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

주4일 노동, 노사 모두 양보해야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생산성 높아져야 하고 사회안전망 확충·양극화 해소도 함께 가야

하루 8시간, 4일을 일하는 ‘주4일 근무제’를 연간(52주) 노동시간으로 환산하면 1664시간이 된다. 한국의 2017년 연간 노동시간(2024시간)보다 356시간 적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과거 30년 사이 886시간 줄었다. 이런 추세를 단순 반영할 경우 주4일제가 어느 정도 정착되려면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독일 뮌헨의 한 사무실 공간이 텅 비어 있다. / Nastuh Abootalebi/unsplash

독일 뮌헨의 한 사무실 공간이 텅 비어 있다. / Nastuh Abootalebi/unsplash

인류의 노동시간은 역사를 거치면서 계속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지난했다. 주4일제도 마찬가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에서 주4일제 근무을 도입하려면 철저한 사전작업이 필요하다. 주4일제 도입으로 예상되는 경영상의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 충분한 실험기간을 두고, 구성원들이 원하는 방식을 채택할 수 있도록 의견수렴도 거쳐야 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뉴질랜드의 투자신탁회사 ‘퍼페추얼 가디언’이 약 1년간의 주4일제 시행의 성과를 백서 형태로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이 회사는 2018년 3월부터 8주간 ‘주4일, 주당 30시간 근무’를 실험적으로 도입했다. 급여는 그대로 주지만 생산성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오클랜드대에 이 실험의 평가를 맡겼는데 백서에 따르면 생산성은 20% 올랐고, 일과 삶에 대한 만족도는 54%에서 78%로 늘었다. 직원들의 스트레스는 45%에서 38%로 줄었다. 이 회사는 주4일제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지난해 11월부터 전면 시행을 시작했다.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로 ‘쉬는 날을 직원이 정하도록 한’ 유연성을 들었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 앤드루 반스는 패스트컴퍼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실험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직원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혜성이어선 안 돼”

배달 플랫폼 기업 ‘우아한형제들’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2015년 주4.5일제를 시행하기 앞서 1년 반 정도의 ‘시험기간’을 뒀다. 이 회사 조직문화를 담당하는 직원 김나영씨는 “보통 하나의 제도를 도입할 때 3개월 정도의 시험기간을 두는데 이 제도는 워낙 실험적이고, 회사 사업이 잘 되지 않았을 때 파장이 클 수 있기 때문에 다소 긴 기간을 지켜봤다”고 했다. 근무시간을 줄여도 이전과 동일하게 성과가 나오거나 오히려 성과가 좋은지에 초점을 맞췄다. 대표가 일주일에 한 번씩 직원들의 익명 질의에 답변하는 ‘우아한 수다타임’과 같은 소통도 제도 안착에 도움이 됐다.

주4일제 도입을 준비 없이 성급하게 할 경우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단순히 ‘시혜’를 배푸는 방식이 아니라 정밀한 시뮬레이션과 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 출판평론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개인적으로는 임금 감소 등으로 주4일이 오히려 삶의 조건을 나쁘게 할 수도 있다”며 “회사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요소로 전락하거나 근무형태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상황이 되면 오히려 억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 차원에서 주4일제를 도입할 때도 장기간 계획을 그리고 차근히 준비해야 한다. 주4일로 임금이 줄어들 경우 중산층 이하의 계층에서는 ‘투잡’을 뛰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임금을 동일하게 유지할 경우에는 최저임금 인상과 비슷한 결과를 낳아 기업이 고용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상충되는 상황에 대비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근로시간 단축이 생산성 증가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비용 상승을 기업이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산성증가율이 10%일 때 임금인상률은 제로로 하는 대신 기준 근로시간을 10% 단축시킬 수 있다. 박윤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노동생산성이 증가한다면 노동시간을 줄여 여가도 즐기고 수요도 늘려 선순환이 가능하다”며 “생산성 향상이 충분하다면 바람직하지만 이는 노동자만이 할 일이 아니라 기술 진보와 자본투자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가 ‘우아한 수다타임’에 참석해 직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우아한형제들 제공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가 ‘우아한 수다타임’에 참석해 직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우아한형제들 제공

생산성 증가 속도가 산업별·기업규모별로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주4일제를 진행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주5일제가 안착하는 과정을 봐도 제약과 금융 등 일부 산업에서 시작해 점차 확산되는 형태였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정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줄인 뒤에도 최대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데 15년이 걸렸다”며 “주4일도 적극적인 추진이 필요하지만 단기적으로 논의될 문제는 아니고 실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과정에서 중·장기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현재로선 휴식제도를 확충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봤다. 주4일제라는 법정 노동시간 단축 노력과 함께, 사용하지 못한 연차를 저축해 장기휴가를 쓰도록 하는 ‘연가저축제’나 연차휴가를 근속에 따라 부과하지 않고 보편적 휴식으로 보장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단체협약 효력확장권 폭넓게 보장해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인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법정 노동시간 혹은 단체협약상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보다 실노동시간을 줄이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주5일 40시간 근무제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 특례업종 종사자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과정이 노동계의 우선과제라는 것이다. 정 본부장은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면 유럽처럼 단체교섭의 효력확장권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금융노조의 주4일제 제안이 실현되면 새마을금고나 저축은행 등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도 적용된다.

노동시간 단축은 사회안전망 확충, 대·중·소기업의 경제 양극화를 해소하는 과정과 함께 가야 한다. 중소기업은 신규채용이 대기업보다 부담스럽기 때문에 지금처럼 이윤이 대기업으로만 흘러가는 구조를 고치지 않으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건 어렵다. 기본급보다 초과근로에 더 많은 보수를 주는 임금체계도 바꿔 초과근로를 줄이는 대신 그 비용으로 신규채용에 나서도록 유도해야 한다.

여기서 노동계의 양보가 필요하다. 이세종 경사노위 전문위원은 “근로시간 단축의 맹점은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 임금이 줄어야 그 여력으로 신규채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라며 “기존 노동자의 임금을 보전하고 이들이 열심히 일해서 생산성을 맞추는 구조가 되면 신규채용은 없고 청년이나 중소기업만 죽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헌주 고려대 노사관계연구센터 연구교수는 “기존 노동자들이 임금 감소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일자리에서 밀려난 이후를 걱정하기 때문”이라며 “기업과 노동자 모두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사회안전망 강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5일 노동은커녕 명절에도 문을 여는 식의 약탈적 자본주의의 문화를 벗어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