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자동화 기술, 누구에게는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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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을 통한 각종 예약과 키오스크 이용 등 노년층에는 장벽

지난 2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 인근의 ㄱ패스트푸드점. 사람이 주문을 받던 카운터 앞에 ‘지금은 셀프오더 타임’이라는 간판이 서 있다. 마치 함부로 카운터 앞에 서서 주문하지 말라는 ‘경고문’ 같다. 허진순씨(85)는 카운터 옆 무인포스(키오스크)기 옆에서 난감해 하다 결국 한 중년남성에게 부탁해 주문을 할 수 있었다. 허씨는 “노인이라 못한다고 했지만 (직원이) ‘저기 서 계세요’라고만 말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며 “불쾌했지만 약속장소라 나갈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키오스크에 손이 닿기 어려운 어린이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40대 회사원은 “아이의 주문을 도와주기 위해 한참을 힘들어하면서 안고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 인근의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2월 27일 한 시민이 무인 키오스크를 이용해 햄버거를 주문하고 있다. / 주영재 기자

서울 종로 인근의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2월 27일 한 시민이 무인 키오스크를 이용해 햄버거를 주문하고 있다. / 주영재 기자

같은 날 서울역에서 만난 문제식씨(62)는 매표창구에서 부산행 표를 발급받았다. 문씨는 “딸이 표를 끊어줬는데 실수로 서울행 표를 끊어줬다”며 “표를 혼자 끊진 못하지만 선물받은 표를 앱으로 확인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문씨처럼 기차표를 앱으로 예매하지 못할 경우 설과 추석 같은 ‘대목’엔 서서 가야 한다. 명절 기차표 물량의 태반(93%)이 PC와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온라인 예약으로 바뀌면서 이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에겐 입석만 남는다.

ㄱ패스트푸드의 경우 2년 전 2대의 무인포스를 들여왔고 지난해 9월 3대를 추가했다. 이 매장 점장은 무인포스 한 대가 1000만원에 육박하지만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운영상의 이점도 크다고 했다. 과거엔 점심 때 카운터 뒤로 긴 줄이 섰지만 이젠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 카운터를 볼 필요가 없어져 직원 수도 일부 줄었다. 현재 근무는 4인 1조에서 3인 1조로 돌아간다.

공급자 중심의 기술이 낳은 차별

ㄱ매장에서 사람들은 혼밥·혼술하듯 혼자 주문하고, 혼자 받아가고, 일인석에서 먹는다. 점장은 “예전에는 손님이 오면 인사를 하고 주문하면서 말이 오갔지만 이젠 자동화가 되면서 약간 기계처럼 움직이는 면이 없지 않다”면서도 “젊은 사람들은 여기서 주문하는 걸 더 편하게 느낀다”고 설명했다.

패스트푸드점의 무인화는 도심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ㄱ매장 인근의 ㄴ패스트푸드점도 2대의 무인포스를 쓰고, 맞은편 또 다른 패스트푸드 브랜드점은 리모델링을 거쳐 2대에서 4대 이상으로 무인포스를 늘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ㄱ매장을 운영하는 회사 관계자는 “인건비 절감보다는 비대면 서비스를 원하는 수요에 호응하고 근무자들의 감정노동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측면이 더 크다”며 “노인들을 위해 키오스크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글씨 크기를 조정하려 한다”고 말했다.

무인·자동화 기술은 노년층의 접근을 불허하는 ‘장벽’이 될 수 있다. 조성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질 기회가 없거나 적었던 노년층은 직관적으로 사용법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며 “순간의 당황으로 위축되면서 차근히 살펴볼 여유를 잃게 되고 그것이 심리적 위축과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져 시도조차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15년 1월 13일 설 연휴 열차승차권을 예매하기 위해 서울역을 찾은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김영민 기자

2015년 1월 13일 설 연휴 열차승차권을 예매하기 위해 서울역을 찾은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김영민 기자

노년층은 문자와 카카오톡 등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소통에서도 소외된다. 허씨의 경우 오빠에게서 종종 좋은 영상이나 글을 카카오톡에서 받는데 답장하기 어려워서 보기만 하다 ‘왜 아무 반응이 없냐’며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허씨의 오빠도 사실 본인이 아니라 주변 지인에게 부탁해 이런 메시지를 보낸다고 했다. 글자를 모르던 사람들을 위해 서류를 대신 작성해주던 ‘대서’의 21세기 버전이다. 금융과 쇼핑도 모바일 이용이 대세가 되면서 계좌이체나 쇼핑을 자녀에게 부탁하는 노년층도 많다.

디지털 기기 보유와 이용 능력, 활용 정도의 격차를 뜻하는 디지털 정보 격차는 좁아지는 추세지만 여전히 크다. 지난 2월 2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2018 디지털 정보 격차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장노년층 등 4대 정보 취약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국민 대비 68.9% 수준이다. 장노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63.1%로 가장 낮았다.

정부는 무인단말기 같은 정보통신기기 및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생산성을 우선으로 하는 기업이 이런 취지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남길우 한국정보화진흥원 수석연구원은 공급자 중심으로 기술을 바라본 것이 차별적 결과를 만든다고 봤다. 남 연구원은 “키오스크를 도입할 때 인건비 절감만 생각하고 이용자 관점의 배려가 부족했다”며 “노년층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큰 아이콘을 쓰거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게 하는 등 키오스크에도 취약계층을 위한 표준이 있지만 권고안이라 기업들이 잘 지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르신들은 본인이 아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떨어지는데 이를 지금까지 사람 간의 소통으로 보완했다”면서 “이런 과정이 기계화될 때 ‘배려의 기술’을 구현하지 않으면 디지털 포용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속적 교육과 꾸준한 문제제기 필요

조성은 연구위원은 “공공서비스가 디지털 기반으로 진화하면서 디지털 활용 역량이 낮은 이들이 증대된 공공서비스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디지털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고령자가 디지털 환경에 보다 많이 노출되고 경험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센터와 주민센터 등 거주지의 동년배 커뮤니티를 활용해 고령자가 심리적 위축 없이 디지털 서비스를 미리 경험하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했다.

알고리즘에 의한 ‘자동화된 차별’ 문제에도 주목해야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미디어랩의 지난해 초 조사에 따르면 얼굴인식 기술은 백인여성(7%)과 유색인종(흑인여성 35%·흑인남성 12%)을 인식할 때 백인남성(1%)에 비해 높은 오류율을 보였다. 건물 출입 등 특정 용도로 사용될 경우 사회적 차별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에 브래드 스미스 마이크로소프트 최고법무책임자는 지난해 12월 브루킹스연구소 강연에서 각국 정부가 얼굴인식 기술을 규제하는 법률을 서둘러 제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기업이 먼저 나서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규제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의 이민관세집행국(ICE)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얼굴인식 기술을 이용해 불법이민을 단속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난해 중순 시민사회는 물론 회사 내 직원들이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기술이 가져올 차별을 막는 데 시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개입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인순 한국장애인개발원 유니버설디자인환경부 부장은 “기술이 주는 차별에 대한 무관심은 둘째치고,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다”며 “문제점을 자꾸 언급해주고, 개선의 필요성을 공감할 수 있도록 여론을 환기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장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외면받지만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기술을 보급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현대차가 청각장애인 운전자를 고려한 택시를 생산해 주목받았고, AI 스피커도 시각장애인의 소통을 돕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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