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의 ‘49대 51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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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내가 쓸 주제를 미리 정해놓고 어떤 사안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오늘 나는 이 주제로 기사를 써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모든 현상을 판단하면 참 희한하게도 정말 그렇게 보입니다. 같은 집회현장을 갔는데 왜 언론사마다 다른 기사를 쓸까요. 언론사의 방향성이든 기자의 가치관이든, 어떤 틀을 자기 머릿속에 집어넣고 현상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제를 미리 생각해놓고 현장을 가면 기사작성이 쉽습니다. 일단 자신도 모르게 (알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주제에 맞는 것들만 현장에서 취사선택하기 때문에 기사를 신속하게 작성해서 보도할 수 있습니다. 마감은 생명이니까요.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제 마음대로 만들어 놓은 49대 51의 법칙이 있습니다. 어떤 취재를 했을 때 주제에 딱 들어맞는 취재량이 51이고, 반론이 49라면 ‘이 기사는 절대 스트레이트 기사로 가서는 안 된다, 박스로 가든가 아니면 안 쓰는 게 맞다’는 것이 제가 만들어 놓은 법칙입니다. 이 법칙은 다른 영역에서도 적용됩니다. 내가 본 현상, 또는 내가 받은 제보가 51에 불과하고, 취재를 통해 49를 확인해서 100이 돼야만 보도가치가 있는 기사라면 섣불리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뭐, 제 마음대로 만든 법칙이니 저만 알아듣고 실천하면 됩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 24일 구속됐습니다. 사법농단 수사는 마무리 수준을 밟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검찰 수사가 시작된 후 법원행정처 안팎에서 벌어진 수많은 일들을 언론을 통해 접했습니다. 이미 구속기소된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비롯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등 사법농단에 관여한 것으로 보도되는 전·현직 판사들은 여론재판에서 이미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저는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법정에서 드러나지 않은 범죄사실이 기소 전 유포되는 것은 엄밀히 말해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일가족에 대한 수사 당시 ‘논두렁 시계사건’을 비롯한 검찰의 악의적 흘리기와 받아쓰기만 열심히 한 언론의 행태를 국민들은 이미 봐 왔습니다. 임 전 차장에 대한 본안재판은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법대로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 장소는 법정이 돼야 합니다. 검찰은 정말 열심히 수사해 왔습니다. 아마 피고인 측 변호인들도 최선을 다해 방어를 할 것입니다. 언론은 그 현장에서 ‘받아쓰기’를 해야 합니다. 언론에 대한 신뢰는 51만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49도 함께 보도하는 데서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사법농단의 실체는 이제 서울중앙지법 법정 안에서 밝혀집니다. 끝까지 지켜봐주십시오. 기자도 현장에 있겠습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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