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우리들이 쫓는 우상에 대한 잔인한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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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숭배하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격하게 격돌하는 세 인물의 몰락과 처절한 파국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각각이 쫓는 우상의 형태와 가치에 대한 풍자이자 우화이다.

제목 우상 (Idol)

제작연도 2019

제작국 한국

러닝타임 144분

장르 드라마

감독 이수진

출연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

개봉 2019년 3월 20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CGV아트하우스

CGV아트하우스

영화의 제목으로 쓰인 단어 ‘우상’은 노골적일 만큼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주제를 명확히 함축하고 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을 지배하는 다양한 형태의 우상들은 이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비극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나 휘몰아치는 감정의 농도는 제목의 명쾌함만큼 단순하거나 녹록지 않다.

몇 편의 단편들부터 장편 데뷔작 <한공주>와 이번 작품 <우상>에 이르기까지 연출가 이수진이 바라보는 세상은 꽤나 어둡고 냉정해 보인다. 그리고 감독 스스로 이런 염세적인 세계관을 드러내는 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어 보인다. 차가움과 냉소는 그의 작품을 관통해 전달되는 일관된 온도이기도 하다.

2013년 작 <한공주>는 학교 집단폭력으로 희생당하는 여학생 ‘한공주’(천우희 분)의 이야기를 다룬다. 피해자임에도 가해자보다 끔찍한 사회적 질타와 편견에 맞서 싸워야만 하는 연약한 주인공은 이웃들과 선생님, 친구, 심지어 친아버지에게서도 보호받지 못한 채 소외되고 고립되어만 간다. 공개 당시 주목할 만한 데뷔작으로 호평 일색의 평가를 받았던 <한공주>는 적잖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독립영화의 한계에 갇혀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사건은 도식적으로 흐르고 갈등은 관념 안에서 증폭된다.

말쑥한 만듦새와 다양한 해석의 여지

근래 성공한 한국영화의 특성 중 한 갈래의 양상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끔 만들어진 작품들이란 점이다. 과거 <올드보이>나 <곡성>, 최근 공개된 <사바하>의 경우처럼 보는 이들의 감정과 상식에 따라 상충된 해석이 대립하게 되는 작품들이 흥행에 가속을 얻었다. 물론 말쑥한 만듦새와 주제의식은 기본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볼 때 <우상>은 관객들의 폭넓은 호기심을 유발하고 화제를 몰아가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작품으로 보인다.

청렴한 도덕성으로 최근 대중들의 큰 신뢰와 지지를 얻으며 유력한 도지사 후보로 급부상한 도의원 ‘구명회’(한석규 분)는 해외출장 후 귀가한다. 그러나 그를 맞이한 것은 어두운 차고 안에서 정체불명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는 부인과 겁에 질린 아들의 얼굴이다. 아들의 음주운전 뺑소니를 어떻게든 은폐하려는 아내에게 명회는 아들을 자수시키라고 말한다.

한편 배운 것 없고 가난하지만 생계를 위해 거칠게 살아온 ‘유중식’(설경구 분)은 정신지체를 가진 아들 ‘부남’이 신혼여행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고 동행했던 조선족 며느리 ‘최련화’(천우희 분)는 실종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자신의 생명보다도 끔찍이 아꼈던 아들의 죽음에 이성을 잃은 중식은 세상을 향해 분노를 쏟아붓지만 그의 절규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없다. 이제 실종된 ‘련화’의 행방과 그녀가 알고 있는 사건의 진실은 아들을 위해 각자 다른 사랑을 선택한 두 아버지의 격한 대립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

다양한 담론의 여지를 지닌 비극

영화 <우상>은 이수진 감독이 오래전부터 장편으로 가장 먼저 만들고 싶었던 이야기란다. 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독립 저예산영화의 뚜렷한 특색이 충만한

<한공주>가 데뷔작이 되었다. 그리고 처음 구상부터 13년이란 긴 시간이 지나 감독의 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 <우상>이 완성되었다. 출연배우들의 면모로부터 만만치 않으리란 예상은 했지만 그 이상으로 작품 안에 담긴 핏빛 정서는 몰인정하고 악랄하기까지 하다.

살고 있는 계층과 세계는 다르지만 자신이 숭배하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격하게 격돌하는 세 인물의 몰락과 처절한 파국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각각이 쫓는 우상의 형태와 가치에 대한 풍자이자 우화이다. 그래서 영화는 단순히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세 명의 인물들만 쫓고 있지는 않다. 그들의 주변을 둘러싼 배경과 인물, 크고 작은 장치들은 현실을 투영하는 은유로 치환돼 쉽지 않은 담론들을 이끌어낼 뿐 아니라 영화적 성취도 이룬다.

영화 초반과 후반을 장식하는 초현실적인 광화문 빌딩 숲의 풍경이나 목이 잘린 이순신 장군 동상의 모습은 대표적인 예다. 장군의 후손들에게 허락을 받아가면서까지 완성되었다는 이 장면은 당연하게만 생각해오던 일상의 풍경이 생경하게 뒤집혔을 때 유발되는 섬뜩함과 동시에 더불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정치적 입장을 엿보게 한다. 앞으로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감독과 그의 재능이 미친 듯 만개한 작품이다.

진검승부 나선 세 편의 한국영화

[시네프리뷰]우상-우리들이 쫓는 우상에 대한 잔인한 우화

이번 주는 한국영화 기대작 세 편이 같은 날 개봉한다. 첫 주 개봉 성적이 흥행의 성패와 직결되는 만큼 애초 계획했던 날짜를 미루고 당겨서라도 엔간하면 맞대결을 피하는 것이 관례임을 고려하면 이렇게 주목받는 영화들이 동시에 맞붙는 상황은 근래에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더구나 세 편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제작·배급사들의 기대작인 데다 각각 다른 장르와 분위기를 갖고 있어 과연 어떤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본문에서 소개한 <우상>은 ‘CGV아트하우스’가 배급한다. 세 편 중 가장 개성 있지만 무거운 작품이다.

쇼박스가 내놓은 작품은 여의도 증권가를 배경으로 한 범죄 스릴러 <돈>이다. 새내기 증권 브로커가 야망을 이루기 위해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가 점차 위험에 빠져드는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류준열, 유지태, 조우진 등 신뢰 있는 주·조연급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도 좋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여류 장르영화 감독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박누리 감독의 등장이 이채롭다.

<아저씨>의 성공적인 데뷔와 <우는 남자>의 실패로 혼란스런 평가를 받고 있는 이정범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악질경찰>은 워너 브러더스가 제작에 투자했다. 감독의 전작들과 비슷한 분위기로 보이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구축하고 있는 이선균의 시너지가 어떤 결과로 도출될지 궁금하다. 관객 입장에서는 개별 작품에 대한 감상과 평가도 즐겁겠지만 세 편 중 어떤 작품이 최후의 미소를 짓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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