처럼 마지막 금요일을 ‘레저휴가’로 쉬도록 하는 ‘월 1회 주4일 근무제’ 등이 여기에 속한다. 30여년 전 국내에서 처음으로 주5일제 기업이 등장하던 당시에도 업계의 경쟁조건이나 지역사정 등을 고려해 월 1회 정도의 주휴 2일제를 우선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는데 현재의 매월 마지막 금요일을 휴무로 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런 방식의 노동시간 단축도 직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에서 일하는 김나영씨는 “주말은 회사 업무가 없지만 가족과 함께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월요일 오전은 내가 마음껏 시간을 계획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물처럼 받은 허투루 쓰기 아까운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이 회사의 김잉걸씨는 월요일 오전에 요가 동아리에 들르고, 일요일엔 1박으로 여행을 떠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그는 “월요병도 거의 없고, 숙박비 등 놀러갈 때의 비용이 일요일에 훨씬 싸다”고 말했다. 이들은 금요일 오후 일찍 퇴근하는 것보다 월요일 오전에 쉬는 게 낫다고 봤다. 퇴근시간을 못 박아도 그 이후에도 남아서 일하는 사람은 분명 있기 때문에 전 직원이 월요일 오후 1시 출근으로 하는 게 더 평등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을 도입할 때 경영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카페24가 레저휴가를 도입할 때도 ‘이렇게 놀게 하고도 회사가 잘 돌아가겠느냐’는 주위의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도입 이후에도 연평균 30% 이상의 매출 성장세를 꾸준히 이어갔다. 우아한형제들도 제도 도입 이후 3년 연속 매출이 성장하고, 직원 연봉도 해마다 10%씩 늘었다. 배달 플랫폼 시장의 성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열심히 일해 현재의 근로제도를 지켜야 한다는 직원들의 자발적 노력을 끌어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직원들은 늘어난 여가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진다. 노사관계 개선으로 보이지 않는 경제적 효과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우아한형제들의 직원 서정우씨는 “특히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인재의 이탈을 막아야 하는 정보기술기업들에 시간을 복지로 제공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근무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각종 결근과 이직이 줄어드는 장점도 있다. 특히 노동일수를 줄이면 하루에 통근과 작업 전후의 준비에 부수되는 시간이 사라지면서 비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다.

경북 경산시 영남대학교 내에 있는 경북테크노파크의 전경. / 경북테크노파크 제공

경북 경산시 영남대학교 내에 있는 경북테크노파크의 전경. / 경북테크노파크 제공

주4일제 직원들은 대개 시간에 따라 비례하는 임금제를 적용받아 주5일제에 비해 약 20% 정도 적은 임금을 받는다. 하지만 경직적이진 않고,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운영의 묘를 살리는 쪽으로 개선하고 있다. 경북테크노파크의 경우 최근 주4일제 근무자들의 연봉을 평균 10% 정도 인상하고 대체휴일제도를 도입했다. 황 팀장은 “도입 1년 후 분석해 보니 직원들의 만족도가 나쁘지 않았지만, 급여가 주5일제의 80% 정도라는 점과 휴무임에도 회사 필요에 의해 금요일이나 월요일에 나와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게 문제로 지적됐다”고 개선작업을 진행한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이 회사는 부서 내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특정 부서 전체를 완전히 주4일제로 운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향후에는 주4일제와 주5일제를 자유롭게 택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황 팀장은 “다만 임금 감소를 꺼리는 분위기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특히 내부적으로 젊은 직원보다 고참 직급의 반발이 심하다”며 “사회적으로 조금씩 양보하고 희생하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 주4일제 도입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경북테크노파크는 주4일제를 만 2년간 운영한 후 그 성과를 분석하고 3년차인 내년 하반기쯤 이런 제도들을 시범 적용할 계획이다.

문제점 개선하며 진화

2012년부터 하루 6시간 근무제를 택한 보리출판사도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동시간 단축 제도를 안착시킨 사례로 평가받는다. 출판업의 특성상 월간지를 제작하는 부서나 도서전, 저자와의 만남과 같은 행사를 준비하는 직원들은 주말에도 출근할 경우가 많은데 이들에게 초과로 일한 시간만큼의 휴식시간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내부 갈등을 해소했다. 이종희 보리출판사 노조분회장은 “추가 근무를 할 경우 인트라넷 게시판에 추가 근무한 시간을 쓰고 나중에 휴가로 쓴다”며 “아직도 적응하는 중이지만 정착은 성공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주4일제로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윤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근로시간 단축은 시간당 임금의 증가를 수반해 오히려 노동수요를 감소시킬 수 있다”며 “주4일제는 일자리보다 장시간 근로가 근로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고숙련 노동자일수록 오래 일하고, 대체성이 높지 않아 생각만큼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헌주 고려대 노사관계연구센터 연구교수는 “주5일에서 주4일 근무로 하루 일감이 줄어들면 임금 감소가 불가피하다”며 “기존 노동자들은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임금 수준이 낮은 경우 오히려 ‘투잡’을 뛰게 만들 수도 있다. 쉬는 날 다른 일을 하며 보내는 ‘n잡러’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도 여기서 나온다. 김잉걸씨는 “일을 많이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주3일을 다른 일을 하면서 보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주4일이 확산되면 투잡 혹은 n잡이 가능한 고용 형태와 제도를 마련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시간 단축은 역사를 봐도, 현재의 기술발달 속도를 봐도 불가피해 보인다. 시간당 생산량이 정해진 공장처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방식은 현대 지식정보사회에서 오히려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충분한 여가활동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세종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위원은 “노동시간이 곧 기업의 이윤인 시대는 지났다. 인간이 차지하는 노동의 비중이 점점 작아지고 그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며 “고용의 총량이 줄어들고 있고, 일과 삶의 균형이 사회의 목표라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공유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주영재·반기웅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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