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병행하는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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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단길은 토박이와 이방인이 함께 사는 곳이기도 하다. 우사단길 주변 골목골목마다 무슬림뿐 아니라 아프리카 출신, 미국, 동남아 등 각지에서 온 외국인들이 섞여 살고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방값이 싸기’ 때문이다.

우사단길은 새로운 것과 낡은 것, 한국과 이방이 공존하는 골목이다. 우사단길 주민 절반 가까이는 외국인이다.

우사단길은 새로운 것과 낡은 것, 한국과 이방이 공존하는 골목이다. 우사단길 주민 절반 가까이는 외국인이다.

서울 이태원 보광초등학교에서 이슬람 중앙성원을 지나 도깨비시장까지 이르는 곳이 우사단길이다. 왕이 기우제를 지내던 ‘우사단(雨祀壇)’이 지명의 유래다. 산 정상의 능선을 따라 이어진 길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좁고 가파른 골목길에 주택이 이어져 있다. 그리고 서울의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낯선 풍경이 펼쳐진 곳이다.

한때 우사단길은 한창 뜨는 동네로 관심과 구경꾼의 발길이 이어지던 곳이다. 명물인 우사단 골목장이 열렸고, 작은 마을축제가 들뜬 분위기를 만들었다. 7~8년 전부터 젊은 예술가와 청년창업자들이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몰리면서 우사단길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신선한 감각과 색다른 가게는 골목에 생기를 주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인근 이태원 경리단길과 함께 관심과 화제를 몰고 왔다. 문 닫은 가게를 빌려 창업하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골목 분위기가 현대적이고 예술적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그런 소란의 분위기는 식어버렸다. 평일의 우사단길은 한적하고 평온한 곳이다.

왕이 기우제를 지내던 곳

낮술집, 커피집, 피자집, 백반집, 전통주 술집, 옷 만드는 작업장, 오토바이 개조 전문점, 구제품 헌옷가게, 타투숍 등 ‘젊은 가게’들은 겉보기에도 달랐다. 우사단길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디자이너는 “가장 큰 매력은 가겟세가 아직도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하다. 낡은 건물은 손보면 되고 오히려 자기 분위기로 바꿀 수 있어서 새 건물보다 나은 점도 있다”고 했다. 젊은 감각이 더해진 오래된 점포들은 분위기가 묘했다. 낡은 풍금을 가게 앞에 두고 선전 간판을 대신한 아이디어는 참신했다. 다른 골목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함이 우사단길의 명성을 이룬 힘이다.

스마트폰 앱으로 명소를 찾는 몇몇 젊은이를 빼고 우사단길은 한적했다. 나이든 상인은 “예전에 그 많던 사람들이 요즘엔 흔적이 없다. 사진 찍는 사람들도 많이 다녔는데 안 보인다. 가끔 만나면 아는 척도 하고 반가워했는데 어디로 다 가버렸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군데군데 젊은 가게들도 문을 닫은 곳들이 눈에 띈다. 소문에 듣던 번영과 혼잡은 신기루인 양 자취가 없었다.

경리단길이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활력을 잃었다는데 이 골목도 그런 이유에서인가 궁금했다. 20년째 가게 문을 열고 있다는 이는 “가겟세들이 오르긴 했지만 경리단길처럼 심하게 오르진 않았다. 아직도 싼 편”이라며 “다른 이유보다 청년창업자들이 너무 쉽게 왔다가 쉽게 나간다. 창업지원을 받아 문을 여는데 금방 문을 닫으면 다 빚으로 남지 않겠나” 하고 걱정했다. 지원만 할 게 아니라 사후관리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선배 장사꾼의 생각이었다. 계획한 대로 장사가 되지 않으면 지인에게 넘기고 빠져나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우사단길에 문을 연 청년창업자의 가게 중 5년을 넘긴 곳이 손에 꼽을 정도라고 했다.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가게들이 눈길을 끈다.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가게들이 눈길을 끈다.

재개발에 대한 기대와 좌절이 공존

아주 오래된 동네인 만큼 우사단길도 재개발에 대한 기대와 좌절이 공존했다. 입장에 따라 개발을 기대하는 이도 있었고 반쯤 포기한 이들도 있었다. 마을 사람은 “봄이면 타당성 조사 결과가 나온다는데 이 동네 재개발 이야기 나온 지가 20년이 됐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이들도 한 발 물러선 분위기다. 경제성이 없어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설업자도 없다고 한다. 별로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부동산에서 집을 팔라는 전화는 끊임없이 온다고 했다. 우사단길에 서너 곳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빠짐없이 ‘신도시 재개발’ 문구가 붙어 있었다. 집값이 많이 올랐겠다는 질문에 미용실 주인은 “지금 산 사람들은 상투 잡은 셈”이라고 단언했다.

우사단길 끝에는 ‘도깨비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 남아있다. 이제는 시장의 흔적만이 남아있어 문을 연 집은 서너 곳밖에 없었다. 34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문을 연다는 노인은 “서른 살에 들어와서 나이 70이 넘었다. 채소 팔아 딸 셋에 아들 하나 키우고 시집 장가 다 보냈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서 더 장사할 수 있겠나? 어쩌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남게 됐다”고 푸념했다. 하나둘 문을 닫은 시장 가게 주인들은 자식에게 기대 살거나 다른 곳으로 진작에 떠났다고 했다. 남은 서너 집이 문을 연 날이면 모여서 밥도 같이 해 먹고 노는 것이 일과라고 말한다. 도깨비시장은 도깨비 장난처럼 생겨났다가 세월 따라 명을 달리한 셈이다. 앞일을 묻자 “아들은 재개발되면 아파트 입주권 얻자고 하는데, 그건 제 희망사항이지 집 팔리면 여길 떠날 거다. 욕심에 한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겠지 하고 미룬 것이 떠날 때를 놓치고 말았다. 이젠 욕심을 거둘 때도 됐다”고 했다. 그럼에도 6평짜리 윗집이 6억원에 팔렸다며 기대의 눈빛은 숨기지 못한다.

우사단길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병행하는 곳일뿐더러, 토박이와 이방인이 함께 사는 곳이기도 하다. 이 골목 가게의 절반 가까이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우사단길만의 특색이 있다. 이슬람 중앙성전을 중심으로 아랍문자 간판들과 간간이 흘러나오는 아랍풍 음악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국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라비아 음식점과 떠나온 고국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생필품 가게, 그리고 국제통화를 위한 전화카드 가게들이 줄을 잇는다. 간간이 기도에 필요한 복장이나 특산품을 파는 가게도 있다. 그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은 할랄 고깃간과 음식점. 할랄은 이슬람법에 정한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의 통칭이다. 무슬림들은 먹어도 되는 할랄 음식만을 먹어야 한다. 가게 주인은 대부분 무슬림이지만, 할랄 음식을 팔지 않는 인도 식당도 간간이 있다.

무슬림들이 출입하는 식품점에서도 할랄 식품을 엄격하게 가려 팔고 있었다. 판로도, 수요도 한정된 상품이지만 우사단길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땅은 여러모로 무슬림들이 정착하기에는 힘겨운 곳이다. 이태원 일부를 제외하고 할랄 음식을 파는 곳은 거의 없을뿐더러, 율법대로 때맞춰 기도해야 할 장소도 없기 때문이다. 종교·문화적인 불편 외에도 이곳에 정착하여 장사하는 이들도 1년에 한 번 체류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우사단길로 통하는 이태원역 주변에는 아랍어와 한글로 ‘저는 왜 한국에서 살 수 없나요’라고 적힌 스프레이 벽화를 볼 수 있었다.

우사단길 주변 골목골목마다 무슬림뿐 아니라 아프리카 출신, 미국, 동남아 등 각지에서 온 외국인들이 섞여 살고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방값이 싸기’ 때문이다. 부동산 중개사는 “아무래도 이태원이 외국인들이 많이 오가는 데다가 이 지역 방값이 다른 곳보다 저렴하다. 외국인들끼리 셰어하우스로 방을 함께 얻는 경우도 많고, 단기임대 조건도 많은 곳이다”라고 설명했다. 골목길에는 중고 가전제품을 파는 가게가 두어 곳 있는데 중고 냉장고를 청소하던 주인은 “필요하면 싸게 사서 쓰다가 갈 때 넘기고 떠난다”고 했다. 지역 특성에 어울리는 맞춤 가게인 셈이다.

골목 곳곳에 이방인을 위한 교육시설과 예술가 공방이 있다.

골목 곳곳에 이방인을 위한 교육시설과 예술가 공방이 있다.

이슬람 성전에서 아랍어로 운율에 맞춘 기도문 소리가 들렸다. 주변 가게 앞을 서성이던 청년들이 하나둘 성전의 문으로 들어갔다. 문에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그 분의 사도입니다’라는 경구가 적혔고, 치마와 반바지 등 노출 있는 복장을 금한다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필요하면 경비실에서 옷을 빌려준다고 했다. 모스크 특유의 청색 기하무늬 타일이 박혀 있는 성소는 고요했고 문을 드나드는 이들은 종교적 경건함이 충만했다. 1976년 설립된 이래 이 땅의 무슬림에게 신앙의 중심이 된 곳이다. 불신자는 기도하는 사원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지만, 주변을 걷고 교리를 묻고 책을 읽는 것은 허락된다. 간혹 흥미롭게 기웃거리는 나그네도 눈에 띄었다.

이슬람 성전으로 오르는 길은 성전의 종교적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이태원 소방서에서 보광초등학교까지 거리는 트랜스젠더 술집과 게이바가 즐비하다. 욕망과 환락이 넘치는 길이다. 그 세속을 관통해야 성전에 다다르고, 쾌락과 육욕의 사이에서 율법을 설하고 있었다. 고기 하나도 계율대로 잡지 않으면 먹지 못하는 절대적 금기가 우사단길 중심에 서 있는 셈이다.

오래된 가게, 새로운 가게, 문 닫은 가게가 공존한다.

오래된 가게, 새로운 가게, 문 닫은 가게가 공존한다.

아랍문자 간판들과 아랍풍 음악 이국적

간혹 긴 파자마 차림의 무슬림 남성이 눈에 보였고, 히잡을 쓴 여성들도 보였다. 낮시간 할랄 식당들은 한가했지만 유독 손님이 드나드는 식당이 있었다. 한식 식당인데 할랄 음식을 파는 곳이다. 삼계탕, 불고기, 김치찌개 등 낯익은 음식이지만 들어가는 식자재는 할랄 식품이라고 했다. 주인은 “아들이 외대 아랍어과를 다니면서 무슬림이 됐다. 오래 지켜보다가 퇴직을 하고 이 식당을 열면서 무슬림이 됐다”고 한다. 사연이 많다고 했는데 요지는 한국을 찾는 무슬림 관광객들이 늘고 있어도 할랄식으로 한식을 파는 식당은 없었기 때문에 시작했다는 것이다. 손님이 많으냐는 질문에 “뭐라 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아마도 그때그때 분위기 따라 매상이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도 승합차에서 무슬림 단체관광객이 가게로 들어섰다. “우리도 외국 나가면 현지 음식을 먹고 싶어하잖느냐. 무슬림들도 마찬가진데 여기가 유일한 곳이니 찾아올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아들은 말레이시아에 한식당을 차렸고, 이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도 말레이시아 유학생들이라고 했다. 식단은 재료가 할랄식일 뿐 모양새는 우리 음식 그대로였다.

우사단길 주민 중에는 예술가도 쉽게 눈에 띈다. 식당을 개조한 화랑에서는 비디오를 이용한 사진과 설치예술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처음 만난 전시 주제는 ‘땅’, 이 지역의 개발과 소유의 욕망을 주제로 했단다. 군데군데 알쏭달쏭한 작가들의 작업장도 눈에 보였다. 예술가들은 도시의 빈 틈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고 덧칠해 버티면서 생존하는 존재라는 것을 우사단길에서 실감할 수 있다.

한겨울 오후의 우사단길은 소란과 번잡함이 가라앉은 적막이 있다. 마을버스가 서면 간간이 내리는 주민을 빼놓고 행인은 없었고 가게들은 문을 닫거나 한가했다. 밀물처럼 몰렸던 관심이 썰물이 된 느낌이랄까. 또 봄이 되면 호사가들의 나들이 발길이 이 골목을 기웃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마을 주민은 덤덤히 “더 나아질 게 없이 뒤처진 동네다. 그래도 서로 속사정을 알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위기는 있다. 행인과 뜨내기는 지나쳐가지만, 주민들에게는 정 깊은 곳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그 정겨움과 적적함이 우사단길을 지켜낸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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