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타 배틀엔젤-영화 역사의 새로운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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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엔 원작이 있다. 만화다. 일본의 SF 만화가 키시로 유키토의 <총몽(銃夢·GUNNM·간무)>이다. 1990년에 첫 연재를 시작했으니 근 30년이 다 됐다. 30년 만의 실사영화화다.

제목 알리타: 배틀 엔젤

원제 Alita: Battle Angel

제작 제임스 캐머런, 존 랜도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

출연 로사 살라자르, 크리스토프 왈츠, 키언 존슨, 제니퍼 코넬리, 마허살라 알리 외

수입/배급 이십세기 폭스코리아

개봉 2019년 2월 5일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2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무려 9일 엠바고라니. 디테일에 대한 기억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지만 영화가 던진 충격의 여운은 남아있다. 아, 이제 하츠네 미쿠를 넘어서 스크린까지 ‘눈알괴물’이 점령하는구나. <알리타 배틀엔젤> 이야기다. 이 영화의 기자·배급 시사가 있었던 것은 지난 1월 23일이었다. 엠바고는 2월 1일까지. 유례없는 긴 기간이다. 영화관계자들을 통해 입소문을 내려는 전략일까.

총평을 하자면 훌륭하다. <아바타>(2009) 이후 영화사의 어떤 분기점을 넘어선 작품이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는 구현이 불가능할 것 같은 ‘하이퍼리얼리티’, 실사보다 더 실사 같은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 잃어버릴 직업군 리스트가 있는데, 이제 배우마저?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제작자는 <아바타>를 감독한 제임스 캐머런이다. 게다가 <씬시티>(2014), <황혼에서 새벽까지>(1996) 등에서 영화형식을 넘나들며 액션신과 이야기의 핍진성을 연출해낸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이 연출했다(나는 지금도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 특수분장 전문가 톰 사비니가 자신의 ‘중요부위’에 진짜 총을 차고 나오는 짓궂은 농담을 기억한다). 애초부터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었다.

30년 걸린 원작의 실사영화화

영화엔 원작이 있다. 만화다. 일본의 SF 만화가 키시로 유키토의 <총몽(銃夢·GUNNM·간무)>이다. 1990년에 첫 연재를 시작했으니 근 30년이 다 됐다. 30년 만의 실사영화화다. 애니메이션은 2000년쯤에 2편으로 이뤄진 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OVA)으로 선보인 적이 있다. 그럴 만도 한 게, 전 세계에 두터운 팬층을 거느린 이 작품을 실사로 옮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먼저 CG기술의 발전이 있어야 하고, 최첨단 기술을 적용하자면 천문학적 예산이 드는 것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런 불가능해 보이는 작품은 또 있다. 오토모 카즈히로의 <아키라>(1982~1990)다. 2~3년 전쯤 크리스토퍼 놀란이 실사영화화한다는 소문이 돌더니 잠잠하다.

낮에는 사이보그 전문의사, 밤에는 현상금 사냥꾼을 하고 있는 이도(크리스토프 왈츠 분)는 공중에 떠 있는 도시 자렘이 배출한 쓰레기더미에서 거의 완파된 사이보그 소녀를 발견한다. 자기 이름조차 기억못하는 그녀에게 ‘알리타’라는 이름을 주고, 딸을 위해 만들어뒀던 사이보그 신체를 붙여준다. 그리고 연쇄살인마를 쫓던 어느 날 밤, 이도 뒤를 미행한 알리타는 이도가 위험에 처하자 현상 수배자들과 격투를 벌인다. 그 싸움 끝에 잊어버리고 있던 그녀의 과거, 내재된 힘을 깨닫고 ‘각성’한다.

이야기의 축은 둘이다. 이도와 알리타, 알리타와 그녀의 연인 휴고(키언 존슨 분). 옛 기술로 그녀가 만들어진 것은 300년이 넘었지만 영화상에서 알리타는 16세 소녀다. 비록 26세기라는 시대적 설정이지만 내러티브는 모든 성장영화에 등장하는 진부하면서도 익숙한 구도다. 철새의 새끼가 둥지를 떠나듯, 자신의 힘을 각성한 알리타는 불량소년 휴고를 따라 나선다. 휴고의 꿈이란 거지가 되어도 좋으니 공중에 떠 있는 도시 자렘에 들어가는 것이다. 살아서 자렘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둠의 지배자 벡터(마허살라 알리 분)는 그런 휴고를 속였다. 이도처럼 휴고도 이중생활을 한다. 낮에는 사이보그 부품 공급자이지만, 밤에는 척추사냥꾼이다.

알리타는 왜 휴고에게 끌렸을까. 이도의 이마엔 불교도도 아닌 게 한때 자렘 거주자였음을 나타내는 흔적이 있다. 영화의 이번 편에는 전체 스토리가 다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는 모종의 환멸을 느끼고 자렘에서 내려온 사람이다. 알리타는 휴고의 욕망이 달성 불가능할 것을 안다. 그럼에도 실현불가능한 꿈을 쫓는 모습에서 자신을 돌봐주는 이도 즉, 은유된 아버지에게서 결여된 것을 얻는다. 휴고에 대한 알리타의 사랑은 자신의 가슴에서 심장(생명유지장치)을 꺼내줄 정도로 집착에 가깝다.

존재에 대한 회의에서 각성으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질풍노도 시기에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대책 없는, 무모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예를 들어 화합할 수 없는 두 가문의 청춘이 벌이는 애정행각을 담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같지만 영화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 다시 끝없이 회의하는 알리타의 ‘각성’에 초점을 맞춘다. 모터볼 게임 최종 승부에 나선 알리타가 칼로 자렘을 가리키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후속편에서는 그녀의 싸움 대상이 불평등과 악의 근원인 자렘이 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2시간이 넘는 긴 시간이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내가 뭘 본 거지?’ 하는 어리둥절한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의 몰입 경험이다. 영화의 역사는 또 이렇게 한 분기점을 넘어서고 있다.

판타지를 넘어 하이퍼리얼리티로 진입

영화 <알리타: 배틀엔젤>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알리타: 배틀엔젤>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의 개봉시점에 많은 팬들을 사로잡았던 원작 만화 <총몽>의 주인공 캐릭터 ‘갤리’를 다시 떠올리면 확실히 일본만화/서브컬처 특유의 ‘모에 캐릭터’다. 그녀가 첫 등장한 1990년이면 이미 서브컬처계에서 ‘모에 문화’는 만개했을 시기다. 아즈마 히로시의 철학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비유를 빌린다면 데이터베이스 상의 풍성한 머릿결, 큰 눈, 전투미소녀의 얼굴이다. 큰 눈? 거꾸로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모에를 실사로 재번역해낸다면 실사화가 가능할까. 불가능할 것으로 봤다. ‘눈알괴물’이라는 비아냥 내지는 패러디(실제로 이걸 모티브로 한 소품도 여럿 있다)가 등장한 까닭이다.

그러다 등장한 것이 하츠네 미쿠다.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모에 캐릭터의 모니터 밖 실사공연. 일본 특유의 오타쿠 문화에 충격과 비웃음을 던져준 사건이지만 먼 미래에 다시 회상한다면 21세기 초엽에 도달한 미래-‘역사의 종말’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물론 이미 역시 서브컬처 장르 중 하나인 피규어에서 이 눈알괴물들은 자연스럽게 육신을 얻어 나온 바 있다). <알리타 배틀엔젤>의 개봉을 앞두고 영화클립들이 하나 둘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면서 제일 관심이 집중된 대목은 이것이다. 과연 저 ‘눈알괴물’의 연기는 실사 배우들(CG로 등장하는 알리타 역에는 로사 살라자르가 캐스팅됐다. 물론 그녀의 대부분 연기는 블루스크린 앞에서 진행한 것이겠지만)의 연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갈 것인가. 영화를 본 소감은 “성공했다”는 것이다. 인류문명에서 영화는 이제 150년의 역사를 바라보는 비교적 최신 발명품이다. 판타지를 넘어 하이퍼리얼리티의 장에 들어선 영화라는 문화장르는 이제 이 문턱을 넘어 어디로 가는 걸까. 극장 문을 나서면서 궁금했던 대목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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