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최대 쟁점 ‘백스톱’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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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아일랜드 섬에 있지만 북아일랜드는 영국 영토이고 아일랜드는 독립국가다. 현재는 물리적 국경이 없다. 둘 다 EU 회원국이기 때문이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검문소와 세관을 만들고 경찰이나 군대를 배치해야 한다.

오는 3월 말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앞두고 있는 영국은 예측불허의 혼돈 상황이다. 지난 1월 29일 영국 하원이 정부에 EU와의 재협상을 요구하는 수정안을 통과시키자 테리사 메이 총리가 재협상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정작 합의 당사자인 EU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도날트 투스크(오른쪽)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 레오 바라드카르 아일랜드 총리와 만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투스크 의장은 이 자리에서 “무사히 이를 완수할 계획의 밑그림조차 없이 브렉시트를 장려한 이들을 위해 ‘지옥에 특별한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영국 정치권이 반발하고 있다. / 브뤼셀|AP연합뉴스

도날트 투스크(오른쪽)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 레오 바라드카르 아일랜드 총리와 만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투스크 의장은 이 자리에서 “무사히 이를 완수할 계획의 밑그림조차 없이 브렉시트를 장려한 이들을 위해 ‘지옥에 특별한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영국 정치권이 반발하고 있다. / 브뤼셀|AP연합뉴스

수정안 통과 직후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대변인을 통해 “지금 합의안이 최상이다. 재협상은 없다”고 밝힌 데 이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재협상 불가 입장을 밝혔다. 다음날에는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현재 합의안이 최상이다. 어제 영국 하원의 토론과 투표는 그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면서 “재협상은 없다”고 못박았다.

영국과 EU가 재협상을 둘러싸고 이처럼 극단적으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은 영국과 EU가 지난해 11월 14일 서명한 합의문에 포함돼 있는 ‘백스톱’ 조항 때문이다. 메이 총리가 EU와 브렉시트 협상을 2년 가까이 하면서 힘겹게 만들어낸 합의안이 1월 15일 하원에서 영국 현대 정치사에서 최대 표차로 부결된 것도 백스톱 때문이었고, 현재 EU가 영국 정부의 재협상 요구를 매몰차게 거부하고 있는 것도 백스톱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핏빛 현대사

‘백스톱(backstop)’은 문자 그대로 ‘안전장치’다. 백스톱은 야구(포수 뒤)나 테니스(베이스라인 뒤)에서 공을 막는 그물을 뜻한다. 브렉시트에서 말하는 백스톱이란 브렉시트로 인해 발생하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국경문제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뜻한다.

같은 아일랜드 섬에 있지만 북아일랜드는 영국 영토이고 아일랜드는 독립국가다. 현재는 물리적 국경이 없다. 둘 다 EU 회원국이기 때문이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가 더 이상 EU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를 오가는 상품은 통관절차를 거쳐야 한다. 차량이나 사람도 검문을 받아야 한다. 검문소와 세관을 만들고 경찰이나 군대 등 감시인력도 배치해야 한다. 이전처럼 지도상의 구분선에 불과한 게 아니라 물리적인 실체가 생긴다. 이 같은 물리적 국경을 ‘하드 보더(hard border)’라고 부른다. 백스톱 조항은 영국과 EU가 하드 보더를 피하기 위해 합의문에 집어넣은 조항이다.

영국과 EU 사이에는 하드 보더만은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왜 그럴까. 단순히 인적 교류와 무역거래가 불편해지기 때문일까.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는 1949년 아일랜드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면서 완전한 독립국이 됐다. 그러나 아일랜드 32개주 중 신교도 세력이 강했던 북쪽 6개주는 영국령으로 남겠다고 선언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다수파인 신교도와 소수파 구교도 사이의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후 평화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3000여명이 희생됐다.

북아일랜드 문제는 1998년 벨파스트 협정(굿프라이데이 협정)을 통해 봉합됐다. 협정의 핵심은 물리적 국경을 없애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자유로운 통행과 무역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하드 보더가 부활한다는 건 그 시절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북아일랜드에는 자신이 영국인이 아니라 아일랜드인이라고 생각하고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통일을 바라는 이들이 20%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드 보더가 부활하면 아일랜드 통합을 요구하는 극단주의 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아일랜드 전체가 불안정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브렉시트의 앞날은 예측불허

백스톱 조항은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고안됐다. 내용은 이렇다. 영국과 EU는 브렉시트 이후에도 2020년까지 이행기간을 갖는다. ‘부드러운 결별’을 위해서다. 영국은 이 기간 동안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남는다. 이 시기에는 하드 보더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이후다. 백스톱 조항에 따르면 이행기간 동안 하드 보더를 막을 수 있는 해법을 EU와 영국이 찾지 못하면 이행기간이 끝나더라도 북아일랜드와 영국이 관세동맹에 남아야 한다. 북아일랜드의 경우 일정 부분 단일시장에도 남아야 한다.

EU는 북아일랜드와 영국의 관세동맹 잔류가 ‘한시적인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관세동맹에 남는 것 말고는 하드 보더를 피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무관세 무역협정을 체결하면 어떨까. 이 또한 확실한 대안은 아니다. 두 나라가 동일한 관세동맹 안에 있지 않는 한 원산지 추적 등 관세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물리적 장치와 시설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U가 ‘종료시점이 명시된 백스톱은 백스톱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반면 영국이 EU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와 친영파 정당인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의 입장에서 보면, 백스톱 조항을 놔둔 채 진행하는 브렉시트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백스톱 조항이 영국을 ‘EU의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메이 총리의 합의안이 지난 1월 15일 역사상 최대 표차라는 굴욕을 안기며 부결된 건 보수당 내 강경파와 DUP가 일제히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노딜’을 막기 위해서는 탈퇴 절차와 방법을 규정한 합의안이 의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영국 하원은 1월 29일 수정안 표결에서 정부에 백스톱 수정을 요구하는 수정안을 통과시키고 브렉시트를 연기해야 한다는 수정안은 부결시켰다. 메이 총리는 이 결정을 수용해 EU와 재협상을 통해 백스톱 조항을 수정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앞서 살핀 것처럼 EU의 백스톱 조항 수정 불가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브렉시트 예정일이 다음달이어서 남은 시간도 많지 않다. 노딜 브렉시트 우려가 더욱 커졌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영국 기업들은 자구책으로 사업기반을 EU 회원국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가디언>은 영국 기업의 3분의 1이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해 사업 기반을 옮겼거나 옮길 예정이라고 지난 1월 31일 보도했다. 브렉시트는 오는 3월 29일 오후 11시를 기점으로 발효한다. 영국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정원식 국제부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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