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구신독(戒懼愼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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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계구신독(戒懼愼獨)

“요즘 헌법 잘 계시느냐?”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 관저에 올라가자 이승만 대통령이 장관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 장관이 어리둥절해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고 되물으니 “대법원에 ‘헌법’이 한 분 계시지 않느냐”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가인 김병로 대법원장이 헌법을 내세우며 원칙을 고수하고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점이 몹시 못마땅해서 그랬다고 한다.(한인섭 <가인 김병로>·
2017)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1887~1964). 그에게는 ‘청렴강직한 법조인’ ‘헌법 이념의 수호자’ ‘엄결공정한 법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법관은 최후까지 정의를 사수해야 한다는 것이 가인의 신념이었다. 아울러 냉철하고 공정하게 재판에 임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특히 사법부 독립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 없는 추상 같은 원칙을 세우고 이를 실천했다. 평소 이승만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갔지만, 대통령과 집권당이 헌법의 토대를 흔드는 상황에 이르면 예외 없이 가인의 준엄한 질타가 뒤따랐다. 대통령이 그를 불편해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지공무사(至公無私) 역시 법관으로서 늘 지녀야 할 덕목으로 새겼다. 그가 좌우명으로 삼고 강조했던 것 가운데 ‘계구신독(戒懼愼獨)’이라는 경구가 있다. 유교의 대표적 경전 중 하나인 중용장구(中庸章句)에 나오는 표현이다.

“군자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며,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도 걱정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숨기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미세한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 있을 때 삼가야 한다(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홀로 있을 때도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라는 뜻이다. 법관의 자세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가인은 1950년대 대법원장 재직시절 훈시를 할 때 ‘계구신독’을 즐겨 인용하며 언행을 삼가도록 권면했다고 한다. 가인의 정신은 60여년이 흐른 지금도 후배 법관들로부터 추앙받는다.

2012년 4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은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가인이 일깨운 ‘법관의 사명감’을 강조하고 ‘계구신독’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재판이 신뢰받기 위해서는 법관이 사회의 어느 한 계층을 대변하거나 특정한 성향에 예속되지 않는 불편부당한 사람이라는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금 사법정신의 근간을 훼손한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을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 1월 11일 ‘사법농단’의 정점으로 지목받고 있는 양 전 원장이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대법원 전직 수장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불려나온 것이다.

양 전 원장이 과연 ‘계구신독’이 담고 있는 참된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있었을까. 새삼 가인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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