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사법부의 ‘신뢰와 독립’ 애초에 있기나 했었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성창호 부장판사에 대한 과도한 비난… 독립 못 지킨 양승태 대법원의 부메랑

“저는 사법권의 독립이 보장되어야 하고, 법관과 법원의 권위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등의 당연한 말조차 남기고 갈 자격이 없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제가 무엇보다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권력에 맞서 사법부 독립을 진정코 외쳤어야 할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에는 침묵했으면서 정작 사법부에 대한 경청할 만한 비평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때 이를 외면한 채 ‘사법권 독립’이라든지 ‘재판의 권위’ 등의 명분으로 사법부의 집단이익을 꾀하려는 것으로 비쳐질 우려 있는 움직임에도 냉정한 판단을 유보한 채 그냥 동조하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8년 11월 1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고 이영구 판사 1주기 추모전 개막식에 참석한 모습. / 강윤중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8년 11월 1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고 이영구 판사 1주기 추모전 개막식에 참석한 모습. / 강윤중 기자

유지담 대법관은 2005년 10월 10일 자신의 퇴임식에서 “환송을 받기보다는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의 퇴임사는 2019년 2월 현재에도 변함없는 울림을 준다. 그때 사법부와 지금의 사법부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2월 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기소했다.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대한민국 사법부 역사상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동시에 피고인이 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죄명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이다. 검찰은 개별 범죄사실로 따지면 47개의 혐의로 정리된다고 했다. 재판부 배당도 마무리됐다. 저지른 죄만큼 처벌을 받거나 혹은 무죄판결을 받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양승태 코트’가 사법부에 남긴 상처는 안타깝게도 남아있는 3000여명의 판사들이 해결해야 할 몫으로 남아버렸다.

대한민국 사법부 역사상 초유의 사태

김경수 경남지사(52)가 지난 1월 30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김 지사는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당선을 위해 드루킹 일당과 공모, 포털사이트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김 지사의 실형선고 및 법정구속이 알려지자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각종 소셜미디어(SNS)에는 ‘성창호’라는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 시작했다. 김 지사의 1심 재판장이다. 뒤이어 서기호 변호사(전 의원·판사)를 비롯해 김 지사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성창호=양승태 키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 지사의 1심 실형판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람이었던 성창호 부장판사가 ‘적폐청산’을 주장하며 사법부를 흔들고 있는 문재인 정권을 향한 공격이라는 것이었다. 페이스북 등 SNS에는 ‘성창호 부장판사가 아버지(양승태)에 대한 복수를 한 것’이라는 글과 함께 양 전 대법원장과 성 부장판사가 나란히 찍은 사진 여러 장이 돌아다녔다. 더불어민주당은 법관 탄핵 카드를 꺼내들며 성 부장판사를 비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김경수 경남지사의 판결에 관여한 판사 전원 사퇴를 요구하는 청원글이 올랐다. 2월 13일 현재 26만여명이 청원에 동의해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성창호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비서실 판사로 근무했다. 또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과정에서 2016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 재직 당시 영장에 기재된 수사정보를 형사수석부장에게 보고한 의혹을 받고 있다. 당사자는 변명도, 반박도 하지 않고 있다. 성 부장판사는 대법원 정기인사에 따라 서울동부지방법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 부장판사와 오랜 기간 함께 근무한 한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밑에서 일을 하면 양 원장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누가 단정지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법원 내부는 잠잠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월 1일 “판결의 내용이나 결과에 관해서 국민들께서 건전한 비판을 하는 것은 허용돼야 하고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도를 넘어 표현이 과도하거나 혹은 재판을 한 개개의 법관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는 것은 법상 보장된 법관 독립의 원칙이나 혹은 법치주의 원리에 비춰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 헌법이나 법률에 의하면 판결 결과에 불복이 있는 사람은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서 불복할 수 있다”고 했다.

선거공천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추가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 당시 성창호 부장판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에게 각 죄목별 합계 8년 실형을 선고했다. / 연합뉴스TV 캡쳐

선거공천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추가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 당시 성창호 부장판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에게 각 죄목별 합계 8년 실형을 선고했다. / 연합뉴스TV 캡쳐

양승태 원장의 가장 큰 죄는?

대법원장이 일선 법원 판결에 대한 외부의 과도한 비난이나 공격을 차단하는 발언을 내놓는 것은 으레 있어온 일이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의 발언은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국민들이 사법부를 ‘독립된 기관’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의 판결과 법에 기댄 판사의 권위가 더 이상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아닌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학습한 탓이다. 성창호 부장판사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역대 대법원장이 사법부 독립을 외쳐왔지만 지켜오지 못했고, 양승태 코트가 박근혜 정권과 거래를 하면서 스스로 사법부의 독립을 무너뜨린 결과물인 셈이다. 한 25년차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사법부의 신뢰와 독립을 회복해야 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사법부가 언제 신뢰를 받았고, 언제부터 독립적이었다고 회복을 운운하느냐”고 말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저지른 가장 큰 죄는 사법부를 정권에 바치려 한 죄”라는 법원 내부의 자조 섞인 목소리는 과장되지만 설득력이 있다. 가장 단적인 예가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작성된 ‘VIP 보고서’다. 박근혜 정권이 주력하고 있는 창조경제 구현에 발맞춰 사법부도 ‘사법한류’를 추진하겠다며 만든 문건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 구현에 발맞춰 사법부도 사법제도 등을 수출, 창조경제에 일조하겠다는 보고서가 버젓이 법원행정처 내부에서 작성됐다. 법원행정처는 일선 판사들이 재판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보조기구’다. 사법부의 창조경제 구현은 일선 재판과 관련이 없다. 당시 보고서를 본 한 판사는 “어이없다 못해 실소가 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사법부의 수장이라는 자나, 행정처 요직에 있던 자나 자신이 판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의 뒤에서 묵묵히 재판만 하는 다수의 판사들을 망각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견고한 벽’을 ‘양승태-임종헌’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뜨린 것은 아니다.

한 원로법관의 말이다. “원래 법원행정처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판사가 단 한 명도 근무하지 않았다. 전부 법원공무원들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사법부 운영에 필요한 예산이나 인력을 끌어오는 데 법원공무원들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판사들만큼 절박하지 않았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거기에 판사 인사도 법원공무원들이 하다보니 적재적소에 재판부가 꾸려지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지 않나. 법원공무원들이 판사들을 어떻게 알겠나. 판사와 법원공무원 간의 교류도 많지 않았다. 법원장조차 자기 법원에 어떤 판사가 오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적어도 인력 배치나 예산 부분은 판사들이 직접 꾸려가는 게 맞지 않겠나라는 의견이 나왔고, 그게 판사들이 지금의 법원행정처를 차지하게 된 시작이었다.”

1980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겨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10·26사건) 상고심 마지막 공판 때 이영섭 대법원장. / 경향DB

1980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겨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10·26사건) 상고심 마지막 공판 때 이영섭 대법원장. / 경향DB

판사와 국회의원의 ‘긴밀한 관계’

국회의원과의 만남은 법정에서 재판장과 피고인으로 만날 일밖에 없었던 판사들이 법원행정처 소속이라는 이유로 사석에서 의원을 만나기 시작했다. 행정처를 떠나면 또다시 재판에 복귀해야 할 판사들이 사석에서 국회의원과 호형호제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늦은 밤 “술 한잔 하자”며 법원행정처 심의관을 부르는 국회의원도 있었다.

의원들은 문제의식 없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들어온 재판 관련 민원을 법원행정처 심의관이나 실장에게 해결해달라고 부탁했다.

법원행정처에 근무했던 한 법조인은 “공청회나 현안 설명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뒤 의원이나 보좌관들과 인사를 하고 나오면 손에 사건번호가 적힌 쪽지가 여러 장 들려 있었다”고 말했다. 사건번호가 적힌 쪽지는 곧 재판청탁을 의미한다. 청탁을 들어줬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입법부가 일선 법원의 재판에 개입하고, 진행과정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곧 사법부의 붕괴를 의미한다. 행정부(박근혜 정권)의 사법부 개입 및 교류(?)는 이미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다.

일반 국민은 감히 재판부 사무실에도 갈 수 없고, 법정 안에서나 볼 수 있는 판사들에게 국회의원들은 문제의식 없이 사건의 진행경과를 물어보고, 결과 예측까지 부탁했다. 민사소송의 당사자인 국가(행정부)가 대법원과 재판절차를 상의하기도 했다(일제 강제징용 사건). 그러나 이는 ‘양승태-임종헌’ 이전부터 있었고, 양승태 이전 대법원장들의 재임기간에도 벌어졌던 일이었다. 임종헌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승진하는 과정에서 그 정도가 심해졌을 뿐이다. 임종헌이라는 잘 단련된 ‘국회 대관업무용 법관’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은 결국 양승태 대법원장이었다. 여의도가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재판청탁’ 사건에 침묵하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모두가 공범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여당도, 야당도 없다.

‘법원행정처를 한 번 거쳐본 판사들이 변호사로 나와서도 일을 잘한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법원행정처 근무를 맡길 정도로 유능하다는 의미 하나와 재판만 해온 ‘사회성 떨어지는’ 판사들이 법원행정처를 거치면 ‘사람 대하는 기술’을 배운다는 의미 두 가지다. 법대 위에서 당사자의 주장을 근거로 ‘판단을 내리기만’ 하던 판사가 법대에서 내려와 ‘을(乙)’이 되는 유일한 기회가 법원행정처 근무다.

“심의관이 국회에 출석해 설명을 하려니 ‘언제부터 심의관이 와서 설명을 했느냐’며 더 높은 사람, 더 더 높은 사람이 와서 설명하라고 하는 곳이 여의도였다. 차장이 배석할 필요도 없는 현안보고 자리에 ‘차장도 불러서 앉아 있으라’며 갑질을 하던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이었다”는 한 고위 법관의 말은 현재 사법부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1심 유죄판결을 놓고 판결 내용이 아닌 재판장에게 쏟아지는 정치권의 비난은 결국 국회의원은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고 사법부가 용인을 해온 결과다.

유신정권에서 임명된 고 이영섭 대법원장은 12·12 쿠데타와 신군부 집권 이후 스스로 물러나며 이렇게 고백했다. “모든 것이 회한과 오욕으로 얼룩졌다. 소신대로 못한 것이 많다. 당시 법원의 위상은 말이 아니었다. 각본대로 따라달라는 주문도 받았다.” 또 퇴임사에서 사법부(府)가 아니라 사법부(部)였다고 했다.

고 이영섭 대법원장의 자기고백 후 38년이 지난 지금의 사법부는 사법부(司法府)인가, 사법부(司法部)인가.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