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신부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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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적의 베굼(19)과 미국 태생의 무타나(24)가 IS에서 낳은 어린 자녀를 키우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희망하자 영국과 미국 정부는 “우리 국민이 아니다”라며 펄쩍 뛰고 있다.

미국 태생의 ‘이슬람국가(IS) 신부’ 호다 무타나의 변호사인 찰스 스위프트가 지난 4일 미국 워싱턴 연방법원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타나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며 입국을 거부했고, 무타나 가족은 미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 EPA|연합뉴스

미국 태생의 ‘이슬람국가(IS) 신부’ 호다 무타나의 변호사인 찰스 스위프트가 지난 4일 미국 워싱턴 연방법원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타나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며 입국을 거부했고, 무타나 가족은 미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 EPA|연합뉴스

‘샤미마 베굼과 호다 무타나.’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패퇴하면서 IS 대원들의 외국인 아내들, 일명 ‘IS 신부들’의 송환 문제를 놓고 서방세계가 고민에 빠졌다. 서방 출신 IS 대원들을 자국에 데려와 재판을 하고 사회에 다시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그 아내들은 혐의마저 모호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방국가들로서는 이들의 입국이 달가울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국적의 베굼(19)과 미국 태생의 무타나(24)가 IS에서 낳은 어린 자녀를 키우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희망하자 영국과 미국 정부는 “우리 국민이 아니다”라며 펄쩍 뛰고 있다. 영국 정부는 베굼의 시민권을 박탈했고, 미국 정부는 무타나가 출생 당시 아예 시민권을 받을 자격이 안됐다며 입국 불허를 선언했다. 특히 무타나의 경우 그의 아버지가 미국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지난 3월 4일 워싱턴 연방법원에서 첫 심리가 열리는 등 미국 입국을 향한 지난한 여정에 돌입했다.

시민권을 둘러싼 법정논쟁 치열

무타나는 전직 예멘 외교관의 딸로 열아홉 살 때인 2014년 11월 자신의 대학 등록금을 여비로 삼아 미국 앨라배마를 떠났다. 터키를 거쳐 IS의 상징적 수도인 시리아 락까에 정착했다. IS 조직원과 세 번 결혼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남편은 전투에서 죽었다. 두 번째 결혼 과정에서 현재 18개월 된 아들을 얻었다. 이 아들과 함께 시리아 북부의 한 난민수용소에 머물고 있다. 그는 시리아에서 트위터를 통해 미국 젊은이들의 폭력행위를 부추기는 선전문구를 보내는 등 IS의 선전요원으로 활동했다.

무타나가 애초부터 미국 시민이 아니라는 미국 정부 주장은 그의 아버지인 아흐메드 알리 무타나와 관련돼 있다. 무나타가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도 면책특권이 적용되는 외교관의 경우 그 자녀에 대해선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불법이민자의 자녀라 할지라도 미국 영토 내에서 출생했다면 수정헌법에 따라 미국인 자녀와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출생시민권’을 인정한다.

그런데 무타나의 아버지가 무타나 출생 직전 외교관직을 사임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무타나 측 변호사 찰스 스위프트에 따르면 무타나가 태어나기 한 달 전인 1994년 9월 그의 아버지는 외교관을 그만뒀다. 게다가 무타나가 태어났을 당시 그의 어머니는 이미 미국 영주권자여서 무타나가 시민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무타나 측의 주장이다.

미국 정부 측 설명은 다르다. 미 정부는 무타나 아버지의 사임 소식을 1995년 2월이 돼서야 통보받았기 때문에 무타나 측 주장은 유효하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지난 3월 3일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호다 무타나가 입국하려면 그가 미국 시민권자라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2월 23일 샤미마 베굼(가운데·당시 15세) 등 세 명의 10대 소녀들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하기 위해 영국 런던 개트윅 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 AP연합뉴스

2015년 2월 23일 샤미마 베굼(가운데·당시 15세) 등 세 명의 10대 소녀들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하기 위해 영국 런던 개트윅 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 AP연합뉴스

하지만 무타나는 2005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미 당국으로부터 여권을 발급받았다. 미국 이민법에 따르면 미국 시민권자는 미국 영사관이나 외교관이 있는 자리에서 포기서약을 해야만 시민권을 포기할 수 있다. 미 정부가 무타나에 대한 시민권을 박탈하고 싶어도 미국 법원은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위프트 변호사는 “정부의 논리는 ‘외교 면책특권은 해당 외교관이 그 지위를 상실하는 순간 동시에 종료된다’고 해석한 바 있는 빈 협약과도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무타나의 입국을 둘러싼 논란은 법적 공방에 그치지 않는다. 일각에선 미 정부가 자국민의 시민권을 임의로 박탈할 경우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권리가 무너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타나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이용해 적절한 행정절차나 재판 없이 시민권을 박탈하려 한다는 것이다.

‘출생시민권’ 임의적 박탈, 권력남용인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아무리 악랄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모든 피고가 변호사로부터 변호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미국의 두 번째 대통령인 존 애덤스는 보스턴 대학살과 관련된 영국 병사들을 변호했다. 만약 대통령이 당신이 싫어하는 누군가의 시민권을 부당하게 박탈한다면 나중에는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의 시민권도 그렇게 박탈할 수 있다.”

미국의 이슬람인권단체인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하산 시블리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를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무타나에 대한 트럼프의 행위는 권력남용의 유형으로 끔찍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법치주의와 정당한 절차, 그리고 헌법에 보장된 권리 등 근본적인 원칙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시사잡지인 <디 애틀랜틱>도 “무타나를 둘러싼 논쟁이 아흐메드 알리 무타나의 외교적 지위로만 국한되지 않고 미국 시민의 재입국을 거부할지에 대한 국민투표로까지 번진다면 그 영향은 전세계 미국 시민권자들에게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법원이 누구 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무타나 측이 이긴다면 무타나는 미국에 들어와 IS 가담행위에 대한 별도의 재판을 받고 그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반면 미국 정부 측의 논리가 법정에서 승리한다면 무타나는 부모가 살고 있는 미국 대신 예멘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베굼의 송환 문제는 무타나처럼 법적·헌법적 논란으로까지 번지지는 않고 있으나 이 역시 단기간 내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영국 정부는 2015년 친구 2명과 함께 IS에 가담한 베굼이 방글라데시 시민권도 함께 지닌 이중국적자라며 그의 영국 시민권을 박탈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당국이 베굼은 자국 시민권을 갖고 있지 않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베굼의 남편인 야호 리데이크(27)는 자신의 고향인 네덜란드로 가족과 함께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이에 대해 네덜란드 정부는 외국인 조직원은 귀국시 체포·기소한다는 원칙적 입장만 내놓을 뿐 논쟁적 인물인 베굼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문주영 국제부 기자 moon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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